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머니투데이 언론사 이미지

"저축성, 연금보험은 안 팔아요" 새 회계제도가 왜곡한 보험산업

머니투데이 권화순기자
원문보기

"저축성, 연금보험은 안 팔아요" 새 회계제도가 왜곡한 보험산업

서울맑음 / -3.9 °
[MT리포트]IFRS17 후폭풍②

[편집자주] 새 보험회계제도 도입 3년차에도 후폭풍이 거세다. 이익을 많이 내기 위해 건강보험 상품에 '올인'하면서 다양성이 붕괴되고 보험산업이 왜곡되고 있다. 버티지 못한 보험사는 사라진다. 게다가 예측 불가한 금융당국의 규제는 시장의 혼란과 부작용을 키우고 있다.

생명보험사 수입보험료/그래픽=김다나

생명보험사 수입보험료/그래픽=김다나



도입 3년차를 맞은 새 보험회계(IFRS17)가 보험산업을 심각하게 왜곡시키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보험사들은 단기간 회계상 이익을 극대화 할 수 있는 건강보험 판매에 '올인' 중이다. 반면 팔수록 부담이 커지는 저축성 보험이나 연금보험은 외면한다. 이런 상품을 주력으로 했던 교보라이프플래닛 등 디지털보험사와 방카슈랑스(은행의 보험판매)는 IFRS17 도입 후 존폐기로에 놓였다.

14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보험사의 상품 포트폴리오는 2023년 IFRS17 도입 이후 극적으로 바뀌었다.생명보험사 기준으로 건강보험 등 보장성보험의 수입보험료는 지난 2022년 47조1379억원에서 지난해 55조242억원으로 8조원 가량 급증했다. 반면 같은 기간 저축성 보험은 45조2626억원에서 28조7986억원으로 17조원 가량 급감했다. 새 회계제도하에서는 건강보험(보장성보험)은 팔수록 단기에 높은 이익을 내고, 저축성 보험은 팔 수록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보장성보험은 각 회사가 경험통계를 바탕으로 해지율, 위험률, 사망률 등 계리적은 가정을 한다. 낙관적인 가정을 할 수록 보험계약의 가치가 크게 올라 미래이익(CSM)이 불어난다. 특히 CSM은 초기에 부채로 잡히지만 상각을 통해 이익으로 전환하는데 이익 전환 기간이 10년 전후로 짧기 때문에 3년 임기의 보험사 CEO(경영진)의 단기성과주의를 부추기고 있다.

반면 저축성보험은 만기도 짧은 데다 회계상 이익을 늘리려면 금리를 낮춰야 한다. 금리를 내리면 타업권 상품과 경쟁력이 떨어진다. 결국 많이 팔수록 부담이 되는 상품으로 전락한 것이다.

보험 상품을 판매할 때 드는 사업비(비용)의 회계상 처리 방식도 단기성과주의를 부추기고 있다. 과거에는 7년 안에 판매 비용을 모두 회계에 반영했지만, 새 회계제도에선 전 보험기간에 걸쳐 나눠 반영하도록 금융당국이 기준을 만들었다. 예컨대 100세 만기라면 100년에 걸쳐 비용을 쪼개 반영하는 식이다.

결과적으로 단기성과가 중요한 CEO라면 설계사들에게 높은 모집수당을 주고 보장성 상품을 판매한다. 회계제도상 이익은 단기에 누릴 수 있지만 비용은 수십년에 걸쳐 반영해도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2023년 보험사들이 쓴 사업비 총액은 38조8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5조원(14%) 가량 늘었고 지난해에는 증가폭이 훨씬 확대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보험판매 시장을 '진흙탕'으로 만들었다.


한 보험업계 고위 관계자는 "만기가 긴 상품의 계리적인 가정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하면 수십년 뒤에 보험사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당장은 CSM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경영자로서는 보장성 상품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고령화 사회에 건강보험에 대한 소비자 니즈도 있지만, 노후 소득이라는 측면에서 연금이나 저축성보험도 균형감 있게 판매해야 한다"며 "회계제도가 보험산업을 장기적으로 왜곡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은행권에서는 인터넷전문은행 추가 인가 등 비대면 채널이 확대되고 있지만 보험산업은 역방향으로 가는 중이다. 교보라이프플래닛이나 캐롯손해보험 등 디지털보험사들은 건강보험 판매가 쉽지 않아 문을 닫을 위기다. 대면 설계사 채널을 많이 확보한 보험사일수록 유리한 구조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보험사들은 새 회계제도 도입이후 사상 최대 이익을 거두고도 자본비율(킥스·K-CIS)은 역대급으로 추락했다. 건강보험은 CSM 확보에는 유리한 상품이지만 보유계약에 대한 위험가중치도 높다. 이에 따라 자본비율 산정시 요구자본량이 급증해 보험사들의 자본비율은 거꾸로 하락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권화순 기자 firesoon@mt.co.kr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