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드3Q]
지난 3월 23일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열린 뉴로즈 봄 축제에서 참가자들이 26년째 수감 중인 쿠르드 노동자당(PKK) 지도자 압둘라 외잘란의 모습이 담긴 깃발을 들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
튀르키예 내 쿠르드족 무장 단체이자 정치 세력인 쿠르드노동자당(PKK)이 12일 “무력 투쟁을 끝내고 민주 정치에 나서겠다”며 해체를 선언했다. ‘무장 투쟁을 통한 독립 쟁취’를 기치로 1978년 창설된 지 47년 만이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새 시대의 문이 열리게 될 것”이라며 환영했다. 튀르키예·이라크·이란·시리아 등에 최다 3000만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진 쿠르드족은 한 번도 자신들의 나라를 가진 적이 없어 ‘중동의 집시’로도 불려왔다. PKK는 어떤 단체인지, 쿠르드족의 앞날은 어떻게 될지 등을 문답으로 정리했다.
Q1. PKK는 어떤 조직인가
각국에 뿔뿔이 흩어진 쿠르드족을 규합해 독립국가를 세우겠다는 목표로 창설된 튀르키예 반정부 무장 단체다. 튀르키예에는 전체 쿠르드족의 절반이 산다. 튀르키예의 전신 오스만 제국이 1차 대전에서 패배했을 때 이들도 독립국가 창설을 추진했지만 열강의 이해관계 때문에 무산되자 무력을 통해서라도 독립을 쟁취하자는 여론이 힘을 얻었다. 1978년 PKK를 창립하고 지금까지 이끌어온 압둘라 오잘란(77)은 쿠르드 민족주의에 공산주의 이념을 더해 강경 무장 투쟁 노선을 이끌었다. 튀르키예는 PKK를 자국의 최대 안보 위협으로 간주해 강력하게 진압했고, 쿠르드어 사용 금지 등의 초강경 정책도 펼쳤다. PKK 창설 이래 튀르키예 정부와의 유혈 충돌로 양측에서 4만명 이상이 사망하고 수십만 명이 난민이 됐다. 미국과 유럽연합 등도 PKK를 테러 단체로 규정하고 있다.
Q2. 왜 해체를 선언했나
창립자이자 지도자인 오잘란에 대한 사면 논의가 결정적 계기였다. 오잘란은 1999년 튀르키예 당국에 체포돼 사형을 선고받았으며 이후 종신형으로 감형받고 독방에 수감돼 왔다. 그런데 작년 10월 튀르키예 연립 여당에서 오잘란이 조직을 해체하고 폭력을 멈추면 사면할 수 있다는 제안이 나왔다. 그러자 쿠르드족 내부에서도 무장 투쟁 일변도 노선을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당사자인 오잘란 역시 지난 2월 “무장 투쟁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며 PKK가 무기를 내려놓고 스스로 해산할 것을 촉구했다. 지난 3월 PKK는 “평화와 민주 사회로 향하는 길을 따르겠다”며 휴전을 발표했고 두 달 뒤 해산으로 이어졌다.
주변국 정세도 영향을 미쳤다. 쿠르드족은 시리아 내전(2011~2024년)과 극단주의 테러 단체 이슬람국가(IS)의 시리아·이라크 점령(2014~2018년) 당시 친서방 민병대의 핵심 병력이었다. 하지만 IS의 세력이 쇠퇴한 데 이어 지난해 바샤르 알아사드 독재 정권의 붕괴로 시리아 내전도 막을 내리면서 지역 정세가 차츰 안정되며 입지가 약해지자 해체를 결단했다는 평가도 있다.
Q3. 중동 곳곳 쿠르드족은 어떻게 되나
PKK의 해체 선언으로 튀르키예 내 정세는 안정될 전망이지만 다른 나라의 쿠르드족 사정은 제각각이다. 시리아에서는 알아사드에 저항했던 쿠르드계 반군 ‘시리아민주군’이 새 정부의 군 체제에 편입하기로 하는 등 통합 행보가 진행되고 있다. 앞서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가 주도했던 이라크 전쟁에 참여해 이라크의 독재자 사담 후세인 대통령 축출에도 기여했던 이라크의 쿠르드족은 광범위한 자치권을 부여받고 2006년 이라크 북부에 자치 정부를 공식 출범했다. 반면 이란에선 쿠르드 조직 자유생명당이 ‘쿠르디스탄’이라는 독립 국가를 세우겠다는 목표를 두고 무장 투쟁을 벌이고 있다. 이렇게 나라마다 사정이 제각각이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중동 내 쿠르드족이 결집하는 대규모 독립 투쟁이 벌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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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보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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