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조선일보 언론사 이미지

포항 지진, 2심서 뒤집혔다 “국가에 피해 배상 책임 없어”

조선일보 대구=노인호 기자
원문보기

포항 지진, 2심서 뒤집혔다 “국가에 피해 배상 책임 없어”

서울맑음 / -3.9 °
“지열 발전이 지진 촉발했지만
정부 과실 탓이라고 볼 순 없어”
‘1인당 300만원’ 1심과 다른 판단
시민위 “강력 규탄, 대법 상고”
2017년과 2018년 경북 포항에서 발생한 지진과 관련해 국가가 포항 시민들에게 정신적 피해를 배상할 책임이 없다는 항소심(2심) 판결이 나왔다. 1심은 지진 피해를 본 시민들에게 200만~300만원씩 배상하라고 판결했으나 이를 깬 것이다.

대구고법 민사1부(재판장 정용달)는 13일 포항 시민 등 111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위자료) 청구 소송에서 국가 책임을 인정한 1심 판결을 파기하고 시민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포항에선 2017년 11월 규모 5.4 지진이 발생했다. 우리나라 역대 둘째로 강력한 지진이었다. 이어 2018년 2월 규모 4.6의 여진이 뒤따랐다. 보통 규모 4.5 이상 지진을 강진으로 보는데 3개월 사이에 두 차례 강진이 발생한 것이다. 당시 두 차례 지진으로 시민 1명이 숨지고 117명이 다쳤다. 이재민 1800여 명이 발생했다.

주택 5만5000여 채가 파손되는 등 재산 피해는 846억원으로 집계됐다.

정부 조사 연구단은 2019년 3월 “포항 지진은 지열 발전에 의해 촉발됐다”고 발표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넥스지오와 포스코 등은 포항시 흥해읍에서 정부 연구·개발 사업으로 지열 발전을 추진했다. 지하에 구멍을 뚫은 뒤 물을 주입해 발전하는 방식이었다. 2017년 9월까지 5차례 물을 주입했는데 두 달 뒤 지진이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포항 시민 등 4만7000명이 국가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1심 재판부는 2023년 11월 “지열 발전이 지진을 촉발했다”며 “지진 피해를 당한 원고들에게 200만~300만원씩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관계 기관들이 사업 추진 과정에서 지진의 위험도 분석을 게을리했고 지진에 신속하고 정확하게 대응하지 못한 과실이 있다”고도 했다. 지진 등 재해에 대해 국가의 위자료 책임을 인정한 첫 판결이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당시 지진이 지열 발전의 영향으로 촉발된 것은 맞는다”면서도 “지열 발전을 추진한 정부나 사업자의 과실 때문이라고 보긴 어렵다”고 했다. 지열 발전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업무상 일부 미흡한 점은 있었지만 그게 지진을 촉발한 원인이라고 보긴 어렵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국가의 과실을 인정할 수 없는 근거로 사업자가 충분한 조사와 자문을 거쳐 부지를 선정했음에도 지진을 일으킬 수 있는 활성 단층의 존재를 파악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발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진동에 대한 관리 방안이 부실했다고 보기 어려운 점, 과도한 물을 주입했다고 볼 증거가 없는 점 등을 들었다.

‘포항 지진’ 위자료 사건은 국가를 상대로 한 역대 최대 규모의 집단 소송으로 관심을 모았다. 1심 재판부가 시민들 손을 들어주면서 소송단에 이름을 올린 시민이 44만9900명으로 급증했다. 포항 시민 대부분이 참여한 것이다. 1심 판결이 확정되면 정부는 약 1조5000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날 항소심 선고 직후 ‘포항 지진 범시민 대책 위원회’는 기자회견을 열고 “50만 포항 시민의 고통을 외면한 판결을 강력히 규탄한다”며 “대법원에 상고하겠다”고 말했다.

[대구=노인호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