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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중 시장 당선’ 두테르테, 친미 마르코스 일가와 ‘가문의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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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중 시장 당선’ 두테르테, 친미 마르코스 일가와 ‘가문의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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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오른쪽)과 그의 어머니 이멜다 마르코스(가운데)가 12일 실시된 필리핀 총선에서 투표하기 전 북일로코스의 교회를 방문했다. 북일로코스/AP 연합뉴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오른쪽)과 그의 어머니 이멜다 마르코스(가운데)가 12일 실시된 필리핀 총선에서 투표하기 전 북일로코스의 교회를 방문했다. 북일로코스/AP 연합뉴스


12일 치러진 필리핀 지방선거에서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대통령이 구금된 상태에서도 압도적 표차로 고향 다바오시 시장으로 당선됐다. 함께 열린 총선에서도 예상보다 두테르테 진영이 약진하면서, 필리핀 정계 유력 가문인 마르코스 일가와의 갈등이 한층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소재한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감옥에 수감 중인 두테르테 전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 기반인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섬 다바오시 시장에 손쉽게 당선됐다. 앞서 지난 3월 필리핀 정부는 두테르테 전 대통령을 마닐라 공항에서 전격 체포해,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신병을 넘긴 바 있다. 두테르테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등에 벌인 마약과의 전쟁 중 있었던 인권 유린 혐의로 재판을 앞두고 있다. 그의 수감은 시장 직무 수행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부시장으로 당선된 이가 차남인 세바스티안 두테르테다. 그는 옥중에 있는 아버지를 대신해 시장 직무를 대행할 것으로 보인다. 두테르테 가문은 지난 37년 중 34년을 다바오시 시장을 배출했을 만큼, 이곳은 두테르테 가문의 지배력이 강고한 곳이다. 장남 파올로도 다바오시 1구 지역구에서 하원 의원 3선에 성공했으며, 손자·손녀들도 지방의회 의석을 차지했다.



상·하원 의원, 지방자치단체장 등을 뽑는 이날 선거에선 특히 24석 중 12석을 새로 뽑는 상원 선거 결과에 관심이 집중됐다. 마르코스 가문과 두테르테 가문 사이 싸움의 향방을 가를 선거로 꼽혔기 때문이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은 2022년 대선 때 두테르테 전 대통령의 장녀 사라 두테르테와 손을 잡고 집권에 성공했다. 두 가문의 동맹은 대선 필승 카드였지만, 결국 집권 뒤 금이 가기 시작했다. 정치 노선 차이와 부통령실 예산 삭감 등에 반발한 사라 두테르테 부통령이 지난해 11월 “만일 내가 살해되면 대통령을 죽이라고 이야기했다”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다. 지난 2월에는 필리핀 하원이 정부 기금 유용 및 대통령 암살 발언 등으로 두테르테 부통령의 탄핵안을 통과시켰다. 필리핀에서 탄핵은 상원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확정된다. 상원에서 두테르테 부통령 탄핵이 확정되면 그는 3년 뒤 있을 대통령 선거에 나설 수 없다. 이 때문에 이번 상원 선거에서 마르코스 진영과 두테르테 진영 어느 쪽이 우세하냐에 따라 두테르테 부통령의 정치생명이 좌우된다.



미래를 말하기는 아직 이르다. 필리핀 현지 언론에 따르면 13일 개표 결과, 상원 12석 중 절반인 6석이 마르코스 진영 사람으로 채워졌고 두테르테 진영이 4석이었다. 마르코스가 우위를 점하긴 했으나, 3분의 2 기준으로 본다면 두테르테 부통령이 탄핵 확정을 피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로이터 통신은 내다봤다.



남부 민다나오를 기반으로 둔 두테르테 가문과 달리 마르코스 가문의 정치적 기반은 필리핀 북부인 루손섬 일로코스 지역이다. 마르코스 대통령은 20년간 독재 정치를 했던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재임 1965~1986년)과 부인 이멜다 사이의 아들로, 2022년 당선 뒤 친중 노선을 택했던 두테르테 대통령과 달리 미국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로 중국에 강경하게 대응했다. 이는 마르코스 가문과 두테르테 가문의 갈등 원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



한편 이번 선거에서 마르코스와 두테르테 가문 양쪽 모두와 거리를 둔 아키노 가문 진영이 상원 의석 2석을 차지했다. ‘독재자’ 마르코스 전 대통령 재임 당시 마닐라공항에서 암살당했던 베니그노 아키노의 조카인 밤 아키노가 두번째로 많은 표를 확보하는 이변을 일으켰다. 또 아키노 가문과 친밀한 관계인 프란시스 팡길리난도 상원 의원에 당선됐다.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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