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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염증과 자폐 특이행동 원인·치료제 실마리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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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염증과 자폐 특이행동 원인·치료제 실마리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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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GIST 엄지원 뇌과학과 교수 연구팀
돌연변이 유전자 보유한 실험쥐 연구
만성뇌염증과 반복행동 유발 과정 규명
알츠하이머·관절염 치료제로 증상해소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디지스트) 뇌과학과 엄지원 (왼쪽)교수, 정혜지 박사.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디지스트) 뇌과학과 엄지원 (왼쪽)교수, 정혜지 박사.


뇌 염증과 자폐스펙트럼장애(자폐증)환자 등의 반복행동장애 유발 원인과 분자 작동원리가 규명됐다. 또 이 같은 증상은 이미 다른 질환 치료에 널리 쓰이는 약물로 증상을 해소할 수 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의료계에 따르면 자폐스펙트럼장애 환자는 40년 전만 해도 의과대학에서 1만 명당 1명꼴이라고 가르쳤지만, 최근에는 인구 50명 당 1명꼴로 급증했다. 사회 인식과 진료환경 변화 등으로 진단이 늘어난 데다 환경호르몬, 부모의 고령화 등 복합적인 영향으로 풀이된다.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디지스트) 엄지원 뇌과학과 교수 연구팀은 만성적인 뇌 염증이 반복행동장애를 유발하는 원인과 분자 작동 원리를 규명했다. 뇌 속 면역세포의 염증 반응이 특정 수용체의 과활성을 유도하고, 이를 통해 자폐스펙트럼장애(ASD)나 강박장애(OCD) 환자에게 나타나는 의미 없는 반복행동을 유발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자폐스펙트럼장애를 가진 사람은 사회적 상호작용이나 의사소통 등에 어려움을 겪고, 무의미해 보이는 행동을 반복하는 등의 증상을 보인다.

염 교수 연구팀은 자폐 환자 등에서 보이는 반복행동에 뇌 염증이 핵심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제시한 것이다.

연구팀은 염증 반응을 유발하는 유전자인 NLRP3라는 유전자 돌연변이를 가진 실험쥐를 이용해 실험했다. 이 유전자는 뇌 내 면역세포인 미세아교세포(microglia)를 자극해 만성 염증 반응이 지속되도록 하고, 흥분성 신경전달에 중요한 NMDA(N-methyl-D-aspartate) 글루타메이트 수용체가 과도하게 활성화되며, 그에 따라 의미 없는 행동을 반복하거나 불안해하는 증상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연구팀은 과도하게 활성화된 NMDA 글루타메이트 수용체가 반복행동의 원인이라는 점에 주목하여, 기존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중 하나인 ‘메만틴(memantine)’이라는 약물을 NLRP3 유전자 돌연변이 생쥐에게 투여한 결과 무의미한 반복행동이 뚜렷하게 줄고 NMDA 글루타메이트 활성도 정상 수준으로 회복되는 사실을 확인했다. NMDA 글루타메이트 수용체의 과활성이 반복행동을 일으키는 직접적인 원인임을 입증했다.

또 뇌 염증이 NMDA 글루타메이트 수용체를 어떻게 자극하는지에 관해서도 실마리를 찾았다. 염증 상태의 미세아교세포가 인터루킨-1베타(IL-1β)라는 염증 유발 물질(사이토카인)을 분비하며 NMDA 글루타메이트 수용체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따라서 인터루킨-1 수용체의 작용을 차단하는 치료제(인터루킨-1RA)를 생쥐에 주입한 결과 NMDA 글루타메이트 수용체의 과활성이 억제되고 반복행동도 사라졌다.

특히 이번 연구에 사용된 메만틴과 인터루킨-1RA(상품명 아나킨라, Anakinra)는 이미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치료제로, 현재 알츠하이머병과 류마티스 관절염 환자에게 사용 주인 약물이다. 새로운 신약을 개발 없이 안정성과 효능이 검증된 약물을 자폐증이나 강박장애 치료에 재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는 평가다.


엄지원 교수는 “이번 연구는 만성 뇌염증이 NMDA 글루타메이트 수용체의 과활성화를 유도하고, 이로 인해 반복행동장애가 유발됨을 입증한 사례”라며 “반복행동을 주로 동반하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나 강박장애 치료에 새로운 치료 접근법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디지스트 뇌과학과 정혜지 박사가 제1저자로 참여했다. 과학학술지 셀 리포트 2025년 5월 7일자 온라인 게재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연구재단의 기초연구실지원사업 및 중견연구자지원사업의 지원으로 수행됐다.

정광진 기자 kjcheong@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