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조선일보 언론사 이미지

“한글·동학 만든 것으로 韓 전근대는 책임 다해”

조선일보 유석재 기자
원문보기

“한글·동학 만든 것으로 韓 전근대는 책임 다해”

속보
미 증시 X마스 앞두고 상승
원로 국문학자 김인환 교수 ‘유교조선 지성사론’ 펴내
/조인원 기자

/조인원 기자


“조선의 유학은 주자학에 매몰돼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자학을 철저히 분석해 스스로 그것을 극복했다고 봐야 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역사나 철학 전공자가 아니라, 국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인 김인환(79·사진) 고려대 명예교수다.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시가론(詩歌論)을 차례로 집필하던 중, 조선의 시가를 연구하기 위해 3000종에 이르는 문집을 파헤치다가 ‘아예 조선왕조 500년의 지성사(知性史)를 정리해 봐야겠다’는 큰 시도를 하게 됐다.

그 결과물이 최근 출간된 ‘다 말하게 하라: 유교조선 지성사론’(수류산방)이다. 세기별로 구분한 각 장(章)마다 정치·경제사와 사상사를 병렬해 쓰며 조선왕조 전체를 정초, 형성, 동요, 안정, 하강, 이행의 여섯 단계로 구분했다. 역사를 당대의 시각에서 보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당쟁은 철학적 논쟁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토지·관직과 노비를 차지하려는 이기적인 패거리 싸움이었다”고 봤다. 그럼 조선 지성이 그나마 말기에 발전된 형태가 개화파인가? 아니다. “그들은 선구자가 아니라 역사를 왜곡한 끝에 친일로 귀결됐으므로 그렇게 볼 수 없다”고 했다.

“17세기 송시열에게서 교조주의적 모습을 보였던 조선 유학은 18세기부터 주자학을 탈피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원진(1682~1751)은 ‘주자언론동이고’를 써서 주자의 학문을 해부하듯 낱낱이 분석했다. 19세기 최한기(1803~1879)는 ‘남의 일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 일만 자랑하고 남을 비방한다’며 타인과 지식을 교환해야 한다는 상대주의적인 기(氣)철학에 도달했다. 최제우(1824~1864)는 ‘누구나 말할 자격이 있다’는 평등주의를 설파했다. 유학의 사유 체계를 바탕으로 이를 넘어서 평등성, 고유성, 창조성을 펼쳐 보였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한글과 동학을 만든 것만으로도 한국의 전근대는 제 할 일을 완수했다고 할 수 있다”고 했다. 한글은 ‘다 말할 수단’이 됐고 동학은 ‘다 말할 자격’을 부여했다는 것이다. “현재 외국 철학을 해석하기만 하는 한국 사상계는 다시 혜강(최한기)과 수운(최제우)으로 돌아가는 마음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유석재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