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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웃는데 어른은 눈물 범벅… 감동 일등공신 ‘아기 펭귄’

조선일보 이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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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웃는데 어른은 눈물 범벅… 감동 일등공신 ‘아기 펭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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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 원작 뮤지컬 ‘긴긴밤’… ‘아기 펭귄’ 역 설가은·최은영
창작진과 배우들은 동물의 특징을 포착해 함께 만든 재치 있는 움직임으로 이야기에 설득력을 더했다. 날개에 힘을 주고 위협하듯 파르르 떠는 ‘시그니처 동작’을 보여주는 ‘펭귄’ 역 설가은(오른쪽)양과 최은영양. 무대 위 ‘펭귄’이 이 동작을 할 때마다 객석에선 웃음이 터진다. /라이브러리컴퍼니

창작진과 배우들은 동물의 특징을 포착해 함께 만든 재치 있는 움직임으로 이야기에 설득력을 더했다. 날개에 힘을 주고 위협하듯 파르르 떠는 ‘시그니처 동작’을 보여주는 ‘펭귄’ 역 설가은(오른쪽)양과 최은영양. 무대 위 ‘펭귄’이 이 동작을 할 때마다 객석에선 웃음이 터진다. /라이브러리컴퍼니


뮤지컬 '긴긴밤'의 아기 펭귄 최은영양(맨 왼쪽) 공연 모습. /라이브러리컴퍼니

뮤지컬 '긴긴밤'의 아기 펭귄 최은영양(맨 왼쪽) 공연 모습. /라이브러리컴퍼니




뮤지컬 ‘긴긴밤’<키워드>을 공연하는 260석 작은 소극장은 매일 저녁이 마법 같다. 인간들에게 가족과 친구를 잃은 흰바위코뿔소 노든과, 부모 없이 버려진 알에서 태어난 아기 펭귄이 함께 한 번도 본 적 없는 ‘파란 지평선’, 바다를 찾아 먼 길을 가는 이야기. 코뿔소 역 배우는 작은 뿔 소품과 가방 하나를 들었고, 펭귄 역 배우는 꼬리처럼 뒤쪽이 긴 상의를 입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야기가 시작되면 관객의 눈엔 그들이 바로 코뿔소이고 펭귄이다.

무대는 가로 10m, 세로 6m쯤, 옆으로 길쭉한 약 60㎡(18평) 넓이. 이 작은 공간은 바닥에 깔린 LED와 조명이 바뀔 때마다 드넓은 초원이었다가 황량한 사막이 되고, 짙푸른 호수더니 마침내 푸른 바다가 된다. 무대와 객석을 함께 사로잡는 연극적 상상력의 힘이다. 100분 공연이 끝날 때쯤엔 객석은 이미 눈물바다다.

아이들 읽어주려고 펼쳤다가 어른이 오열하는 걸로 소문난 원작 소설의 위력은 뮤지컬의 아름다운 음악과 맛깔난 배우들 연기로 증폭된다. 그 일등 공신 중에 ‘어린 펭귄’을 맡은 설가은(16·고1)과 최은영(12·초6)양이 있다. 뮤지컬 팬들에겐 이미 대극장 뮤지컬 ‘마틸다’ 초연 때 ‘가은 틸다’, 재연 때의 ‘은영 틸다’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두 ‘경력 배우’를 최근 대학로에서 만났다. 무대에서 다른 삶을 여럿 살아본 두 배우는 말하는 품도 어른스럽다.

뮤지컬 '긴긴밤'의 주역 '아기 펭귄' 설가은, 최은영양은 영국의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가 제작해 비영어권 국가 최초로 한국에서 공연한 뮤지컬 '마틸다'에서 주역 '마틸다'로 뮤지컬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사진 위 두 장면은 초연(서울 LG아트센터, 2018.9.8~2019.2.10) 때의 설가은 마틸다, 아래 두 장면은 재연(2022.10.5~2023.2.26 서울 대성 디큐브아트센터) 때의 최은영 마틸다. /신시컴퍼니

뮤지컬 '긴긴밤'의 주역 '아기 펭귄' 설가은, 최은영양은 영국의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가 제작해 비영어권 국가 최초로 한국에서 공연한 뮤지컬 '마틸다'에서 주역 '마틸다'로 뮤지컬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사진 위 두 장면은 초연(서울 LG아트센터, 2018.9.8~2019.2.10) 때의 설가은 마틸다, 아래 두 장면은 재연(2022.10.5~2023.2.26 서울 대성 디큐브아트센터) 때의 최은영 마틸다. /신시컴퍼니


가은양은 “아이들과 함께 온 학부모가 많다. 공연 끝날 때 보면 아이는 웃는데 부모님 얼굴은 눈물범벅”이라며 웃었다. “노든이 어린 펭귄과 함께 먼 길을 걸으며 사랑으로 보듬는 여정이 부모님 마음과 닮아서일 것 같아요. 엄마 아빠도 아이들이 가방을 메고 유치원 갈 때부터 조금씩 자기 품에서 떠나고 있단 걸 아시기 때문 아닐까요?”

은영양은 “어린 관객들은 코뿔소 노든을 엄마 아빠나 할아버지 할머니처럼 ‘날 지켜주는 사람’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고 했다. “노든이랑 헤어지는 연기를 하면서 제게도 언젠가 올 이별의 순간을 미리 연습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감사함에 대해, 평소에 서로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할 기회가 되는 작품 같아요.”

뮤지컬 '긴긴밤'에서 마지막 흰바위 코뿔소 노든과 함께 바다를 향해 긴 긴 밤을 통과하는 아기 펭귄 역의 설가은(16·오른쪽)과 최은영(12). 두 배우는 "부모님들이 아이들과 함께 오시는데 끝날 때 보면 아이들은 활짝 웃고 있는데 부모님들은 하도 울어서 얼굴이 눈물범벅"이라며 웃었다. 50만부 넘게 팔린 동명의 아동 청소년 소설이 원작. /라이브러리컴퍼니

뮤지컬 '긴긴밤'에서 마지막 흰바위 코뿔소 노든과 함께 바다를 향해 긴 긴 밤을 통과하는 아기 펭귄 역의 설가은(16·오른쪽)과 최은영(12). 두 배우는 "부모님들이 아이들과 함께 오시는데 끝날 때 보면 아이들은 활짝 웃고 있는데 부모님들은 하도 울어서 얼굴이 눈물범벅"이라며 웃었다. 50만부 넘게 팔린 동명의 아동 청소년 소설이 원작. /라이브러리컴퍼니




두 배우에게 뮤지컬 ‘긴긴밤’은 어떤 작품일까. 가은양은 “펭귄과 코뿔소가 서로에게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되는 이야기”라고 했다. “아기였던 펭귄이 점점 성장하는 건 알을 돌봐줬던 펭귄 윔보와 치쿠, 코뿔소 노든까지 그 모든 ‘아버지들’의 사랑을 받아 속이 단단해지고 꽉 찼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 힘으로 바다로 나아갈 수 있는 아이죠.” 은영양은 “뮤지컬 포스터에 ‘사랑의 연대’라고 써 있는데 처음엔 연대가 무슨 뜻인지 몰랐다. 코뿔소 노든과 아기 펭귄이 종이 다른데도 같은 마음으로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함께 걷는 걸 보고, 그게 바로 ‘연대’라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가은양은 무대 위 여러 순간 중에서도 코뿔소 노든과 맛있었던 망고 열매를 상상하며 노을을 바라볼 때의 여유와 평화가 가장 행복하다. 은영양은 바다로 가는 길에 처음 만나 드넓은 호수에서 수영할 때, 처음 해보는 수영과 차가운 물을 두려워하다 헤엄치기 시작하며 놀라움과 환희로 바뀌는 펭귄의 감정 표현이 가장 즐겁다.

뮤지컬 '긴긴밤'의 아기 펭귄 설가은양(왼쪽에서 두번째) 공연 모습. /라이브러리컴퍼니

뮤지컬 '긴긴밤'의 아기 펭귄 설가은양(왼쪽에서 두번째) 공연 모습. /라이브러리컴퍼니




긴 여정의 끝에서, 쇠약해진 코뿔소 노든은 이제 다 자란 펭귄을 바다로 떠나보낸다. 가은양은 펭귄이 노든과 헤어지기 전 “노든, 후회하지 않아요? 코끼리 고아원을 떠난 거요” 하고 묻는 대사가 제일 좋다. “그때 노든은 ‘다시 그 순간이 온다고 해도 난 긴긴밤으로 걸어들어갈 거야’ 하고 말해요. 펭귄은 수많은 슬픔을 겪고 날 위해 희생해준 노든에게 후회하지 않느냐 묻는데, 노든은 다시 선택하라고 해도 똑같이 너와 함께 걸을 거라고 말해 주는 거예요. 정말 큰 사랑이죠.”

은영양도 노든과 헤어지기 전 대사가 제일 맘에 든다. “펭귄이 울면서 ‘아직 난 모르겠어요. 살아남아야 한단 거요’ 하고 말해요. 그리고 펭귄과 노든이 함께 ‘살아남는 건 계속 걷는 것’이라고 노래해요. 이제 펭귄도 정말 살아남는 게 뭔지 알게 된 거예요. 노든이 전해 준 모든 배움을 가방에 넣고 자신의 삶을 향해서 가는 걸 느껴요. ‘이제 난 준비가 됐어. 나도 이제 내 긴긴밤을 향해 걸어갈 수 있어’ 하고 생각하는 거죠.”


공연은 서울 대학로 인터파크 서경스퀘어 2관에서 30일까지, 5만5000~6만6000원.

☞긴긴밤

소설 '긴긴밤' 표지(왼쪽)와 뮤지컬 '긴긴밤'(2025년 재연) 포스터. /문학동네·라이브러리컴퍼니

소설 '긴긴밤' 표지(왼쪽)와 뮤지컬 '긴긴밤'(2025년 재연) 포스터. /문학동네·라이브러리컴퍼니


지구상 마지막 남은 흰바위코뿔소 노든과 버려진 알에서 태어난 어린 펭귄이 기쁨과 고난의 수많은 긴긴밤을 통과하며 푸른 바다를 찾아가는 이야기. 2021년 2월 출간된 루리의 소설<표지>은 제21회 문학동네 어린이 문학상 대상을 받았으며, 50만부 넘게 판매됐다. 뮤지컬은 지난해 10월 초연 뒤 제9회 한국 뮤지컬 어워즈 작품상(400석 미만) 후보에 올랐으며, 5월부터 재연 중이다.

[이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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