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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권성동 원내대표가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
국민의힘 지도부가 사상 초유의 대통령 후보 교체를 시도했으나 약 24시간 만에 무위로 돌아갔다.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이 사태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가운데, 국민의힘 내부에선 이번 후보 교체 작업을 주도한 권성동 원내대표 등도 자리를 내놓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본격적인 후보 교체 작업에 돌입한 건 지난 10일 0시 무렵이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와 한덕수 후보 양쪽의 실무진이 9일 오후 8시30분, 오후 10시30분 두차례 단일화 협상을 벌였음에도 별다른 성과가 없자, 지도부 주도로 ‘강제 단일화’ 절차에 착수한 것이다. 앞서 2차 실무협상이 열리기 전인 오후 10시10분,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는 참석자 64명(전체 의원 108명) 중 찬성 60명, 반대 2명, 기권 2명으로 대통령 후보 재선출 권한을 비상대책위원회에 넘긴 상태였다.
10일 0시. 국민의힘은 비대위원회의와 선거관리위원회의를 잇따라 열어 김문수 후보 선출 취소 안건과 대통령 후보 재선출 안건을 차례로 의결했다. 오전 2시30분. 이양수 당 선관위원장이 국민의힘 누리집에 ‘국민의힘 21대 대선 후보자 등록 신청 공고’를 냈다. 신청 기간은 오전 3시부터 4시까지 1시간이었다. 후보자 등록 장소는 출입증이 필요한 국회 본관 228호였고, 제출 서류는 자기소개서와 국민건강보험료 납부확인서, 세금 납부 및 체납 증명 관련 현황서 등 모두 32가지였다.
오전 3시20분. 한덕수 후보가 국민의힘 입당 서류와 대선 후보자 등록에 필요한 서류를 모두 제출했다. 이 시간대에 후보로 등록한 건 한 후보가 유일했다. 비대위는 곧바로 한 후보의 입당을 승인하고, 한 후보가 국민의힘 책임당원이 됐다고 밝혔다. 오전 3시30분이었다. 한 후보는 입장문을 내어 “저는 어느 날 갑자기 외부에서 온 용병이 아니다. 지난 3년간, 야당의 폭주에 맞서 국정의 최일선에서 여러분과 함께 싸워온 동지”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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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4시40분. 국민의힘 비대위는 다시 회의를 열어 한 후보를 ‘국민의힘 제21대 대선 후보자’로 등록하는 안건을 참석자 7명 중 6명의 찬성으로 의결했다. 김용태 비대위원만 유일하게 반대했다. 그는 페이스북에서 “경쟁력 있는 후보를 선출하고자 하는 취지에는 공감할 수 있지만, 이러한 절차를 수용할 경우 앞으로 당이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는 과정에 잘못된 선례를 남기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반대 이유를 밝혔다.
오전 9시40분. 김문수 후보가 서울 여의도 캠프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야밤의 정치 쿠데타”라며 지도부를 맹비난했다. 그러나 지도부는 예정대로 오전 10시부터 모든 당원을 상대로 ‘한덕수로 대통령 후보를 변경하는 것에 찬성하는지’를 묻는 자동응답전화(ARS) 투표를 시작했다. 권영세 위원장은 오전 11시 기자회견을 열어 “김 후보에게 단일화는 후보가 되기 위한 술책이었을 뿐”,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근거 없는 음모론을 퍼뜨리면서 지지자들을 앞세워 당을 공격하는 자해 행위를 서슴지 않고 있다”며 김 후보를 맹비난했다. 김 후보는 당의 후보 선출 취소에 반발해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냈다. 오후 3시30분, 한 후보가 기자회견을 열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면서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며 “단일화는 국민의 명령”이라고 했다.
오후 6시50분. 양쪽 캠프 관계자들은 다시 단일화 3차 실무 협상에 돌입했으나 논의는 공전했다. 양쪽의 추가 협상을 기다리던 비대위는 별다른 소식이 없자, 오후 11시 비대위 회의를 개최하고 2시간 전 마무리된 당원 투표 조사 결과를 개봉했다. ‘교체 찬성’이 우세할 것이란 예상과 달리 투표 결과는 “근소한 차이”(신동욱 당 수석대변인)로 ‘교체 반대’ 의견이 더 많았다.
오후 11시15분. 비대위는 김 후보의 대통령 후보 자격 회복을 의결했다. 당 지도부에 의한 대통령 후보 교체 시도가 약 24시간 만에 무산된 순간이었다. 권 위원장은 “단일화를 이루지 못한 건 너무 안타깝지만 제 부족함 때문이다. 모든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고 했다. 한 후보 쪽은 “국민과 당원의 뜻을 겸허하게 수용한다”는 뜻을, 김 후보 쪽은 “사필귀정”이라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11일 오전 9시. 김문수 후보가 후보 등록 절차를 마쳤다. 한 후보는 “김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하길 기원한다. 저는 한 사람의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신민정 서영지 기자 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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