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 두 달도 안 돼 몸무게 450kg→500kg으로 늘어
농식품부, 말 학대 재발 방지 위해 '말 복지 제고 대책' 추진
"달리지 못하는 말도 살 권리 있어…자연사까지 삶 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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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허가 목장에서 학대를 당하다 구조돼 한국마사회가 입양한 '유니콘'이 8일 장수목장 보금자리에서 취재진에게 소개를 받고 있다. |
"유니콘의 나이는 24세로 사람으로 치면 90세로 볼 수 있지만 지금 한눈에 보기에도 건강해 보이지 않습니까? 말 학대 사건의 피해 마필로 발견 당시 처참한 모습이었지만, 이곳에 와서 잘 먹고 넓은 초지를 뛰놀며 지내는 것은 물론, 마사회의 말 전문 수의사 등 전문인력이 직접 보살피니 이렇게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8일 한국마사회 장수목장에서 만난 '유니콘'은 이름과 같이 윤기 나는 갈기와 균형 잡힌 몸, 힘찬 걸음으로 취재진을 맞았다. 공주 말 학대 사건의 피해 마필 중 하나였던 '유니콘'은 피해 말이라는 사실도 잊을 만큼 건강한 모습으로 지내고 있었다. 3월 입양 당시 450kg이었던 몸무게는 현재 500kg까지 늘 정도로 다부진 체형을 되찾았다.
지난해 10월 15일 충남 공주시에 있는 한 무허가 목장에서 학대로 죽은 말 사체 가운데 방치된 퇴역 경주마와 승용마 등 15마리가 발견됐다.
이 목장은 말 분뇨가 3㎝ 이상 쌓이고 백골이 발견되는 등 관리가 부실한 상태였다. 특히 유니콘을 포함해 발견된 말 15마리의 상태는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야위어 있는 등 장기간 방치된 흔적이 역력했다. 현장에서는 피 묻은 흉기와 절단된 말의 신체 부위가 발견되는 등 불법 도축이 의심되는 정황도 나왔다.
이런 지옥 같은 곳에서 구조된 말 15마리 가운데 14마리는 개인이나 승마시설로 입양됐지만 유니콘은 갈 곳을 찾지 못했다. 구조 이후 경기도 이천의 임시 보호소에서 4개월간 생활하며 입양자나 입양기관을 찾았으나 고령이라는 이유로 입양이 불가능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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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허가 목장에서 학대를 당하다 구조돼 한국마사회가 입양한 '유니콘'이 8일 장수목장 보금자리에서 취재진에게 먹이를 받아 먹고 있다. |
이에 한국마사회는 유니콘이 더 이상 낯선 곳을 전전하지 않고 편안한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입양을 결정, 장수목장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전라북도 장수군 장계면에 위치한 장수목장은 내륙 최대 규모의 말 전문 목장이다. 2007년 개장 이후 경주마 생산과 육성, 승용마 훈련, 말 문화 체험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며 국내 말산업 발전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했다. 이에 더해 장수목장은 말 생애 전주기 보호의 마지막인 평생 돌봄을 시작했다.
마사회 말복지센터장을 지냈던 김진갑 마사회 장수목장장(처장)은 "일생을 사람을 위해 헌신한 말은 평생 돌봄을 받아야 하는 존재"라며 "유니콘 입양은 학대받거나 방치된 말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우리 사회가 말과 공존할 수 있는 선진적인 복지 모델 구축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말 학대는 단순히 유니콘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다. 마사회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과 부산에서 퇴역한 경주마 1201마리 가운데 276마리(23%)가 폐사했다.
이에 축산당국 역시 '말 복지 사각지대 실태조사 및 복지 제고 실증 연구용역'을 거쳐, 지난달 30일 '말 복지 제고 대책(2025~29)'을 발표했다.
말 학대 방지와 생애주기별 보호 강화를 위해 말 복지 종합대책을 정부 차원에서 처음으로 마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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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복지 제고 대책 주요내용 인포그래픽 |
대책에 따르면, 먼저 말 복지 사각지대를 최소화하기 위해 학대‧방치된 말의 보호와 재활을 위한 '말 보호모니터링센터'를 설치한다. 또한, 말 학대 신고 시 사례금을 지급하는 방안도 도입하는 것은 물론, 매년 실시하는 말산업 실태조사에 복지 항목을 추가해 정책 기초자료로 활용한다.
생애주기형 복지 지원 강화를 위해 현행 자율 말 등록제를 의무 등록제로 전환하고, 성장 단계별 표준 사양관리 매뉴얼을 보급한다. 퇴역 경주마의 승용 전환과 부상마 재활도 지원해 불필요한 조기 도태를 줄일 계획이다.
말 복지에 대한 인식도 바꾼다. '말 복지 인증제'를 도입해 우수 시설은 정부 지원사업에서 우대하고, 말 복지 교육을 의무화해 자격시험에 관련 과목을 신설한다. 복지 교육 미이수자는 일부 지원사업 참여가 제한된다.
민관 협력도 강화한다. 정부와 마사회, 말산업 종사자, 동물보호단체 등이 함께하는 협의체를 구성해 다양한 현장 의견을 수렴하고, 이를 5개년 육성 종합계획에 반영할 방침이다.
안용덕 농림축산식품부 축산정책관은 "이번 대책은 말 복지 증진을 위해 최초로 마련한 대책"이라며 "대책 시행을 통해 말 복지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기반을 조성하는 것은 물론, 전 생애주기에 걸친 말 복지 수준의 향상과 국민 요구에 부응하는 말 복지를 제공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달리지 못하는 말도 살 권리가 있다"라며 "유니콘처럼 민간 분양이 안 되는 말들은 마사회 등 말 산업 전담 기관에서 사람으로 치면 호스피스와 같이 자연사할 때까지 삶을 보장해 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이투데이/전북=노승길 기자 (noga813@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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