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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을 발굴한 할리우드 B급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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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을 발굴한 할리우드 B급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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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역사다] 로저 코먼 (1926~2024)



영화감독이었다. 영화 제작도 했다. 수십년 동안 수많은 작품을 찍으며 미국 영화계에 큰 발자국을 남겨, 아카데미 공로상을 받았다. ‘흡혈 식물 대소동’, ‘엑스레이 눈을 가진 사나이’, ‘식인어 피라냐’, ‘침입자’, ‘세계가 멸망한 날’, ‘버킷 오브 블러드’ 등이 그의 대표작이다.



로저 코먼의 대표작 제목이 낯설다고? 이 글을 쓰는 나도 그렇다. 코먼이 평생 찍은 영화는 저예산 비(B)급 작품이기 때문이다. 짧은 기간에 적은 예산으로 뚝딱뚝딱 영화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한국의 남기남 감독이 떠오른다는 평도 있다. 로저 코먼이 자서전을 썼는데, 이 책 제목이 ‘나는 어떻게 할리우드에서 100편의 영화를 만들고 한푼도 잃지 않았는가’다. 그의 영화 철학(!)이 잘 드러나 있다.



로저 코먼이 오늘날 기억되는 이유는 그가 키워낸 후배 영화인들 때문. 적은 예산으로 영화를 제작하며 수많은 젊은 신인 감독에게 기회를 주었는데, 이때 발굴한 인재들이 참으로 쟁쟁하다.



코먼의 조수였다가 공포 영화로 감독에 데뷔한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는 나중에 ‘대부’와 ‘지옥의 묵시록’을 찍었다. 코먼의 제작으로 상업 장편 영화에 데뷔한 마틴 스코세이지는 훗날 ‘택시 드라이버’와 ‘좋은 친구들’ 등을 찍으며 할리우드의 거장으로 인정받는다. 코먼의 비급 영화에서 특수효과를 맡던 제임스 캐머런은 뒤에 ‘터미네이터’, ‘타이타닉’, ‘아바타’ 등의 블록버스터를 감독한다. 코먼의 제안으로 감독이 된 론 하워드는 나중에 ‘뷰티풀 마인드’와 ‘아폴로13’을 찍는다. ‘양들의 침묵’과 ‘필라델피아’를 찍은 조너선 데미, ‘그렘린’과 ‘이너스페이스’를 감독한 조 단테 등이 젊은 시절에 코먼과 함께 일했다. 코먼의 자서전을 읽고 “저예산으로도 감독으로 데뷔할 수 있다”며 영화감독의 꿈을 키워나간 사람으로 로버트 로드리게스가 있다.



정작 코먼 본인은 비급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 남았다는 점은 아이러니. 2024년 5월9일, 아흔여덟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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