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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대통령직이 범죄자 도피처 될 수 있다’는 합리적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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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주호영 국회부의장을 비롯한 의원들이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회의실 앞에서 형사소송법 개정안과 공직선거법 개정안 강행 처리를 시도하는 더불어민주당을 규탄하는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뉴스1

국민의힘 주호영 국회부의장을 비롯한 의원들이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회의실 앞에서 형사소송법 개정안과 공직선거법 개정안 강행 처리를 시도하는 더불어민주당을 규탄하는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뉴스1


서울고등법원이 오는 15일로 잡았던 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심 첫 재판을 대선 이후인 다음 달 18일로 변경하기로 했다. 고법은 “균등한 선거운동의 기회를 보장하고, 재판의 공정성 논란을 없애기 위한 것”이라고 했지만 법원의 이런 해명을 믿을 사람은 적을 것이다. 대법원이 이 사건을 파기환송한 바로 다음 날 고등법원은 사건을 배당했고 재판부는 재판 날짜를 15일로 잡아 이 후보에게 소환장을 보냈다. 그랬던 재판부가 돌연 재판을 연기한 것은 민주당의 법원과 법관들에 대한 압박 때문일 것이다. 대장동 재판도 대선 이후인 6월 24일로 미뤄졌다.

민주당은 법원에 이 후보의 모든 재판 일정을 대선 이후로 미뤄 달라고 요구하면서,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 조희대 대법원장은 물론 파기환송심 담당 판사들을 탄핵할 수 있다고 공언했다. 선거법 위반 사건은 1년 안에 대법원 선고까지 끝내도록 법이 규정하고 있지만, 이 후보 사건은 2022년 9월 기소 이후 2년 7개월을 끌었다. 진작 끝나야 할 사건이 대법원의 판결 이후에도 입법 권력의 협박에 다시 연기된 것이다.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 “잠시의 해프닝”이라고 했던 이재명 후보는 고법이 재판을 연기하자 “헌법 정신에 따른 합당한 결정” “여전히 사법부를 신뢰한다”고 했다.

민주당은 이날 피고인이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형사재판을 정지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과 허위사실공표죄 조항을 바꾸는 선거법 개정안도 상임위에서 연속 통과시켰다. 선거법 위반으로 재판 중인 이 후보가 대선에 당선된 후에 당선 무효형을 받을 경우 대통령직의 정당성이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원천 봉쇄하기 위한 법안들이다. 이 법들이 실행되면 살인, 뇌물 같은 범죄를 저질러도 대통령에 당선만 되면 재판이 중지된다. 이날 법무부는 ‘대통령직이 범죄자의 도피처가 될 수 있다’고 했는데 합리적 우려다.

민주당은 법원의 재판 연기 발표에 상관없이 오는 14일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을 상대로 하는 청문회 계획서를 의결했다. 증인 명단에는 조희대 대법원장을 포함해 12명의 대법관이 모두 포함됐다. 자신들에게 불리한 판결을 했다고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에게 탄핵 위협도 모자라 청문회로 망신을 주겠다는 것이다.

대선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유력 후보와 입법 권력은 사법부를 위협하고, 사법부는 예비 권력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이것으로 안심이 안 되는지 이 후보에게 장애가 될 수 있는 문제들을 원천 봉쇄하기 위한 법들도 군사작전처럼 처리했다. 놀라운 일들이 마구잡이로 벌어지고 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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