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대법원장이 지난 1일 오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공직선거법 사건 전원합의체 선고를 위해 대법원 대법정에 입장해 앉아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대법원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 상고심 재판기록 열람 과정을 공개하라는 서명운동이 이틀 만에 100만명을 돌파했다. 12·3 내란을 수습하는 차기 대통령 선거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될 대법원 판결이 절차적 정의를 위반한 게 아니냐는 시민들의 합리적 의문이다. 대법원의 해명은 궁색하기만 하다. “6만쪽 논란은 상고심 구조를 모르는 무리한 호도”, “기록을 일일이 살피는 게 본질은 아니다”라는 식이다. 마치 ‘법을 잘 모르는’ 시민들이 생떼를 쓰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이래도 되는가.
대법원의 해명은 스스로 적법절차를 지키지 않았음을 시인하는 것과 같다. 형사소송법은 증거재판주의(307조)에 따라 재판하도록 돼 있다. 범죄 사실의 인정은 반드시 증거를 보고 판단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판사가 증거를 선별해 모은 재판기록을 직접 보고 유무죄를 판단하라는 것이다. 대법원은 재판연구관이 기록을 검토해서 작성한 보고서를 대법관이 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관행일 뿐이다. 관행이 적법절차에 따른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할 수는 없다. ‘재판 업무 보조원’에 불과한 재판연구관이 취사선택한 증거만 보고 판단한 것을 대법관의 판결이라고 할 수 있겠나.
물론 1인당 연간 4천건을 처리해야 하는 대법관이 방대한 소송기록을 다 보는 건 불가능하다. 모든 사건마다 소송기록을 다 열람하고 판결하라는 건 비현실적이다. 그렇다면 기록을 다 본 것 못지않게 충분한 심리가 이뤄지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를 위해 대법원 소부 심리를 거쳐 전원합의체(전합)에 회부하고, 대법관들이 충분한 숙의와 토론을 거쳐 판결하도록 한 절차를 둔 것이다.
하지만 이 후보 상고심은 소부 심리도 없이 조희대 대법원장이 직권으로 전합에 회부하고, 9일 만에 단 두차례 평의를 거친 뒤 원심 판결을 파기했다. 재판연구관들도 6만7천쪽에 이르는 재판기록을 충분히 검토할 수 없을 만큼 전례 없는 ‘속도전’이었다. 이러니 ‘졸속·부실 재판’ 논란이 일고 있는 게 아닌가.
대법 판결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이 큰 만큼 파기환송심은 적법절차를 더욱 충실하게 지켜야 한다. 그런데도 서울고법은 대법원으로부터 기록을 전달받자마자 곧바로 서울고법 형사7부에 사건을 배당했다. 재판부도 당일 공판기일(15일)을 잡고 소환장 및 기일통지 발송에 이어, 집행관 송달을 촉탁했다. 상고심과 같은 속도전을 벌일 태세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더 부추기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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