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오늘(2020년 5월7일) 새벽 인도 안드라프라데시주 비샤카파트남 엘지(LG)화학 공장의 거대한 화학물질 저장 탱크에서 흰 증기가 분출되기 시작했다. 플라스틱으로 중합되기 전 단계인 스티렌이 기화해 나온 것이다. 2군 발암물질인 스티렌은 사람이 마실 경우 호흡기 등 장기 손상을 일으키기 때문에 공정 외부로 누출되면 안 되는 유독 물질이다.
이렇게 누출된 스티렌 818톤은 바람을 타고 200여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주민 거주 지역을 덮쳤다. 불쾌한 냄새에 자다가 깨어난 주민들은 1984년 인도 보팔의 유니언 카바이드의 독가스 누출 참사의 악몽이 재연되는 듯한 공포 속에서 긴급 대피해야 했다. 사고 당일에만 6살과 10살 여자아이를 포함한 주민 12명이 숨졌고, 600여명이 다쳤다. 이들 상당수는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되거나 호흡곤란, 어지럼증, 구역질, 눈 따가움 등을 호소하며 병원에 실려 갔다. 소와 말, 개 등의 가축이 죽고, 농작물 피해, 식수 오염 등도 이어졌다.
이 사고는 저장 탱크 설계 불량, 냉각장치 결함, 안전 규범 불량, 안전 의식 미비 등이 어우러져 빚어진 참사였다. 안드라프라데시 주정부가 구성한 전문가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 공장 출입문을 포함한 총 36곳에 설치돼 있는 경보장치마저 작동하지 않은 것이 주민 피해를 키운 것으로 드러났다.
엘지화학은 사고 직후 누리집에 사과문을 올려 주민의 건강과 안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며 사고 수습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약속과 달리 회사는 피해를 신속히 배상하라는 주민들의 요구에 법적 분쟁 해결을 위한 공탁금으로 대응하며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피해 지역에 대한 지원 기금 설립, 피해자들에 대한 평생 건강 추적 관리와 주기적 암 검진 등도 마찬가지다.
그러다 국내외 환경단체들의 비판이 이어지자 사고 발생 뒤 4년이 지난 작년 7월에야 서울 본사 대표가 현지를 방문해 200억원 규모의 지원 대책을 발표했다. 이때 약속한 의료 서비스와 주민 복지를 위한 재단은 지난달 공식 설립됐다. 하지만 개인 배상은 소송이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환경보건시민센터를 중심으로 한 환경단체들은 올해도 사고 발생일에 맞춰 서울 종로 엘지광화문빌딩 앞에서 피해 주민들의 요구를 외칠 예정이다. 5년째 이어져온 이들의 목소리에 올해는 좀더 긍정적인 메아리가 있기를 기대해본다.
김정수 편집부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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