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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옥의 말과 글] [404] 어제 우리가 한 일

조선일보 백영옥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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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옥의 말과 글] [404] 어제 우리가 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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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성취를 한 이들에게 정체기를 어떻게 극복하는지 물으면 “어떻게 하긴요, 그냥 해요”라고 답할 때가 많다. 하지만 ‘그냥’이란 말에는 그들 특유의 루틴이 있는데, 이것을 정리한 책이 댄 애리얼리의 ‘루틴의 힘’이다.

비틀스의 멤버 조지 해리슨이 ‘내 기타가 조용히 우는 동안’을 작곡한 건 어머니 집에 머물 때였다. 극도로 지쳐 있던 그는 집에서 아무 책이나 펼쳐서 나오는 단어로 곡을 만들기로 했고, 그때 눈에 들어온 문장이 ‘조용히 울다’였다. ‘while my guitar gently weeps’는 그렇게 탄생했다.

작가 레이 브래드버리는 매일 아침 떠오르는 단어를 적었다. 호수, 군중, 밤 열차 같은 단어를 적으며 그는 그 단어와 반대되거나 비슷한 단어를 재배치해 자기 삶과 연관시켰다. 그러면 재밌는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창작이 막혔을 때 많은 예술가들의 탈출구는 산책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아예 걸어 다니면서 제자들을 가르쳤다. 그의 학파를 ‘소요학파’라 부르는 이유다. 내 경우 아무 버스나 타고 낯선 동네를 걷는 루틴이 있는데, 그렇게 길을 걷다가 ‘실연의 기념품 가게’ 같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했다.

스티브 잡스의 일정표에는 독특하게 ‘일정 없는 일정’이 있었다. 빌 게이츠도 1년에 두 차례 호숫가 통나무집에서 자신에게 생각 주간을 선물했다. 여행 가방에 가장 유용한 게 물건이 아니라, 새로운 걸 채워 넣을 ‘빈 공간’이란 걸 그들은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 어린 시절 시인 김용택을 키운 건 8할이 심심함이었다. 그는 텅 빈 시간에 늘 나무와 꽃을 관찰했는데 그것은 종종 시가 됐다.

오래전, 방송에서 본 장면이 떠올랐다. 추운 겨울 바다로 몸을 던지는 해녀 할머니에게 피디가 바다에 해산물이 많냐고 묻자 별로 없다는 답이 돌아온다. 당황한 피디가 “근데 왜 들어가세요?”라고 묻자 해녀가 답한다. “어제도 했었거든!” 힘들고 지친 그 순간에도 반복적으로 내가 하고 있는 일, 그것이 나를 만든다. 결국 삶은 내 습관의 총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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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옥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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