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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짐승의 뱃속'에도 친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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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짐승의 뱃속'에도 친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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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쿠바 메이데이- 2

쿠바를 위한 반제국주의 국제 연대를 표방하며 미국서 출범한 비영리 풀뿌리 조직 '벤세레모스 여단' 참가자들. vb4cuba.com

쿠바를 위한 반제국주의 국제 연대를 표방하며 미국서 출범한 비영리 풀뿌리 조직 '벤세레모스 여단' 참가자들. vb4cuba.com


(이어서) 미국이 쿠바 식민지를 두고 스페인과 치른 1898년 전쟁은 시어도어 루스벨트를 제26대 대통령으로 이끈 결정적인 도약대였다. 공화당 정치인 루스벨트는 개전 직후 국방부 해군담당 차관보 직을 박차고 나와 스스로 의용기병대를 모집해 전장으로 달려갔다. 그는 미국-스페인 전쟁의 분수령이던 쿠바 산후안 힐(San Huan Hill)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며 일약 미국의 영웅이 됐고, 쿠바는 400년 스페인 식민지에서 미국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러시아- 중국에 이은 세 번째이자 사실상 마지막 사회주의 혁명국가 쿠바는, 물론 국력과 지정학적 영향 탓이 크긴 하겠지만, 러시아나 중국과 달리 이념적 패권을 행사하며 주변국을 억압한 적이 없다. 오히려 미국과 유엔의 포괄적 경제제재에 질식해가면서도 적어도 공식적으론 단 한 번도 자본-미국에 굴복하지 않았다. 통칭 메이데이 여단의 쿠바 응원 방문은 이념과 체제에 대한 동조를 넘어 약소국의 자존-자결 의지에 대한 응원이었다.

예컨대 메이데이 여단의 주력 중 하나로, 유색인종 진보 교회 지도자들이 지역사회 공동체 지원을 위해 설립한 미국의 ‘종교간공동체조직재단(IFCO)’이 92년부터 매년 대규모 구호물품 수송단을 이끌고 쿠바 메이데이에 동참해온 것도 이념적 지지가 아니라 인도주의적 연대였다. 그들은 쿠바 시민들에게 그들이 혼자가 아니며 미국이라는 ‘짐승의 뱃속(belly of the beast)’에도 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2009년 미국과의 재수교 이후 해빙기를 맞는 듯했던 쿠바는 이후 트럼프-바이든-트럼프 정부를 거치며 극단적인 외교적 난기류에 휩쓸렸고, 2기 트럼프 정부의 국무장관 마코 루비오는 “공산 테러-독재 국가 쿠바”를 맹비난해온 플로리다의 쿠바 망명자 출신 정치인이다. 좌파 정부에 대한 내부의 동요와 분열 조짐도 있다고 한다. 벤세레모스 여단 등 세계인들은 올해 메이데이에도 아바나 혁명광장에 집결했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