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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로 간 개 ‘라이카’가 묻는다…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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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로 간 개 ‘라이카’가 묻는다…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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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라이카’에서 라이카 역을 맡은 배우 박진주(왼쪽)와 왕자 역의 김성식. 쇼노트 제공

뮤지컬 ‘라이카’에서 라이카 역을 맡은 배우 박진주(왼쪽)와 왕자 역의 김성식. 쇼노트 제공


동물은 인간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인류가 과거부터 품었던 의문이다. 아직까지 명확하게 풀지 못한 난제에 대한 해답으로 인간은 ‘의인화’라는 문학적 기법을 고안했다. 동물의 생각을 인간의 사고로 대치한 것이다. 그만큼 인간은 동물과 소통하고 싶어 했다.



지난 3월 서울 종로구 두산연강홀에서 초연을 시작한 뮤지컬 ‘라이카’(18일까지)도 생각하는 동물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2차 세계대전 뒤 냉전의 한 복판에서 미국과 소련이 치열한 물밑 경쟁을 했던 ‘우주’가 그 배경이다.



처음에는 소련이 경쟁에서 한발 앞섰다. 1957년 10월4일, 소련은 ‘여행하는 동반자’라는 뜻의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한다.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이다. 고무된 소련은 10월 혁명 40주년을 기념하고자 살아있는 생명체를 우주로 보낼 계획을 세우고 스푸트니크 2호를 개발한다. 그 생명체는 바로 ‘라이카’라 불린 실험용 개다.



우주선 안에 갇혀 우주로 떠난 라이카가 비극적 죽음을 맞는 것이 역사 속 사실이다. 하지만 뮤지컬은 라이카(박진주∙김환희∙나하나)가 어느 작은 행성에 불시착한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 행성은 바로 생텍쥐페리의 동화 ‘어린 왕자’에 나오는 ‘비(B)612’다. 비행 도중 행방불명된 생텍쥐페리와 우주에서 사라진 라이카가 비612에서 만난다는 설정이 그럴 듯하다. 그곳에서 라이카는 외계 생명체 무리와 왕자(조형균∙윤나무∙김성식), 장미(서동진∙진태화), 바오바브 등을 만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자신을 키워주고 돌봐준 인간 캐롤라인(한보라∙백은혜)에게 돌아가려는 라이카와 이를 말리는 왕자와 장미 사이에서 갈등이 이어진다.



주인공들이 던지는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 물음이 작품을 끌고 가는 핵심 주제다. 비록 버림받았지만 라이카에겐 인간에 대한 사랑과 연민이 남아있다. 왕자와 장미는 정반대다. 왕자는 “인간은 우주의 주인인 것처럼 싸우는 거 참 좋아해” “거짓말을 참 잘해”라며 적대감을 드러낸다. 이런 적대감은 과거 그가 겪었던 어떤 사건과 연관돼 있다. 극 중반 이후 왕자의 깜짝 놀랄 계획을 알게 된 라이카와 행성 식구들의 갈등은 더욱 증폭된다. 갈등을 해결하고 라이카는 지구로 돌아갈 수 있을까? 결말을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다.



초연인데도 기발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이끄는 솜씨가 매끄럽다. 한국뮤지컬대상, 한국뮤지컬어워즈 등에서 여러차례 수상한 한정석 작가, 이선영 작곡가, 박소영 연출가가 손을 잡았다. 뮤지컬계에서 이들은 작품성과 흥행성을 보장하는 ‘한이박’ 콤비로 불린다.



조르주 멜리에스의 1902년 영화 ‘달세계 여행’이 연상되는 동화적인 무대 디자인과 로큰롤부터 구슬픈 아리아까지 총 26곡으로 구성된 넘버가 보는 재미와 듣는 기쁨 모두를 충족시킨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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