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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설과 외계어가 날뛰는 세상. 두런두런 이야기하듯 곱고 바른 우리말을 알리려 합니다. 우리말 이야기에서 따뜻한 위로를 받는 행복한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게티이미지뱅크 |
경외하거나 혹은 그저 두려워하여 직접 말하지 못하고 에둘러 말할 때가 있다. 과거 왕의 이름을 직접 부르지 못하던 것이 그랬고, 영화로도 나온 소설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강력하고 잔혹한 어둠의 마법사인 볼드모트를 이름 대신 '그 사람' '이름을 말해서는 안 되는 그자'라고 부른 것도 그런 예이다.
말해서는 안 되거나 말하기 꺼려지는 말을 금기어라고 한다. 금기는 마음에 꺼려서 하지 않거나 피하는 것으로, 어떤 대상이나 사물을 표현하지 않거나 조심하는 것을 말한다. 금기의 대상은 볼드모트처럼 인물의 이름이 되기도 하고 질병, 재난, 성(性)과 관련한 것이 되기도 한다.
죽음도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금기의 대상 중 하나다. 사람은 태어나면 누구나 떠나지만, 아무도 그 이후에 어떻게 되는지 모르기에 두렵기 때문이다. 나조차도 죽는다는 말을 되도록 피하며 쓰게 된다. 금기 대상에 대해 직설적인 표현을 피하고 에둘러 말하여 두려움이나 어색함을 누그러뜨리기 위해서는 완곡 표현을 쓰게 된다. 죽는다는 말 대신 '가다' '운명하다'와 같이 다른 어휘를 쓰기도 하고, '눈을 감다' '숨이 멎었다'와 같이 부분이 전체를 대신하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또 '하늘로 돌아갔다' '세상을 뜨다' '세상을 떠나다' '요단강을 건너다'와 같이 '돌아가다, 뜨다, 떠나다, 건너다'와 같은 표현을 쓰기도 한다. '돌아가는 것, 뜨는 것, 떠나는 것, 건너는 것' 등은 모두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표현들은 직접적인 언급을 피하는 것 말고도 다른 의미가 있다. 사후의 일을 알 수 없기에 죽으면 소멸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이동하거나 새로운 삶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믿음으로써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려움은 나의 죽음만 아니라 남의 죽음에도 마찬가지이기에, 사랑하는 이가 돌아가도 어딘가에 존재할 것이라는 믿음만으로 위안이 되기도 한다.
요즘은 반려동물이 떠났을 때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는 말을 많이 쓴다. 반려동물이 떠나면 무지개 다리를 건너고, 그곳에선 아프고 나이 들었던 동물들도 건강하게 산다는 외국 시에서 나온 표현이라고 한다. 이것 역시 반려동물이 떠나서도 잘 지내길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말일 것이다.
완곡한 표현은 어색함과 두려움을 누그러뜨린다. 생각이 말이 되고, 말이 생각을 바꾸기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