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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몰하지 않을 사랑’…당신이 돌아올 4월의 미래 [김탁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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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몰하지 않을 사랑’…당신이 돌아올 4월의 미래 [김탁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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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경상대학교 사범대학 마당에 세워진 유니나 교사 추모비. 경상대 제공

2020년 경상대학교 사범대학 마당에 세워진 유니나 교사 추모비. 경상대 제공


김탁환 | 소설가



어느덧 4월의 마지막 날이다. 해마다 4월이면 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되살피며 생각하고 느끼느라, 피어나는 봄꽃들을 즐길 여유마저 없다. 4월이 지나면 5월이 오는 대신 또 다른 4월이 오는 듯도 하다. 1948년 4월 다음에 1960년 4월이 들어서고 그다음에 2014년 4월이 부두에 도착하는 식이다. 여기에 더하여 2025년 4월을 새롭게 기억하려 한다.



올해는 대통령 탄핵 사건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선고가 4월4일 이뤄지는 바람에 더더욱 분주했다. 전원일치로 파면이 결정되었지만, 친위 쿠데타를 일으킨 내란 세력의 준동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음양으로 저항하며 반전의 기회를 엿보는 형국이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하여 고등학교 강연을 모처럼 다녀왔다. 약속한 시각보다 일찍 가서, 전라북도 완주군의 고산고와 광주광역시의 전남여고 학생들이 마련한 다양한 추모 프로그램들을 돌아보았다. 중간고사 기간인데도 학생들은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관련 영상을 찾아보며 2014년 4월을 되새겼다. 내가 쓴 세월호 소설들을 읽고 대화를 나누는 것도 그중 하나였다. 미리 받아 본 쉰개가 넘는 질문 가운데 반복된 물음이 눈에 띄었다. ‘제주도에서 온 편지’라는 단편에서, 스물아홉살인 일본어 교사 윤현진이 편지를 띄우는 날을 왜 2025년 4월16일로 했느냐는 것이다.



소설은 불특정 다수에게 읽히려고 짓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특정 소수나 혹은 단 한 사람을 위해 창작되기도 한다. ‘제주도에서 온 편지’는 세월호 생존 학생 중에서 교사를 희망한 이들을 위해 썼고, 세월호에서 희생된 교사 중에서 2학년 1반 담임인 유니나 교사와 그 가족을 위해 썼다.



유 교사는 경상대학교 일어교육과를 졸업한 후, 경기도 지역 중등교사 임용시험에 합격했고, 2014년 단원고 2학년 1반 담임을 맡았다. 세월호가 침몰 위기일 때, 유 교사는 5층 객실에서 아래층으로 내려갔고, 학생들 곁에 머물며 한명이라도 더 살려내려 애쓰다가 목숨을 잃었다. 너무나 푸르른 스물아홉살이었다.



죽음은 끝이고,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들 한다. 과연 그러한가. 2016년 나는 ‘416의 목소리’라는 팟캐스트를 진행하며 생존 학생들을 만났다. 장래희망을 물었더니, 젖은 눈을 훔치며 교사가 되겠다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 가을에 나는 2025년 4월16일을 그리며 단편을 썼다.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교사가 되고, 단원고에 부임하여 2학년 1반 담임을 맡아 제주로 수학여행을 떠나는 미래를 상상했다. 2025년쯤 되면, 참사의 진상이 규명되고 책임자들이 모두 처벌받으리라 예측한 것이다.



단편을 쓸 때는 제법 먼 미래였는데 어느새 2025년 4월이 현재가 되었다. 2014년 세월호에 탔던 열여덟살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이 스물아홉살 교사가 될 만큼 시간이 흐른 것이다. 내 소설처럼, 그들이 단원고에 부임하여 학생들과 수학여행을 떠나진 않더라도, 다양한 교실에서 열여덟살 제자들의 눈망울을 들여다보고 있을 것이다.



미성년이 성년이 되고, 고등학생이 교사가 되는 동안 세상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다시는 2014년 4월의 아픔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이 나라를 바꾸겠다던 약속은 지켜졌을까. 11년 동안 대통령 선거가 두번 있었고, 두명의 대통령이 탄핵을 당해 파면되었다. 메르스 참사에 이어 코로나 사태가 전국을 휘감았으며, 이태원 참사로 많은 젊은이가 목숨을 잃었다.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가다가 일어난 참사가 서울특별시의 거리를 걷다가 목숨을 잃는 참사로 바뀐 셈이다. 나는 2025년이란 미래를 너무 낙관했다.



그렇지만 작금의 현실이 비관적이지만은 않다. 제2의 유니나가 된 스물아홉살 교사들이 열여덟살 이쪽저쪽의 고등학생들과 함께 4월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교사와 학생, 부모와 자식, 중앙과 지방 등 세월호를 기억하는 층이 두터워지고 폭이 넓어지고 있다.



2025년 4월16일이 미래였다가 현재로 바뀌었다는 설명을 들은 학생으로부터 내년엔 그 현재가 과거로 떨어지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또 다른 미래가 펼쳐진다고 답했다. 2014년 스물아홉살이었던 유니나 교사도, 세월호 생존 학생 중에서 2025년 스물아홉살이 된 교사들도, 2026년엔 처음 가보는 서른살의 4월을 맛보고, 2027년엔 서른한살의 4월에 가닿을 것이다. 과거가 과거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현재도 되고 미래도 되는 순간을, 돌아오는 4월마다 느꼈으면 한다. 그것이 우리가 함께 아로새겨가는 4월의 미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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