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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욱의 한반도 워치] 中의 ‘분쟁 회색지대화’ 전략… 서해 구조물은 남중국해 판박이다

서울흐림 / 20.8 °
中 시진핑의 ‘9단선’ 영토 확장 야욕, 베트남 등 주변국과 충돌
부산 등 항구 129곳 투자해 물류망 확보… 무역 전쟁서도 여유
인공 섬에 미사일까지… 한반도 겨냥한 전략에 비례 대응 시급
사진=연합뉴스, 그래픽=이철원

사진=연합뉴스, 그래픽=이철원


2021년 2월 중국은 갑자기 해경법을 시행했다. 중국 해경은 해경법을 근거로 남중국해 분쟁 지역에서 물대포를 사용했다. 강력한 수압을 가진 물대포의 일차 피해자는 필리핀 해경함이었다. 중국은 해경법을 무시한 필리핀 해경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중국이 강력한 해군이 있는데도 해경법을 발효시킨 이유는 무엇일까? 분쟁의 회색지대(gray zone) 전술 때문이다. 해군 단속에 의한 군사적 충돌 가능성을 배제하면서 야금야금 남중국해를 장악했다.

중국 해경은 주권 침해로 간주하는 외국 행위에 대해 갑판 기관총 같은 무기 사용 등 ‘모든 필요한 조치’를 허용했다. 해군력 없이 주변국과 해양 갈등을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통해 미 해군 개입의 빌미를 차단했다.

2016년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는 필리핀이 제기한 남중국해 분쟁 중재재판에서 중국에 패소 판결을 내렸다. 중국은 전략을 바꾸어 해경법을 제정하고 집행 절차를 국내법으로 법제화했다. 분쟁이 합의되기 전까지 국내법으로 법제화하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는 유엔해양법 협약을 무시했다.

그래픽=이철원

그래픽=이철원


멀리 남중국해에서 전개된 해양 분쟁을 10년 이상 주목해온 이유는 강 건너 불이 아니기 때문이다. 남중국해는 세계 해양 물류의 25%, 우리 원유 수송량의 ‘전략적 관문(choke point)’이다. 매장된 석유는 최소 110억 배럴, 천연가스는 190조 큐빅피트다.

중국의 해양 패권 굴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1953년 남중국해의 80% 이상이 포함된 9단선(九段線) 지도를 공개했다. 중국이 이른바 ‘역사적 영유권’을 주장한 9단선은 남중국해 주변에 U자 형태로 배열한 9개의 선을 연결했다. 9단선이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의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과 겹치면서 2000년대 들어 바다 분쟁이 본격화됐다.


15세기 명나라 정화(鄭和) 대원정 이후 잠잠하던 중국의 해외 팽창은 2012년 시진핑 주석 집권 이후 일대일로(一帶一路)와 9단선 전략으로 구체화됐다. 2014년 미군의 독무대였던 남중국해에 도전장을 던졌다. 1980년대 자체 설정한 해상 방어선인 오키나와∼대만∼필리핀을 연결하는 ‘제1 도련선(島鏈線·island chain)’은 9단선으로 무효화됐다. 이후 제1 도련선 바깥의 오가사와라~괌~사이판~파푸아뉴기니를 연결하는 ‘제2 도련선’을 선언했고 실효적 완성은 2030년이다.

동시에 베이징은 전 세계 항구 129곳에 투자했다. 파나마 운하를 비롯해 수에즈 운하, 페르시아만 등 물류 중심 바다에는 어김없이 중국이 투자한 항구들이 있다. 미국 외교협회(CFR)는 중국이 이 중 17개의 항구를 실질적으로 소유했고, 14개 항구도 군사적 사용이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부산 컨테이너 터미널의 2대 주주는 중국 산둥성 물류 기업이다. 중국이 미국과 무역 전쟁에서 느긋한 이유는 바다를 장악했기 때문이다.

남중국해 해양 갈등이 한반도 서해로 북상했다. 중국이 2018년부터 서해 잠정수역에 설치한 대형 철골 구조물과 민간이 위장 설치한 2개 양식장 역시 회색지대 전술이다. 이 수역은 한·중 간 배타적 경제수역(EEZ)이 겹친 지역으로 어업 행위를 제외한 시설물 설치나 자원 개발이 금지된다. 해상 고정식 구조물은 중동 지역에서 폐기된 석유 시추선(試錐船)이다. 향후 10개 이상의 구조물이 추가로 설치된다. 연말연시 혼란스러운 한국의 계엄 정국 상황을 고려해 알 박기에 나섰다.


서해를 중국의 내해로 만들려는 ‘회색지대화’ 전략은 대만 문제와 어울려 안보 불안 요인이다. 중국의 서해 내해화(內海化) 전략은 우리 해군의 기동을 약화시켜 한미 해군 연합 작전을 무력화한다. 최종 목표는 동경 124도를 작전 경계선으로 정해서 이 안으로 외국 함정이 진입하는 것을 차단하는 것이다.

과거 최윤희 해군참모총장은 중국 방문 시 서해 124도 서쪽에서 해상 작전을 중지하라는 압박도 받았다고 한다. 남중국해 사례와 같이 인공섬->군요새화->우리 바다 우기기 등 3단계 공정을 추진한다. 석유 시추선으로 조성한 인공섬에 미사일을 배치해 백령도, 평택 제2함대사령부, 오산 미군기지 등 한반도 수도권을 겨냥한다. 북한의 이북 5도 기습 공격 가능성과 함께 새롭게 부상하는 서해 안보 불안 요인이다.

세계 5위의 원유 수입국인 한국에 남중국해와 서해는 핵심 수송로다. 2차 대전 당시 일본으로부터 남태평양 제해권을 탈환한 미 해군 영웅인 니미츠 제독(1885~1966)은 “수도를 빼앗기고도 전쟁에 승리한 나라는 있지만 석유 수송로를 빼앗기고 전쟁에 이긴 나라는 없다”고 일갈했다.


최근 중국에서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바라본 서해 바다는 봄날 햇볕이 평화로워 보였다. 하지만 바다 구조물 설치로 서해 수송로와 어업은 물론 해상 평화는 깨질 것이다. 과거 고구려사와 영토의 중국 편입이라는 동북공정의 로드맵이 서해에서 전개되는 시나리오는 이미 시작됐다. 2018년 구조물 설치가 시작될 무렵 문재인 정부는 사실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2015년 시작된 한중 해양 경계 획정 회담은 중국의 비협조로 지지부진하다.

최소 3년이 소요되는 법적 쟁송도 필요하지만 외교적 및 물리적 대응이 우선이다. 외교적으로 무단 가설물 철거를 요구하지만, 유사한 시설을 건설하는 비례 대응은 불가피하다. 여야 없이 단호한 대응을 주문해서 1100억원의 시설물 설치 비용을 추경에 요구했는데 오히려 해양수산부가 절반만 수용한 것은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처사다. 중국이 제시한 현장 방문은 요식행위에 불과하다. 만시지탄이지만 신속한 비례 대응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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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욱 숙명여대 석좌교수·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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