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icy 2.0]기초연금, 70%의 덫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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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재량 지출 추이/그래픽=김지영 |
"의무지출 비중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으며 향후 재정여력 대부분을 의무지출 충당에 투입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기획재정부가 지난달 발표한 '2026년도 예산안 편성 및 기금운용계획안 작성지침'에는 과거엔 없었던 그래프 하나가 들어갔다. '의무지출 증가율 추이'를 보여주는 그래프다.
의무지출은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 등 4대 공적연금과 건강보험, 지방교부세, 지방교육재정교부금 등 법에 지급 의무가 명시된 지출을 뜻한다. 법적으로 지급 의무가 있는 탓에 그동안 의무지출은 조정할 수 없는 성역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고령화 등으로 의무지출 소요가 눈덩이처럼 불면서 의무지출에 대한 점검 및 개혁을 미뤄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실제 2025년 예산(673조3000억원)은 2024년(656조6000억원) 대비 총지출이 16조7000억원 증가했는데 의무지출 증가폭(17조6000억원)이 총지출 증가량을 웃돌았다. 그만큼 정부가 경기 대응 등을 위해 임의로 투입할 재량지출을 전년보다 줄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전체 예산에서 의무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52.9%에서 올해 54.2%로 높아졌다. 이 비율은 2028년 57.3%까지 높아질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추세는 더 가팔라질 전망이다. 지난해 12월 초고령사회(65세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 이상인 경우)에 진입하면서 연금·의료 등 복지 지출 급증이 현실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복지지출 대부분은 의무지출이다.
의무지출이 늘어나면 그에 따른 재원 마련을 위해 국채 발행을 늘려야 한다. 국채 이자 역시 의무지출에 해당한다. 의무지출이 증가할 수록 재정건전성이 악화되고 미래 세대에 부담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정부가 재정건전성을 지키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재정지출을 쥐어짜고 있지만 이 역시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그만큼 경기 회복 마중물, 산업 경쟁력 제고 등 재정 역할을 못하고 있단 의미이기 때문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고려할 때 의무지출에 대한 구조조정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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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연금 재정지출 추이/그래픽=김지영 |
의무지출 구조조정 수술대에 올라야 할 대표적 사업으로는 기초연금이 꼽힌다. 기초연금은 노인 빈곤 완화를 위해 2014년 도입됐다. 현재 65세 이상 노인 소득 하위 70%를 대상으로 단독가구 기준 월 최대 34만2510원, 부부가구는 월 54만8000원이 지급된다.
문제는 갈수록 기초연금 수급자에서 취약계층이 아닌 노인의 비중이 늘어나고 있단 점이다. 현행 기초연금 수급자 산정 방식이 노인 인구가 증가하면 일률적으로 수급자도 많아지는 구조인 탓이다.
정치권의 '포퓰리즘' 정책도 기초연금 재정을 휘청이게 한다. '기초연금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10만원씩 오른다'는 공식이 있을 정도다.
실제 기초연금 인상 공약은 2012년 대선 이후 꾸준히 등장해왔다. 기초연금의 전신인 기초노령연금이 도입된 2007년만 해도 10만원가량의 기초연금이 지급됐다.
이후 2012년 박근혜 당시 대선 후보가 "기초노령연금을 모든 노인에게 월 20만원 지급하는 기초연금으로 확대·개편하겠다"고 공약한 게 지금의 기초연금이 됐다.
박근혜정부가 들어선 이후 재정적 한계로 모든 노인에게 지급하겠단 공약은 지키지 못했지만 2014년 7월부터 지급액은 두 배 늘려 20만원을 소득 하위 70% 노인에게 지급했다. 이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은 "그동안 저를 믿고 신뢰해주신 어르신들 모두에게 기초연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결과가 생겨 죄송한 마음"이라며 사과하기도 했다.
19대 대선에선 문재인 전 대통령이 '기초연금 30만원'을 공약했고 이를 현실화했다.
20대 대선에서도 여야 후보 모두 '기초연금 40만원'을 내세웠다. 이와관련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9월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공약대로 기초연금 40만원을 이행하겠다고 밝혔다. 2026년 중위소득 50% 이하 고령층을 대상으로 우선 40만원으로 인상하고 2027년 전체 대상자로 확대하는 내용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2014년 6조8000억원이었던 기초연금 재정 지출은 2023년 22조6000억원까지 불어났다. 10년새 3배 이상 증가했다.
노인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정치권으로선 이번 조기 대통령선거 과정에서도 기초연금 관련 공약을 내놓을 가능성이 크다. 당장 안철수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는 기초연금의 소득분위별 차등적 인상을 공약으로 발표했다. 유력 후보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 역시 지난 대선 과정에서 기초연금을 40만원으로 올리고 노인 모두에 지급하자고 공약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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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연금 재정 소요액 전망/그래픽=이지혜 |
재정을 책임지는 기재부로선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기초연금 재정 소요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기초연금적정성평가위원회 추계에 따르면 기초연금에 들어가는 재정은 △2030년 39조6621억원 △2050년 125조4195억원 △2070년 238조29억원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 출신인 김영미 동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기초연금이 노인빈곤율 해소를 위해 만든 제도라면 저소득 노인에 (지원을) 집중하는 게 맞지만 (현실에선) 국민들이 선호하지 않는다"며 "이 때문에 기초연금이 전문가적인 효과성을 가지고 논의되지 않고 정치적으로 논의되는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김진수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기초연금 (재정)이 선거의 희생물처럼 됐다"고 말했다.
세종=박광범 기자 socool@mt.co.kr 김주현 기자 nar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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