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기후위기비상행동 활동가들이 55회 지구의 날을 맞아 ‘기후재난과 민주주의 위기, 생명돌봄의 정치가 필요하다’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신소영 기자 a href=\"mailto:viator@hani.co.kr\"viator@hani.co.kr/a |
박기용 | 지구환경팀장
지난 22일 55회 ‘지구의 날’ 아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가 페이스북을 통해 기후환경 공약을 발표했다. 24일엔 에너지 공약 발표가 있었다. 마침 한 주 전 기후 단일 의제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자는 기후환경단체들의 제안이 있었다. 짧은 대선 과정에서 유력 후보의 연이은 관련 공약 발표는 반가운 일이다.
이 후보가 기후공약을 발표한 지구의 날은 책 ‘침묵의 봄’(1962년)으로 알려진 미국의 해양생물학자 레이철 카슨과 관련이 깊다. 서구 환경운동을 촉발한 것으로 평가받는 그의 책은 살충제 ‘디디티’(DDT)에 대한 경고를 담았다. 인간에게 악영향이 적다며 무분별히 쓰인 화학물질이 결국 먹이사슬을 통한 생물농축으로 사람의 암을 유발한다는 주장이었다. 인간이 생태계에 미친 강력하고 부정적인 영향을 지적한 카슨의 주장에 공감한 한 미국 상원의원의 건의로 1970년 만들어진 게 지구의 날이다.
한데 지구의 날에 발표된 이 후보 공약은 내용이 썩 개운치 않다. 대한민국을 ‘탈플라스틱’ 선도국으로 만들고, 2040년까지 탈석탄을 하겠다고 했다. 지난해 민주당 총선 공약의 반복이다. “기후악당 국가의 오명을 벗겠다”며 얘기한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이나 ‘2035년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 재정립’은 더 구체적인 목표가 필요하다. 이미 진행 중인 사안이기 때문이다.
2028년 33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3)를 유치하겠다는 것이 새로우나, 국제회의 유치가 ‘탈오명’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최근 3년 아랍에미리트, 이집트, 아제르바이잔 같은 화석연료 국가들이 당사국총회를 열면서 총회의 신뢰도를 갉아먹었다는 비판이 나왔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등이 나서 “의장국 자격에 엄정한 기준이 필요하다. 화석연료 퇴출이나 전환을 지지하지 않는 국가를 배제해야 한다”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총회 개최 그 자체보다, 개최국의 면모를 얼마나 갖췄느냐가 중요해졌다. 한국은 세계 기후환경단체들의 연대체인 ‘기후행동네트워크’가 꼽은 ‘오늘의 화석상’을 2023년과 지난해 두 해 연속 수상했다. 여러 나라에서 가스전을 개발하고, 공적 금융의 화석연료 지원을 금지하자는 협약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기후악당’ 오명이 더 강화될지 모른다는 데 있다. 이 후보와 민주당이 윤석열표 ‘핵발전(원전) 강국 건설’ 정책을 계승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 때 밝힌 ‘감원전’은 쏙 사라진 채 인공지능 산업의 전력 수요를 들어 “노후 원전 수명 연장을 비롯해 원전을 포함한 에너지 믹스를 논의하고 있다”고 말한다. 민주당 미래경제성장전략위원회 이언주 위원장은 아예 “탈탈원전”을 못 박았다. 유력한 이 후보가 이런 태도를 고수해 대통령이 되면 차기 정부 임기인 오는 6월부터 2030년 5월까지 수명이 만료되는 원전 10기가 계속 가동될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은 이미 지난 2월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통해 10년 만에 신규 핵발전소 2기와 소형 원전 1기를 짓는 계획에 동의해준 바 있다.
일견 이로워 보이는 원전은 방사성 폐기물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치명적 한계가 있다. 자칫 인류와 생태계 모두에 회복 불가능한 피해를 줄 수 있다. ‘침묵의 봄’의 경고로 디디티는 결국 사용이 금지됐지만, 일본이 태평양에 방류한 후쿠시마 핵오염물질은 디디티처럼 생물농축을 통해 해양 생태계와 인류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카슨 역시 핵오염물질의 바다 방류에 적극 반대했다. ‘침묵의 봄’ 발간 직후인 1963년 한 심포지엄 연설에서 방사성 폐기물을 바다에 투척하는 행위를 “가장 심각한 환경오염 문제”로 꼽기도 했다.
한국이 기후악당이 된 이유는 단순하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의 말처럼 “지구보다 대한민국을 더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제대로 오명을 벗으려면, ‘우리를 더 사랑하는’ 손쉬운 수단보다 지구와 대한민국에 모두 이로운 더 어렵고 힘든 길을 찾아야 한다.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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