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MT문고]'한국전쟁 감동 실화- 레클리스'
/사진 = 도레미엔터테인먼트 제공 |
군마(군용 말)는 기원전 4000년부터 사용됐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전쟁과 함께한 동물이다. 증기기관의 등장 이후 비용과 효율성 문제로 도태됐지만, 불과 몇십년 전까지도 활발하게 전장을 누볐다. 우리 역사의 끔찍한 비극인 한국전쟁 때에도 수많은 군마들이 동원됐다. 군마들은 물자를 수송하고 병사들의 감정 회복을 돕는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 북한과 중공군의 침략을 막아냈다.
미국의 작가 로빈 허턴은 '레클리스'라는 군마에 주목했다. 제주마와 서러브레드의 혼혈마인 레클리스는 이름에 담긴 뜻처럼 '무모한 말' 이었다. 미국 해병대 사상 가장 치열한 전투 중 하나로 꼽히는 네바다 전초(지금의 연천군) 전투에서 포탄 1만 4000여발을 뜷고 하루 56km를 오가며 5톤의 탄약을 운반했다. 미 해병대는 레클리스의 활약 덕택에 중공군의 거센 공세를 막아내고 고지를 탈환했다.
저자는 '한국전쟁 감동 실화- 레클리스'를 통해 레클리스의 인상적인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한국인 조련사 김혁문(가명)이 애지중지 키우던 경주마 레클리스는 1950년 한국전쟁이 터지자 군마가 됐고, 미 해병대에 입대해 전선에 배치됐다. 덩치에 비해 겁이 많고 훈련이 어려운 다른 말들과 다르게 레클리스는 빠르게 임무에 적응해 해병대를 지원했다.
책은 레클리스의 탄생부터 활약, 미국으로 건너가게 된 계기와 20세의 나이로 사망하기까지 차례대로 서술한다. 한국전쟁에 참여했던 병사들의 증언과 당시 신문의 보도, 수많은 사진으로 한국전쟁의 전개 과정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영웅을 추앙하는 풍토와 군인에 대한 존경, 동물을 사랑하는 시민들 등 당시 미국인들의 문화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저자는 해병대원들에게 레클리스는 단순한 군마 그 이상이었다고 설명한다. 미국 해병대 역사를 통틀어도 레클리스 이전 부사관으로 임명된 동물은 없다. 온순한 성격과 붙임성 있는 태도, 부상을 입고서도 임무를 멈추지 않았던 레클리스는 동물이 아닌 미국의 해병대원이었다. '알렉산더 대왕의 명마 부케팔로스라도 레클리스와 비교할 수 없다'는 동료 군인들의 말은 레클리스를 향한 자부심이 묻어난다.
137만명이 넘게 숨진 한국전쟁이 미국인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서술한 대목도 인상적이다. 북한과 중공군의 끝없는 공격에도 국군과 유엔군은 한국의 존립을 위해 싸웠다. 끝없는 시체의 바다 속에서도 물러서지 않고 전진하는 장면은 영화를 보는 듯 장엄하다. 은퇴 후 닉슨 당시 미국 부통령보다 더 큰 환대를 받았다던 레클리스는 미국인들의 생각을 반영하는 오브제다.
책의 틈새에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당시 유행가나 스포츠, 음식에 대한 이야기는 주제와 관계가 없는 듯 보여 몰입감을 해친다. 말과 해병대 1사단을 주제로 했기 때문에 세세한 이야기는 들을 수 있지만 전쟁 전체에 대한 조망은 기대하기 힘들다. 여러 인물의 진술에 의존하다 보니 자칫 중언부언하는 듯한 느낌도 준다.
저자는 로스앤젤레스를 기반으로 영화 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작가다. '날개 없는 천사들'이라는 비영리 단체의 대표로 일했으며 미국 퍼플하트훈장협회로부터 '올해의 애국시민'으로 선정됐다. 레클리스의 전쟁 업적을 8년간 취재한 끝에 이 책을 썼다.
◇한국전쟁 감동 실화-레클리스, 도레미엔터테인먼트, 1만 9800원.
오진영 기자 jahiyoun23@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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