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어 기도문도 낭독…프란치스코 교황 장례미사, 25만명 운집 속 엄수

현지시간 26일 오전 10시부터 2시간10분간 진행…
조문객 전임 베네딕토 16세 때보다 5배 많은 25만명,
트럼프·젤렌스키·바이든 등 130여 개국 대표단 참석…
미사 후 교황 시신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 안치

'빈자의 아버지' 프란치스코 교황의 장례 미사가 26일(현지시간)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엄수됐다. 세계 각국 정상 및 왕실 인사, 일반인 조문객 수만 명이 참석해 교황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특히 이번 미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조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 등 한자리에 있기 쉽지 않은 주요 인사들이 모이고, 중국어 기도문이 낭독되는 등 이전과 다른 모습이 연출돼 눈길을 끌었다.

추기경단 단장 조반니 바티스타 레가 26일 오전(현지 시간)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장례식을 주례하고 있다. /AP=뉴시스

로이터통신·CNN 등에 따르면 프란치스코 교황의 장례 미사는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이날 오전 10시(한국시간 오후 5시)부터 2시간10분가량 진행됐다. 미사는 십자가 문양이 새겨진 목관을 성 베드로 성전에서 야외 제단으로 운구하며 시작돼 입당송 '주여, 영원한 인식을 내리소서'에 이어 기도와 성경 강독, 미사를 주례하는 추기경단장 조반니 바티스타 레 추기경의 강독 순으로 진행됐다.

레 추기경은 강론에서 "벽이 아닌 다리를 세우라"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생전 발언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생전 트럼프 대통령의 2016년 대선 공약 중 하나였던 '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을 비판하면서 했던 발언이다. 당시 그는 "다리를 만들지 않고 벽만 세우려 하는 사람은 기독교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장례미사 종료 후 교황의 운구 행렬은 로마 테르미니 기차역 인근의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으로 향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안식처로 지정한 곳으로 성 베드로 광장에서 6km가량 떨어져 있다. 교황이 바티칸 외부에 묻히는 건 1903년 레오 13세(로마 라테라노 대성전 안치) 이후 122년 만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관이 26일(현지시간) 그의 마지막 안식처인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으로 옮겨지고 있다. /AFPBBNews=뉴스1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에 마련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무덤은 교황의 외증조부 고향인 이탈리아 북서부 리구리아산 대리석으로 제작됐다고 한다. 무덤의 위치는 과거 대성전의 촛대 받침을 보관하던 곳으로, 교황이 생전에 직접 지정했다고 했다. 무덤의 묘비는 교황의 유언에 따라 특별한 장식 없이 그의 라틴어 교황명 '프란치스쿠스'만 적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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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만명 운집 속 엄수된 장례미사…중국어 기도문도 낭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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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현지 시간) 프란치스코 교황이 장례미사가 열리는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 인파가 운집해 있다. 교황청에 따르면 이날 장례미사에는 20만명이 운집했다. /AFPBBNews=뉴스1

대형 십자가가 새겨진 교황의 관이 14명의 운구자에 의해 야외 제단으로 운구되자 조문객들은 박수로 맞이했다. 각국 정상들은 미사 시작 전 대성당을 찾아 교황의 관에 조문했다. 과거 이민정책, 기후변화 대응 등과 관련해 프란치스코 교황과 여러 차례 충돌했던 트럼프 대통령도 성 베드로 광장으로 이동하기 전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와 함께 교황의 관 앞에서 잠시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이날 장례 미사에는 붉은 옷을 입은 수많은 추기경과 검은 정장을 입은 세계 정상 및 주요 인사들, 흰 제의를 입은 수백 명의 신부와 수천 명의 일반 조문객이 참석했다. 교황청에 따르면 이날 장례미사에 25만명이 참석했다. 이는 전임자인 베네딕토 16세 은퇴 교황의 장례미사 당시 조문객(약 5만명)의 5배 달한다. 이탈리아 경찰은 성 베드로 광장과 인근 거리에 약 15만명이 운집했다고 밝혔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프란치스코 교황 장례 미사에는 각국 왕족과 대통령 이외 난민, 죄수, 성소수자, 노숙인 등 약자를 위한 자리도 마련됐다. 교황청이 특별히 초청한 '가난하고 어려운 이들' 40여 명은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에서 교황의 시신을 맞이할 예정이다.

26일(현지시간)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프란치스코 교황의 장례 미사에 참석한 수녀들이 기도를 드리고 있다. /AFPBBNews=뉴스1

이날 성 베드로 광장에는 중국어 기도문이 울려 퍼지기도 했다. 레 추기경이 '보편 지향 기도'라 불리는 신자들의 기도를 낭독하자 추기경들은 이를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아랍어, 포르투갈어, 폴란드어, 독일어, 중국어로 다시 낭독했다. 교황의 장례미사에서 중국어 기도문이 낭독된 것은 처음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생전 중국 방문 의사를 밝히는 등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힘써 온 노력을 기리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은 1951년 대만을 정부로 인정한 바티칸과 단교한 뒤로 공식 외교관계를 맺지 않고 있어 이번 장례미사에 대표단을 파견하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 외교부는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21일) 하루 만에 애도의 뜻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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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젤렌스키·바이든이 한자리에…비공식 대규모 외교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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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의 장례미사는 비공식 대규모 외교의 장이 마련하는 계기가 됐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은 장례미사 전 바티칸에서 짧은 회동을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소셜디미어(SNS) X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과 회동에서 '무조건적인 휴전'을 논의했다고 한다. 그는 장례미사 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도 회담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프란치스코 교황 장례미사 참석 전 바티칸에서 회동하고 있다. /사진=우크라이나 대통령실

이날 장례미사에는 트럼프 대통령, 젤렌스키 대통령,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유럽연합) 집행위원장, 마크롱 대통령,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등 60여 개 국가의 정상과 왕실 인사 등 130여 개국 대표단이 참석했다. 한국 정부는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단장으로 하는 민관합동 조문 사절단을 파견했다. 오현주 주교황청 한국대사와 안재홍 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장이 사절단원으로 동행했다.

외신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이 성 베드로 광장에 등장하자 조문객들은 박수로 그를 맞이했다고 한다. 로이터는 "이날 가장 먼저 도착한 주요 인사 중 한 명은 조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 부부였다"고 전했고, CNN은 "트럼프 대통령의 프란치스코 교황 장례 미사 참석으로 그의 2기 첫 외국 순방지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아닌 이탈리아 로마가 됐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사우디아라비아 방문은 5월로 예정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를 비롯한 해외 정상들이 26일(현지시간)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프란치스코 교황의 장례 미사에 참석하고 있다. /AFPBBNews=뉴스1

트럼프 대통령 내외는 이날 장례미사에 마련된 긴 벤치 형태의 좌석 맨 앞줄, 오른쪽 끝자리에 앉았고, 바로 옆 벤치에는 알렉산데르 스투브 핀란드 대통령, 마크롱 대통령 내외가 자리했다. 젤렌스키 대통령 내외도 맨 앞줄 자리에 앉았는데, 트럼프 대통령과는 다소 떨어진 위치였다. 이와 관련 유로뉴스는 "교황청이 전통적인 의전 관계를 깨고 막판에 장례미사 자리 배치도를 변경했다"고 보도했다. 교황청 의전 규칙에 따르면 통상 국가원수의 자리는 불어로 표기된 국가원수 이름의 알파벳 순서에 따라 배정된다. 이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의 자리는 3번째 줄에 배치될 것으로 예상됐었다.

정혜인 기자 chimt@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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