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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통상 협의, 의제도 일정도 ‘미국 뜻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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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통상 협의, 의제도 일정도 ‘미국 뜻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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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과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24일 미국 워싱턴 주미한국대사관에서 한·미 ‘2+2 통상 협의’ 결과에 대해 언론 브리핑을 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과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24일 미국 워싱턴 주미한국대사관에서 한·미 ‘2+2 통상 협의’ 결과에 대해 언론 브리핑을 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한국과 미국의 경제·통상 장관들이 ‘2+2 통상 협의’에서 미국 고율 관세를 둘러싼 논의 범위와 일정에 관해 큰 틀에서 합의함으로써 협의에 본격적인 시동이 걸렸다. 이런 합의에는 상호관세 유예 기한을 못 박고 다양한 양보를 요구하는 미국의 의도가 충실히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4일(현지시각) 워싱턴에서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와의 협의 뒤 브리핑에서 “상호관세 유예가 종료되는 7월8일 이전까지 관세 폐지를 목적으로 한 ‘줄라이(July·7월) 패키지’를 마련할 것과 양측의 관심사인 관세·비관세 조치, 경제안보, 투자 협력, 통화 정책 등 4개 분야를 중심으로 논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최 부총리는 이번에 “협의 과제를 좁히고 논의 일정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함으로써 협의의 기본틀, 즉 프레임워크를 마련했다고 평가된다”고 했다. 그는 역시 협의에 참여한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그리어 대표가 별도 회동에서 앞으로 협의를 진행할 복수의 작업반을 구성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안 장관은 “한·미 양국 간의 향후 협의의 틀에 대한 원칙적 합의가 있었다”며 “‘줄라이 패키지’ 도출을 목표로 향후 협의의 방식, 범위에 대해 다음주 중 양국 간 실무 협의를 진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런 큰 틀의 의제와 협의 일정은 주로 미국의 이해관계와 협상 틀을 반영한 것으로 평가된다. 무역적자를 상대국의 관세·비관세 장벽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미국은 이런 장벽의 해소를 요구하면서 자국에 대한 직접투자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경제안보라는 개념도 경제와 안보가 불가분하다고 강조하는 것으로, 미국이 주로 중국을 염두에 두고 동맹국들과의 공급망 연계나 수출 통제 강화를 추진할 때 주장하는 것이다. 미국은 또 무역 상대국들이 의도적으로 통화 가치를 낮게 유지해 대미 수출을 독려하면서 무역흑자를 늘리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에도 ‘8개 비관세 부정행위’를 거론하면서 환율 조작을 우선적으로 꼽았다.



환율을 둘러싼 통화 정책 문제의 경우 정부가 관세 협상 의제로서 공식적으로 제기되는 것을 꺼렸다는 점에서 부담스러운 논의 주제가 설정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은 일본과도 환율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일본은 이런 논의에는 응하지만 1985년 플라자합의로 엔화 평가절상을 했다가 큰 타격을 입은 기억 때문에 급격한 엔화 평가절상은 다시 추구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줄라이 패키지’를 추진한다는 것도 미국의 협상 전략과 궤를 맞추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트럼프는 이달 9일 57개국을 상대로 상호관세(한국은 25%)를 발효했다가 금융시장이 크게 흔들리자 13시간 만에 상호관세 적용을 7월9일로 90일간 유예해놓은 상태다. 트럼프 행정부는 유예 기간 안에 협상을 타결지어야 유리하다며 상대국들을 독려하는 동시에 경쟁을 유도하고 있다. ‘패키지’라는 표현은 또 여러 분야에서 양보를 받아낸다는 미국의 의도를 반영하고 있다. 미국은 쇠고기 등 농축산물 수입 확대나 위생 규정 개정, 자동차 배기가스 규제 해결 등 무역수지와 관련된 문제 외에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개발 참여 등도 요구하는 등 최대한의 양보를 받아내려고 시도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행정부가 6월2일 알래스카에서 열리는 엘엔지 관련 고위급 회담에 한국과 일본 등이 참여해 투자의향서에 서명하기를 바라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이처럼 한국에 여러 양보를 요구하고 있지만 자동차·철강·알루미늄에 대해 부과한 25% 품목별 관세나 유예 기간이 끝나면 발효할 예정인 전체 한국 상품에 대한 25% 상호관세에 대한 철폐 내지 경감 계획은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안 장관은 브리핑에서 “전체 패키지가 사실 합의가 돼야 하기 때문에 일부 한국의 이슈가 먼저 정리가 된다는 것을 가지고 관세가 어떻게 된다고 사전에 예단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이를 종합하면, 미국은 한국의 양보안을 검토하고 확실한 약속을 받은 뒤에야 ‘대가’를 제시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정부가 이번 협의에서 일단 미국 쪽이 방위비 분담금과 대중국 압박 공조를 언급하지 않았다고 한 것은 그나마 부담을 줄여주는 대목으로 받아들여진다. 최 부총리는 이에 관한 질문에 “방위비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고 했고, 중국에 관해서도 관련 언급이 없었다고 밝혔다. 앞서 트럼프는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과 통화한 뒤 무역뿐 아니라 방위비 분담금 등을 포함시키는 “원스톱 쇼핑”을 원한다고 밝힌 바 있다. 또 월스트리트저널은 중국이 초기 관세 협상 상대국들에 △중국 화물선 경유 금지 △미국의 대중국 관세 회피용 제3국 투자 금지 △중국산 저가품 구매 금지를 요구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중국 상무부는 미국의 이런 움직임에 협조하는 국가에는 “대등한 반격 조치”를 하겠다고 경고했다.



한편 베선트가 이번 회의 결과를 놓고 다음주 중 “양해에 관한 합의(agreement of understanding)”를 할 것이라고 말한 것을 놓고 혼선도 빚어졌다. 베센트는 이날 백악관에서 기자들이 모인 가운데 관세 협상에 대해 설명하라는 트럼프의 지시에 “한국 최선의 제안을 가져왔고, 우리는 그들이 그것을 이행하는지 지켜볼 것”이라며 “(한국과의 협의가)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으며, 이르면 다음주에 양해에 관한 합의에 도달하면 기술적 조건에 대해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한·미가 양해각서(MOU) 같은 식의 합의를 준비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최근 미국 행정부 안팎에서는 인도나 일본과의 관세 협상에서 큰 틀의 합의를 먼저 한 뒤 세부 내용을 협상으로 결정한다는 ‘2단계 합의론’이 제시돼왔다.



안 장관은 이에 대한 질문에 “잠정 합의와 관련해 오늘 특별한 얘기는 없었다”며 “‘양해에 관한 합의’라는 말은 처음 들어본다”고 했다. 다만 안 장관은 “다음주에 (실무진이) 기술적 협의에 들어간다는 합의는 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이 최선이 제안을 가져왔다는 베센트의 발언을 놓고는 “저희가 이번에 설명한 내용 중에 특히 조선 산업 협력의 비전에 대해 상당히 공감대를 나타낸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했다.



이본영 선임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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