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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출훈련’ 속 현실…그 아이는 왜 그 길을 갔을까 [왜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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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출훈련’ 속 현실…그 아이는 왜 그 길을 갔을까 [왜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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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 아동 찾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가수 솔비가 작사 작곡한 곡 ‘파인드’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실종 아동 찾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가수 솔비가 작사 작곡한 곡 ‘파인드’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고현정 | 발달장애 자녀 부모



지난해 발달장애 자녀의 특수학교 입학을 고민하던 중 직접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집 근처 특수학교에서 봉사활동을 하게 됐습니다. 그때 처음 듣는 단어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교출훈련’입니다. 교출훈련은 ‘교내 아동 실종 상황 대비 훈련’의 줄임말입니다. 특수학교에서는 아이가 예고 없이 사라지는 일이 종종 발생합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교실에 있던 아이의 행방을 누구도 파악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교출훈련은 이런 상황을 대비해 교사 한명과 아동 한명이 짝을 이뤄 사라진 뒤, 나머지 교직원들이 교내외를 수색하여 아이를 찾는 훈련입니다. 훈련은 ‘실종 아동’이 발견되어야만 종료됩니다. 훈련 같지 않은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저는 이 훈련이 단지 시뮬레이션이 아니라, 언제든 현실이 될 수 있는 상황임을 느꼈습니다.



며칠 뒤 봉사를 마치고 귀가하던 중, 특수학교 인근 외곽순환도로에서 한 아이가 혼자 터벅터벅 걷는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교출훈련 상황이 머릿속을 스쳤습니다. 혹시 특수학교 아동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차를 세우고 다가갔습니다. 명찰을 확인해보니, 다른 지역 특수학교 소속 아동이었습니다. 이상함을 느껴 그 학교에 전화를 걸어보니, 그날 해당 학교는 인근 놀이공원으로 소풍 중이었습니다. 한 아이가 사라져 이미 교사들이 수색하고 있고, 남은 아동들은 주차장으로 이동 중이라고 했습니다. 아이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으나, 그는 아무 말 없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정확한 목적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겨우 아이를 따라잡아 주차장까지 동행한 뒤 담당 교사에게 무사히 인계했습니다. 그날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소풍철, 장애 아동을 야외로 인솔한다는 것의 무게를 처음 체감했습니다. 교사의 감사 인사와 함께 받은 음료 모바일 상품권보다 더 크게 남은 건, 그 아이가 ‘그 길’을 아무 말 없이 걷고 있었던 장면이었습니다.



지난 15일 경남 진주에서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습니다. 한 장애 전담 어린이집에서 야외활동을 하던 중 한 아이가 갑자기 산으로 뛰어올랐고, 담당 교사가 그를 뒤쫓았지만 아이는 진양호로 떨어져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뉴스를 보며 그 아이도, 그 교사도 모두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는 죽고 싶어서 펜스를 넘은 것이 아닐 것입니다. 어쩌면 그저, 이유 없이 자신만의 방향으로 향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교사는, 그 장면을 평생 떠올리며 살아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요즘은 사건이 발생하면 책임을 묻고 비난하는 속도가 너무 빠릅니다. 물론 책임은 져야 하지만, 그날 현장에서 모든 걸 걸었던 그 사람들의 감정과 무게도 함께 들여다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이 글을 통해 ‘교출훈련’이라는 단어 속에 담긴 현실과 그 아이들의 세계를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이 하나가 사라졌을 때, 그 뒤에서 수십명의 사람이 얼마나 숨을 죽이며 움직이고 있는지를, 그리고 그 일이 우리 사회 안에서 얼마나 쉽게 놓치기 쉬운 이야기인지를요. 교출훈련은 특수학교만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지켜야 할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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