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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파 교란 안 먹혀”… 광케이블로 조종하는 ‘공포의 드론’

조선일보 박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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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체 하단에 연결된 광케이블을 끌며 날아가는 우크라이나군 유선 드론. /EPA 연합뉴스


광케이블을 이용한 유선 조종 자폭 드론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다수 사용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선 조종 자폭 드론은 말 그대로 무선이 아닌 유선 드론이 목표물에 접근한 뒤 폭발하면서 피해를 입히는 방식이다. 전파 방해 등 기존의 전자전 수법으로는 무력화할 수 없다는 특징 때문에 각 진영에서 골머리를 앓는 것으로 알려졌다.

23일 가디언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최전선의 드넓은 평원 한가운데에서는 흰 실처럼 보이는 물체가 그물처럼 한데 얽혀 있는 모습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 ‘흰 뭉치’의 정체는 유선 조종 자폭 드론에서 나온 광케이블이다. 유선 드론에는 보통 동체 아래 길쭉한 원통형의 케이블 릴이 붙어 있고, 그 안에 둘둘 말린 채 수납된 길이 10∼20㎞의 광케이블이 들어 있다. 유선 드론은 이 광케이블을 뿌리듯 풀어내면서 표적을 향해 날아가는 방식으로 사용된다. 표적에 도달하면, 폭발하면서 피해를 입히는 구조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최근 다수 포착된 흰 뭉치는 유선 조종 자폭 드론에 사용된 광케이블 더미인 것이다.

작년 하순 처음 전장에 모습을 드러낸 이 무기는 전파로 조종하는 게 아닌 까닭에 기존의 전자전 수법으로는 무력화할 수가 없다. 전파가 잘 닿지 않는 장소에서도 날 수 있다.

이 때문에 최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측 부대에서 사용 빈도가 급속도로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군 드론 특수부대 아킬레스 연대의 유리 페도렌코 대위는 “일반 드론이라면 근처에 재송신기가 없는 한 (전파) 신호가 나무에 막히게 되지만, 유선 드론은 조종사가 잘 제어하기만 하면 숲이나 줄지어선 나무들 사이로도 날게 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현재로선 러시아가 유선 드론을 더 많이 활용하는 상황이라고 페도렌코 대위는 말했다. 그는 “러시아는 광케이블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 더 빠르게 도입했다”며 “우크라이나는 이제야 이를 따라잡는 중”이라고 했다.


페도렌코 대위에 따르면, 러시아는 쿠르스크 역습 당시에도 이 드론을 집중적으로 사용했다. 또 우크라이나 전선을 무너뜨리는 데에도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실제로 지난달 러시아군 텔레그램 채널에 올라온 영상에는 이 유선 조종 자폭 드론이 지면에서 얼마 떨어지지도 않은 높이에서 저공 비행하며 숨겨진 우크라이나 자주포를 정확히 타격, 폭발하는 모습이 담겼다.

미 해군분석센터(CNA)의 드론 전문가 사무엘 벤데트는 “전자전으로 교란할 수 없기 때문에 이 드론은 1차 선제 공격 수단으로 사용된다”며 “적의 전자전 장비를 먼저 무력화한 뒤, 일반 무선 드론의 길을 열어주는 역할”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유선으로 연결된 만큼 타깃을 고해상도로 마지막 순간까지 정밀하게 촬영할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한 정보 수집 수단”이라고 했다. 다수의 유선 드론을 동시에 사용할 경우 서로 케이블이 얽힐 수 있고, 케이블 길이에 한계가 있는 등의 단점도 있지만, 이를 감안할 만큼 유용한 무기인 셈이다.

우크라이나 정부도 유선 드론 개발과 생산에 박차를 가하는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최근 “올해 들어서만 광케이블을 갖춘 신규 유선 드론 모델이 20개 이상 등장했고, 우크라이나 기업 11곳이 생산에 돌입했다”고 밝힌 바 있다.

[박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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