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3일 경기 파주시 임진각 인근에서 전후납북자피해가족연합회가 대북전단 살포에 앞서 드론으로 대북전단을 띄우고 있다. /김현수 기자 |
23일 오전 11시, 경기 파주시 임진각 평화랜드 인근. 천막 하나가 세워졌다. ‘납북 피해자 소식 알리기’. 전후납북자피해가족연합회가 올린 손팻말에는 누군가의 절박한 목소리가 담겨 있었다.
이날 연합회는 납북자 6명의 사진과 사연을 담은 전단지를 헬륨가스 풍선 10개에 실어 북으로 날릴 계획이었다. 풍선은 항공안전법 위반 소지를 피하기 위해 2kg 미만으로 제작됐다.
최성룡 연합회 대표는 “소식지 한 장에 76원씩 들었다. 가족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만들었다”며 “형제, 아버지의 생사라도 알고 싶다는 게 죄인가”라고 말했다. 이어 “우린 이념이 아니라 천륜을 얘기하는 겁니다. 어떤 대통령도 진심으로 귀 기울여준 적 없다”며 “이번엔 바람 불 때마다 풍선을 날릴 예정이다. 평양 하늘 위로 우리 가족의 목소리를 전하겠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납북자 가족들의 움직임을 바라보는 주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민통선 지역 주민 70여 명은 트랙터 10여 대를 이끌고 연합회보다 한 시간 앞서 맞불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전단을 날릴 때마다 북한의 오물풍선이 날아온다”며 “불안해서 못 살겠다”는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들고 임진각 인근을 돌았다.
앞서 경기도는 지난해 10월 파주 문산읍·탄현면·적성면·파평면 일대를 대북전단 살포 위험구역으로 지정한 바 있다. 해당 지역에서 전단을 살포하면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파주시도 강경 대응에 나섰다. 김경일 파주시장은 이날 현장을 찾아 “대북전단 살포는 표현의 자유를 빙자한 테러 행위”라며 “파주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에 단호히 맞서겠다”고 밝혔다. 그는 납북자 가족 모임 측에 전단 살포 중단과 현장 퇴거를 명령하면서 “대북전단은 북한의 확성기·오물풍선 도발의 불씨”라고 강조했다. 이날 현장에는 경기도 특별사법경찰 100여 명과 경찰 병력 500명이 배치돼 만일의 상황에 대비했다.
그러나 전단은 끝내 하늘로 날아오지 못했다. 바람이 불지 않았다. 헬륨으로 채운 풍선 10개는 출발을 기다리다 천막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트랙터를 몰고 나온 주민들과의 물리적 충돌도 없었다. 긴장감 속에 서로를 지켜보던 양측은 큰 마찰 없이 자리를 떴다.
[파주=김현수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