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숙명 작가 새 에세이집
[파이낸셜뉴스] 나이가 들수록 세상사 모든 일은 나로부터 시작된다는 걸 느낀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삶을 살길 원하며, 어디서 행복을 얻는지를 아는 게 중요하다. 이는 단지 대학 전공과 직업을 고를 때뿐만 아니라 결혼을 할 때도, 재테크를 위해 주식을 할 때조차도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한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다.
그런데 우리나라처럼 '표준의 삶'을 중시하는 문화적 환경에서 자란 경우, 그 표준의 삶을 쫓느라 바빠서 도대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입시경쟁이 치열해진 요즘은 더 그렇지 않을까.
이숙명 작가의 신작 에세이 '발리에서 생긴 일'(김영사)은 불혹의 나이에 자신이 원하는 삶이 어떤 형태인지, 자신이 어떤 환경에서 더 행복을 느끼는지를 찾아 나선 사람의 이야기다.
인도네시아 발리섬 아궁산. 연합뉴스 |
발리 짐바란 해변. ⓒ News1 윤슬빈 기자 |
[파이낸셜뉴스] 나이가 들수록 세상사 모든 일은 나로부터 시작된다는 걸 느낀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삶을 살길 원하며, 어디서 행복을 얻는지를 아는 게 중요하다. 이는 단지 대학 전공과 직업을 고를 때뿐만 아니라 결혼을 할 때도, 재테크를 위해 주식을 할 때조차도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한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다.
그런데 우리나라처럼 '표준의 삶'을 중시하는 문화적 환경에서 자란 경우, 그 표준의 삶을 쫓느라 바빠서 도대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입시경쟁이 치열해진 요즘은 더 그렇지 않을까.
이숙명 작가의 신작 에세이 '발리에서 생긴 일'(김영사)은 불혹의 나이에 자신이 원하는 삶이 어떤 형태인지, 자신이 어떤 환경에서 더 행복을 느끼는지를 찾아 나선 사람의 이야기다.
글로벌 도시가 된 서울에서 나름 화려한 직장생활을 하다 어느 날 과감히 표준의 삶에서 벗어나, 내 손에 쥔 것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미래의 불안을 딛고, 자신의 낙원을 찾은 한 여성의 이야기이자 그가 진짜 발리에서 지난 8년간 살면서 온몸으로 ?은 '발리에서 생긴 일'에 대한 기록이다.
영화 및 패션 잡지 기자 출신인 저자는 앞서 ‘어쨌거나 뉴욕’ ‘패션으로 영화읽기’ ‘혼자서 완전하게’ 등 동시대 여성독자들의 공감을 살 다수의 에세이를 집필했다.
30대 후반, 추위 피해 발리로 떠났다 '표준의 삶' 탈출
훌쩍 떠난 계기는 어쩌면 단순했다. 2016년 30대 후반, 세 들어 사는 서촌 한옥의 문틈으로 외풍과 냉기가 스밀 때마다 ‘따뜻한 곳으로 떠나 단출하게 살고 싶다’는 소망을 눈덩이처럼 키웠다. 그러다 ‘올겨울 집필 여행 겸 일단 떠나자’는 마음으로 장기 투숙할 호텔을 예약했는데 그곳이 바로 인도네시아 발리였다. 그렇게 5개월을 살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이내 다시 떠났다.
발리에서 생긴 일. 김영사 |
아름다운 자연, 타인을 존중하는 자유로운 분위기, 현지인의 밝은 표정과 관대한 태도, 시골 사람들 특유의 정과 인심, 인기 여행지로 막 부상하기 시작한 지역 특유의 활기…
"평범한 도시 직장인에게서 느낄 수 없는 생생한 활력, 모험심, 결단력 따위에 압도당한다. 그들 덕분에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볼거리, 놀 거리가 생긴다(158쪽)."
그렇다고 동남아 풀빌라의 여유로운 삶만 상상하면 안 된다. 일 년 내내 여름이 계속되고, 전기와 수도가 하루에 한 번씩 끊기며, 호기심 많고 친구 사귀기를 좋아하는 인도네시아 현지인 틈바구니에서 영원한 이방인으로 살아야 하는 일상의 연속. 운 좋게도 현지에서 인생의 반려자를 만나 이곳을 제2의 고향 삼고 정착했지만,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듯, 누군가에겐 그저 ‘한 달 살이’로 끝내야 하는 일상이다.
특히 저자에겐 혹독했을 현지에서 집 짓기 에피소드를 보면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어, 마치 시트콤을 보는 것처럼 낄낄 웃음이 난다. 찰리 채플린이 그랬지,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다 희극이라고. 작가의 재기발랄한 글 솜씨도 한몫한다.
“어딘가에는 각자의 낙원이 있다”
작가는 다른 삶의 가능성을 찾아 실험하듯 여행하다 발리에 정착했다. 적어도 자신에게 발리는 낙원이었다. 하지만 모두에게 다 통하는 것은 아닐 터. 작가는 떠나기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는 무조건적인 낙관을 경계한다. 각자 마음속 걱정거리는 눈앞에 회색 빌딩과 아스팔트 대신 야자수와 에메랄드빛 바다가 펼쳐진다고 해서 눈 녹듯 사라지지 않는다. 직접 경험해 본 사람의 뼈아픈 직언이다.
그럼에도 지금 당장 이 나라에서의 삶이 괴롭다면, 상황과 여건이 허락하는 한 외국으로 떠나 일하며 사는 걸 시도해 보기를 권한다. 묶여 있던 땅 밖으로 나가야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고, 안에 있을 때는 절대 볼 수 없는 것들이 분명히 있다고 말이다.
동남아시아 국가 등으로의 이민이나 장기 여행 혹은 체류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현실적인 조언도 빼놓지 않는다.
장기 거주할 숙소를 어떻게 찾으면 좋을까? 거기서 뭘 해서 먹고살까? 비자나 서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까? 실제로 앞서 떠난 사람들은 어떻게 정착했나? 덕분에 독자들은 모호하기만 했던 ‘다른 삶의 가능성’을 좀 더 구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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