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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몰도 크다, 우리는 마이크로 웨딩... 하객 20명만 초대”

조선일보 곽래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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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어도 하기 힘든 결혼] [3] 달라지는 결혼식 문화
결혼식 생략, 웨딩사진만 찍고 신혼여행 - 정하늬(오른쪽)·최정호 부부는 지난해 6월 서울 마포구 노을공원에서 30만원에 웨딩 사진을 찍었다. 신부는 15만원짜리 원피스에 운동화, 신랑은 30만원짜리 정장을 입었다. /정하늬씨 제공

결혼식 생략, 웨딩사진만 찍고 신혼여행 - 정하늬(오른쪽)·최정호 부부는 지난해 6월 서울 마포구 노을공원에서 30만원에 웨딩 사진을 찍었다. 신부는 15만원짜리 원피스에 운동화, 신랑은 30만원짜리 정장을 입었다. /정하늬씨 제공


정하늬(34)씨는 작년 9월 2년간 연애했던 당시 남자 친구 최정호(29)씨와 결혼했다. 식은 따로 올리지 않았다. 정씨는 “1시간도 안 걸리는 결혼식을 위해 1년을 준비해야 한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고 했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 결혼식을 못 열었던 직장 선배들이 잘사는 모습을 보고 ‘식을 안 올려도 되겠다’는 용기도 얻었다. 부부는 청첩장 대신 온라인 결혼 알림장을 만들었고,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를 주변 사람들에게 자세하게 알렸다. 아낀 예식비로 미국 신혼여행을 갔다. 캘리포니아 요세미티 공원 산장에서 보낸 시간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됐고, 신혼여행을 떠난 날은 결혼기념일이 됐다.

정씨처럼 결혼식을 아예 안 올리는 이른바 ‘노 웨딩(no wedding)’을 선택하거나, 100명 미만인 스몰 웨딩 수준을 넘어 아예 20명 미만의 하객만 초대하는 ‘마이크로 웨딩’을 선택하는 신혼부부들이 나타나고 있다. 결혼 예식 문화가 정형화·상업화됐고, 결혼식 비용도 치솟자 아예 자신만의 방식으로 결혼하는 것이다. 양복과 웨딩드레스 대신 청바지와 원피스만을 입고 식을 치르는 경우도 있다.

윤지수(36)·김재현(30)씨도 올해 초 결혼식 없이 결혼했다. 대신 부부는 5만원을 들여 청첩장을 만들어 지인 그룹별로 식사 모임을 알렸고, 부부가 좋아하는 일본 술을 들고 가 대접했다. 지인들도 결혼식에 온다는 마음으로 꽃과 선물, 축의금을 준비해 왔다. 결혼 과정은 양가 상견례와 친척들 인사 두 번, 지인 모임 9번으로 마무리됐다. 윤씨는 “야외 웨딩홀을 예약까지 했었는데, 찍어낸 듯한 예식과 하객들과 30초씩 인사하는 결혼식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며 “소중한 사람들을 초청해 맛있는 음식과 많은 대화를 나누며 우리만의 결혼식을 올릴 수 있어 더 좋았다”고 했다.

김현석(38)·박고운(32) 부부도 지난 2월 양가 부모님을 모시고 식사하며 ‘부부의 연’을 허락받는 것으로 결혼식을 대신했다. 결혼 과정에서 필수로 꼽히는 ‘스·드·메(스튜디오 촬영·드레스·메이크업)’도 생략했다. 대신 10박 11일 일정으로 이탈리아·스페인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축구를 좋아하는 부부는 여러 도시를 돌며 도시마다 축구장 탐방을 했다. 김씨는 “예식 준비에 사용할 비용과 에너지를 신혼여행에 투자했다”며 “아내와 잊을 수 없는 최고의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김현석·박고운 부부가 지난달 3월 스페인 마드리드 '에스타디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축구장에서 찍은 사진. 스페인 프로축구팀 레알마드리드의 홈구장으로, 두 부부는 예식은 생략했지만, 대신 유럽으로 '축구 신혼 여행'을 떠났다. /박고운씨 제공

김현석·박고운 부부가 지난달 3월 스페인 마드리드 '에스타디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축구장에서 찍은 사진. 스페인 프로축구팀 레알마드리드의 홈구장으로, 두 부부는 예식은 생략했지만, 대신 유럽으로 '축구 신혼 여행'을 떠났다. /박고운씨 제공


결혼식을 아예 생략하는 것은 아쉽고, 결혼식장 비용이 터무니없이 비싸다고 생각하는 부부들은 마이크로 웨딩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경기도에서 네일숍을 운영하는 조하정(29)씨는 “우리 부부 잘 살라고 주는 축의금을 일면식도 없는 웨딩 업체에 쓰는 게 아까웠다”고 했다. 6개월 후 미리 사 놨던 아파트에 입주해야 했는데, 그 사이에 예약 가능한 예식장을 찾는 것도 불가능에 가까웠다. 조씨는 부모님과 형제 등 직계가족 딱 12명만 불러 부부 포함 총 14명으로 마이크로 웨딩을 올렸다. 결혼식에는 총 277만원이 들었다. 대신 6박 7일 일본 신혼여행에 700만원을 투자했다.

작은 결혼식… "행복은 작지 않아요" - 조하정(왼쪽)·유지현씨 부부가 지난해 11월 경기도 용인의 한 공간 대여 업체에서 결혼식을 올리기 직전 찍은 기념사진. 이날 직계 가족 12명이 참석해 꽃장식이 된 테이블에서 식사하며 예식을 지켜봤다. 사회는 신부 조씨의 친오빠가 봤다. /조하정씨 제공

작은 결혼식… "행복은 작지 않아요" - 조하정(왼쪽)·유지현씨 부부가 지난해 11월 경기도 용인의 한 공간 대여 업체에서 결혼식을 올리기 직전 찍은 기념사진. 이날 직계 가족 12명이 참석해 꽃장식이 된 테이블에서 식사하며 예식을 지켜봤다. 사회는 신부 조씨의 친오빠가 봤다. /조하정씨 제공


그래픽=김현국

그래픽=김현국


노 웨딩, 마이크로 웨딩 당사자들은 하나같이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오히려 더 만족한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하객 21명만 모아 작년 10월 결혼한 김채린(29)씨는 “보통의 결혼식은 신랑·신부와 하객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는데, 마이크로 웨딩을 해 보니 하객 반응이 한눈에 들어왔다”며 “서로 눈을 맞추며 이야기도 더 길게 할 수 있어 좋았다”고 했다. 작년 4월 직계가족 10명만 모아 마이크로 웨딩을 한 김혜리(29)씨는 “일반적인 결혼식을 한 친구들은 하나같이 ‘너무 정신이 없고 어떻게 진행됐는지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며 “마이크로 웨딩으로 돈을 많이 아꼈을 뿐 아니라 가족들과 뜻깊은 시간을 함께했다. 다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고 했다.


김혜리(왼쪽)·권민재씨 부부가 작년 4월 결혼식 직전 찍은 기념 사진. 마이크로 웨딩을 한 공간 대여 업체 외부에서 찍은 사진이다. /김혜리씨 제공

김혜리(왼쪽)·권민재씨 부부가 작년 4월 결혼식 직전 찍은 기념 사진. 마이크로 웨딩을 한 공간 대여 업체 외부에서 찍은 사진이다. /김혜리씨 제공


올 2월부터 결혼을 준비하고 있다는 직장인 김모(29)씨는 “지금 결혼 예식은 공장처럼 돌아가는 시스템이고, 신혼부부가 철저하게 을(乙)이 되는 구조”라며 “가을에 북카페를 빌려 친구들과 파티하고, 그날을 결혼기념일로 삼을 계획”이라고 했다.

[곽래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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