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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석재의 돌발史전] 새로 공개된 ‘이순신 추정 초상화’... 다른 그림들과 비교해 보니

조선일보 유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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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영정’으로 알려진 다른 그림들과 비교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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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민간 소장자가 소장한 19세기 후반의 이순신 장군 추정 초상화. /노승석 동국대 여해연구소 학술위원장 제공, 복사 및 재배포 금지


충무공 이순신(1545~1598) 장군의 초상화일 수도 있는 그림의 사진이 공개됐습니다. 실제로 이순신 장군의 얼굴을 반영한 것인지 아직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순신 전문가인 노승석 동국대 여해연구소 학술위원장은 새로 출간한 ‘교감(校勘) 완역(完譯) 난중일기(亂中日記)’의 개정 3판(여해)에 이 그림을 수록했습니다. 그는 2008년 기존 ‘난중일기’에서 누락됐던 32일치의 일기를 새로 찾아냈고, 이를 바탕으로 첫 ‘난중일기’ 완역본인 ‘교감 완역 난중일기’를 발간했습니다. 이번 개정 3판에선 인명과 지명, 사건 등에서 최신 연구 성과를 반영했고, 문헌 고증을 통해 문장의 새로운 출전을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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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사진이 공개된 초상화는 가로 50㎝, 세로 83㎝ 크기의 그림입니다. 서울의 개인 소장가가 지니고 있는 그림입니다. 군복 차림의 그림 속 인물은 관운장처럼 수염이 길고, 특히 콧수염이 ‘카이저 수염’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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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승석 동국대 여해연구소 학술위원장 제공, 복사 및 재배포 금지


그런데 오른쪽 아래 쓰인 글씨를 보면 초상화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적어 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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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승석 동국대 여해연구소 학술위원장 제공, 복사 및 재배포 금지


‘如諧眞影(여해진영)’ 네 글자. ‘여해’란 이순신 장군의 자(字)이니 이순신의 초상화라는 뜻입니다. 그림 뒷면 하단엔 ‘祠堂(사당)’이라 쓰여 있습니다. 물론 언제 누가 썼는지 알 수 없는 글씨로 ‘진영’이라 적혔다고 해서 이것이 글자 그대로 진영(얼굴을 그린 화상)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노 위원장은 “지금으로부터 약 150년 전후에 그려져 국내 이순신 사당에 소장돼 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150년 전이라면 1875년 무렵입니다. 그림의 사진을 본 조선시대 초상화 전문가인 이태호 명지대 석좌교수는 “고종 때의 초상화 양식이며, 얼굴이 잘 그려진 상”이라고 했습니다.


임진왜란으로부터 260년 넘게 지난 고종 때, 혹은 그 이후에 그려진 무속 민화풍 그림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훨씬 더 오래된 고본(古本) 영정을 참고해 그린 초상화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진위 여부가 아직 확실히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이번에 나온 이 초상화는 기존에 알려진 다른 초상화와 비교해볼 때 과연 닮은 모습일까요?

우리는 지금 월전 장우성이 1953년에 그린 표준영정을 이순신 장군의 얼굴로 인식하고 있지만, 이것은 옛 그림을 참고했다기보다는 현대의 상상을 통해 그려진 초상화로 봐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순신의 초상화라고 알려졌으며 실물 또는 사진 자료가 남아있는 작품은 20여 점입니다. 이 중에서 대표적인 그림을 추려 보면 대략 이런 초상화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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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여수 충민사에 봉안됐던 초상화의 사진

이것은 1929년 출판된 ‘증정 중등조선역사’의 4판에 실린 사진입니다. 이순신 생전에 그려진 초상이라고 전해지는데, 여수 충민사에 봉안됐다는 초상화의 원본은 20세기 초에 사라졌습니다. 현재 충민사에 있는 영정은 장우성이 그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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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동아대 박물관 소장 전(傳) 이순신 상

부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56호로 지정된 유물입니다. 현존 이순신 초상화라고 알려진 작품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평가 받으며,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을 따라 종군했던 한 승려가 그린 그림을 조선 후기에 모사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정재환 동아대 초대 총장이 1958년 4월 16일에 구입한 것입니다. 이 그림에 대해 이순신과는 무관한 초상화라는 반론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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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임채우 교수 발굴 ‘착량묘 추정 영정’

최근 임채우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 교수가 발굴한 이순신 초상화입니다. 오른쪽에 ‘통영 충무공 영당 봉안’이라는 글자가 쓰인 이 그림은 1599년 통영의 백성들이 충무공을 기려 만든 사당인 착량묘에 봉안됐던 것이라고 전해집니다. 전래 경위와 출처가 확실한 것은 아니며, 언제 그린 작품인지도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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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이당 김은호 작 ‘이순신 초상화’

1949년 이당 김은호(1892~1979)가 그린 이순신 초상화로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입니다. 이당은 대단히 온화해진 문관 풍의 모습으로 이순신을 그렸지만, 그림의 복식이 그림 (3)과 매우 닮아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당은 그림을 그릴 때 그림 (3)을 봤거나, 아니면 그림 (3)과 유사한 다른 그림을 봤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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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이은상의 책에 실린 초상화

노산 이은상(1903~1982)이 1946년 12월 1일 간행한 ‘이충무공일대기’에 수록된 그림입니다. 이순신의 종가에 소장됐던 이순신의 초상화 원본이라고 소개했습니다. 18세기 후반의 그림으로 보입니다만, 아쉽게도 이 그림이 현재 어디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이 초상화는 다른 그림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도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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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공주대 박물관 소장 초상화

20세기 초에 그림 (4)를 보고 판각한 판화로 보입니다. 이 그림은 지금껏 거의 공개된 적이 없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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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1946년 조선우표

미 군정 시기인 1946년 9월 10일 발행된 액면가 10원의 보통우표입니다. 여기에 실린 이순신 영정은 역시 그림 (4)를 보고 인물이 정면을 보는 것으로 변형해 그린 것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도안은 오주환씨가 그린 것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이후 1947년 8월 1일 비슷한 도안의 우표가 한 번 더 나왔습니다. 한동안 그림 (4)가 이순신 장군의 표준영정 역할을 했다는 의미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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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심전 안중식 작 ‘한산 충무’

간송미술관 소장품인 이 작품(부분)은 1918년 심전 안중식(1861~1919)이 그린 충무공의 초상화 ‘한산 충무’입니다. 수염의 모습과 무인(武人)으로서의 분위기가 더 돋보이는 얼굴에서 기존 초상화와 유사한 점을 알 수 있습니다. 2010년 간송미술관의 특별전에서 공개된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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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정재 최우석의 충무공 초상화

정재 최우석(1899~1965)이 1929년 한산도 방문 조사 뒤 그린 충무공 초상화로, 제8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입선한 작품입니다. 실물이 전해지지 않는 듯, 흑백사진만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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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청전 이상범의 충무공 영정

청전 이상범(1897~1972)의 그림으로, 1932년 국민 성금으로 현충사가 중건될 때 통제사의 복식으로 그린 초상화입니다. 이후 장우성의 초상화로 교체한 뒤 현재는 소재 불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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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풍곡 성재휴의 이순신 초상화

풍곡 성재휴(1915~1996)가 1938년 무렵 그린 이순신 초상화입니다. 청전 그림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평가되며, 현충사 중건 당시 현충사에 봉안됐다가 1973년 통영 착량묘로 옮겨졌는데, 현재는 정형모의 초상화로 대체됐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이순신의 초상화로 알려진 그림 또는 그림의 사진들로 미뤄볼 때, 이순신의 실제 모습은 현재 우리가 짐작하는 온화한 모습보다 훨씬 더 무인에 가까운 모습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윤휴(1617~1680)의 ‘백호집’은 이순신에 대해 ‘붉은 수염에 담력이 있는 사람이었다’고 기록했고, 홍우원(1605~1687)은 시에서 ‘제비 턱 용의 수염, 범의 눈썹’이라 묘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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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석재의 돌발史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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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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