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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서해 불법 구조물을 보면서 떠 올리는 김영환씨 전기고문

조선일보 이하원 외교안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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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원 기자의 외교·안보 막전막후 <55회>]

탈북자 도우려 중국 갔다가 공안에 체포된 김씨
“전기고문 받을 때 내 살이 타는 냄새가 났다”
한달 만에야 영사접견...전기고문 막을 기회 놓쳐
정부, 고문 폭로 후에도 적극적으로 안 움직여
중국이 서해의 한중 잠정조치수역에 대형 철제 구조물을 무단 설치, 우리의 주권을 침해하고, 국제법을 위반해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문제의 구조물은 직경과 길이가 약 70m의 대형 해상 플랫폼 2기인데, 앞으로 총 12기까지 확대 가능성도 거론됩니다. 이는 남중국해의 인공섬 건설과 유사한 전략으로, 중국이 서해에서 실질적 지배를 강화하려는 의도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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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공안에 붙잡혀 전기고문을 당한 북한인권운동가 김영환씨가 2012년 7월 20일 구금 114일 만에 풀려나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전기병 기자


중국이 국가 간 기본 원칙과 국제법을 무시하며 막무가내로 나가는데, 우리는 이에 대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외교부 장관이 ‘항의’하는 게 고작입니다.

이 같은 상황은 한중 간 트라우마처럼 남아 있는 대북 인권 운동가 김영환씨 고문사건을 떠 올리게 합니다. 김영환씨 고문 사건은 중국 정부가 그를 114일간 불법 억류하며 전기 고문을 자행했음에도 우리 정부가 미온적인 대응을 했다는 점에서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수교 20주년에 발생한 전기 고문

2012년 한중 수교 20주년을 맞아 여러 축하 행사가 열렸지만, 양국 관계가 평온하지는 않았습니다. 한중 양국은 2011년부터 서해상의 중국 어선 불법 조업, 탈북자 북송으로 날 선 대립을 하고 있었습니다.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는 수사(修辭)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결정적으로 그해 한중 관계가 안녕(安寧)하지 못했던 이유는 그해 벌어진 ‘중국의 김영환씨 전기 고문 사건’ 때문입니다.

서울대 법대 82학번인 김씨는 ‘강철’이라는 이름으로 ‘강철서신’을 집필, 김일성 주체사상을 남한에 전파한 주사파 운동의 핵심 인물이었습니다. 1991년 밀입북, 김일성 주석을 면담한 뒤 돌아와 북한 체제에 환멸을 느끼고 전향 후, 북한민주화네트워크를 만들어 북한 인권 개선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 일환으로 중국을 오가며 탈북자 지원 활동을 해왔습니다. 김씨는 1999년에 쓴 ‘전향문’을 통해 “운동권 전반에 친북적인 분위기를 확산시키고 북한의 대남 전략에 말려들었다”며 “앞으로 북한의 인권 실상을 널리 알리고 북한을 민주화하기 위해 모든 힘을 바치고 싶다”고 했는데, 이를 헌신적으로 실천한 겁니다.

◇ 국가안전위해죄로 114일간 구금

김씨는 북한을 민주화시키고 탈북자를 돕기 위해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활동했습니다. 그러다가 2012년 3월 29일 중국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에서 동료들과 함께 중국 공안에 체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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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 27일 서울의 주한 중국대사관 앞에서 탈북난민구출네트워크 등 대북 인권단체 회원들이 중국의 북한 인권운동가 김영환씨 전기 고문에 항의하고 있다./김지호 기자


이 사실은 두 달이 다 되도록 공개되지 않다가 2012년 5월에야 알려졌습니다. 김씨의 가족과 지인들로 구성된 ‘북한인권운동가 김영환 석방대책위원회’가 “김씨가 3월 23일 출국한 뒤 29일 중국 다롄에서 유 모씨 등 일행 3명과 랴오닝성 국가안전청에 체포돼 50여 일 동안 구금 중”이라며 석방을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선양(瀋陽) 주재 한국 총영사관도 “랴오닝성 국가안전청이 김씨 등을 ‘국가안전위해죄’로 구금하고 있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김씨가 체포된 후 넉 달 가까이 감금됐다가 7월 말에 풀려나 전기 고문을 당했다고 밝혀 큰 파문이 일었습니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중국 공안은 4월 10일부터 약 1주일간 김씨를 구타하며 혹독하게 고문했습니다. 김씨는 “단둥 국가안전국에서 밤새 잠도 못 잔 채 5~8시간 전기 고문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는 당시의 고통에 대해 “몸이 찌릿찌릿한 게 아니고 온몸에 통증이 온다”고 했습니다.

그가 8월 3일 국회에서 새누리당 의원들과의 간담회에서 밝힌 고문 실상은 이렇습니다. “50cm 정도 크기의 곤봉에 전선이 감겨 있었고, 전류가 흐르는 부분은 불빛이 번쩍였다. 한여름에 모기나 하루살이가 전기에 타듯 ‘타닥타닥’ 소리가 나서 시각적으로나 청각적으로 위압감을 줬다. 전기 곤봉을 가슴과 등 부위를 중심으로 5~15초 정도 댔다가 뗐다가를 반복하며 고통을 줬다.”


김씨는 김일성 주석을 만나고 온 뒤 붙잡혀 국가안전기획부에서 물고문 등 혹독한 방법으로 고문당했으나 전기 고문을 받은 것은 중국에서가 처음이라고 했습니다. 김씨는 “왜 이 사람들이 이렇게 가혹하게 대할까 이 부분에 대해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중국 단둥의 국가안전국에서 전기 고문을 당할 때 내 살이 타는 냄새가 났다”고도 했습니다.

◇ 김씨 가족이 ‘고문 우려’ 전달했으나 묵살

김씨의 전기 고문 폭로를 계기로 우리 정부가 미온적인 대응을 했다는 사실이 하나둘씩 드러났습니다. 당시 외교통상부와 국정원은 김씨가 중국 공안에 전기 고문을 당한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잘못을 했습니다.

김씨 가족 등은 그가 체포된 직후부터 정부에 고문을 당할 우려가 있다는 사실을 전달했지만, 묵살됐습니다. 이어서 김씨가 구금된 지 29일 만에야 영사 접견이 이뤄졌습니다. 중국 공안은 김씨를 3월 29일 체포한 후, 4월 26일에야 우리 측 영사가 1차 접견하는 것을 허용했습니다. 김씨 체포 직후 우리 영사가 그를 만났다면 고문을 막을 수 있었고, 이 사건이 한중 갈등으로 번지지 않을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당시 외교부 대변인이 “영사 면담이 얼마나 신속하게 이뤄져야 하느냐는 부분이 분명하지는 않지만 29일이라는 시간이 흐른 것에 대해 상당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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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구금돼 고문을 당한 북한 인권운동가 김영환씨는 2012년 8월 3일 국회에서 새누리당 의원들과의 간담회에서 "26년 전 국가안전기획부에서 47일 동안 조사를 받으면서 27일 간 고문을 받았지만 그때도 전기고문은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뉴시스


◇ 6월에 고문 확인하고도 숨겨

우리 영사가 김씨에 대한 고문을 확인한 것은 6월 11일 2차 접견에서였습니다. 당시 주선양총영사관 영사는 김씨가 감시가 느슨한 틈을 이용해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입술을 움직여 ‘고문’이라고 하는 것을 보고 가혹 행위가 있었음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를 만난 영사가 당시 전기 고문을 확인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정부는 김씨가 고문당한 것을 파악한 직후 이 문제에 대한 다른 해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중국이 우리 국민을 무단 감금 후 고문했다는 진술이 나온 이상 중국 정부에 정식으로 이를 문제 삼았어야 했으나 중국 정부와 주한중국대사관에 비공개리에 항의하는 차원을 넘지 못했습니다. 이 때문에 새누리당의 조명철 의원은 국회 외통위에서 “중국이 과거에 비해서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국민을 가볍게 생각하고 함부로 대하는 느낌이 든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중국의 고문 사실을 우리 정부가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도 제기됐습니다. 김씨는 2012년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정부로부터 가혹 행위 공개 여부를) 신중하게 판단해 달라는 얘기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외교부와 국정원에서 모두 이런 입장을 간접적으로 전달해 왔다는 것입니다. 고문 사건에 대한 은폐를 시도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는데, 국정원과 외교부는 “김씨에게 그런 요구를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습니다.

◇ ‘전기 고문’ 기자회견 후에도 정부는 저자세

외교부는 김씨가 석방된 후 7월 25일 “가혹 행위를 당했다”는 취지의 기자회견을 한 뒤에도 여전히 “사실 확인 중”이라는 판에 박힌 답변만 했습니다. 그에 대한 전기 고문 사실이 알려진 직후부터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으나 외교부는 기존 입장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해 당시 하금열 대통령실장은 7월 30일 국회 운영위에 출석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다할 생각”이라고 했습니다. 하 실장의 발언은 이번 사건을 처리한 외교부와 국정원에 대한 질책의 뜻을 담고 있다는 해석이 나왔습니다. 특단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됐습니다.

<다음 주에 계속됩니다>

[이하원 외교안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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