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어류 관련 책들의 바탕에는 역시 어류가 우리가 먹는 고기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사진은 물속을 유영하는 물고기 떼. 게티이미지뱅크 |
함께 꽂아두면 폼나는 책
고기란 무엇인가? 사람이 먹는 온갖 동물의 살을 말한다. 돼지와 돼지고기는 다른 것이다. 돼지라는 동물의 살을 먹는데 그게 바로 돼지고기다. 그런데 우리는 어류를 그저 물고기라고 부른다. 심지어 평생 먹을 일 없는 금붕어마저 물고기라고 칭한다. 어류 도감과 물고기 도감은 같은 말처럼 쓰인다. 어색하다. 그리고 어류에게는 정말 미안한 일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어류 관련 책 역시 어류를 물고기로 다룬다. 어류의 생물학, 생태학, 인문학적 특성을 설명하는 책 역시 그 바탕에는 어류가 우리가 먹는 고기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해양민속학자 김창일은 2023년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조명치’전이라는 기가 막힌 전시를 만들어냈다. 조기·명태·멸치는 어부가 잡아다 주지 않았다면 그 존재조차 몰랐겠지만 우리가 먹는 대표적인 물고기가 되었다. 조명치전은 조기·명태·멸치가 지닌 문화적 의미와 우리 바다가 처한 상황을 조명하는 탁월한 전시였다.
이제 조명치전은 볼 수 없다. 하지만 김창일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물 만난 해양민속학자의 물고기 인문학’(휴먼앤북스)에서 볼 수 있다. 물고기 이야기도 재밌지만 김창일이라는 인물이 더 재밌다. 김창일은 책과 달리 의외로 조용한 사람이다. 그런데 책 속의 이야깃거리만큼이나 시끄러운 해양학자도 있다. 고등어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고 국립수산과학원 연구원을 거쳐 국립해양생물자원관장으로 공직 생활을 마친 황선도다. ‘멸치 머리엔 블랙박스가 있다’(부키)와 이 책의 개정판 격인 ‘친애하는 인간에게, 물고기 올림’(동아시아) 그리고 ‘우리가 사랑한 비린내’(서해문집)는 대놓고 물고기를 맛의 관점에서 풀어낸다. 책에 담긴 생물학, 생태학, 인문학적 요소는 양념에 불과하다. 책은 재밌는 것을 넘어 맛있을 정도다. 책을 읽고 나면 비린내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생각해보면 황선도와 김창일의 뿌리는 정약전의 자산어보에 닿아 있다. 그런데 우리가 자산어보를 어디서 구해 보겠는가? 구했다고 해도 한자를 어떻게 읽겠는가? 이런 고민을 해소해주는 책이 있다. ‘자산어보: 우리나라 최초의 해양생물 백과사전’(서해문집)이 나와 있다. 이 책의 저자는 2명이다. 정약전과 이청. 정약전이 강진에서 유배 생활을 할 때 이청의 집에서 묵었는데, 나중에 정약전의 자산어보에 문헌을 고증하고 일부 어종을 추가했다고 한다. 책 말미에는 한자 원문도 첨부되어 있다. 뭐, 읽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책장에는 읽을 수 있는 책만 꽂아두는 것은 아니다. 내 책장에는 이규경이 지은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만물편/충어류’(국립해양박물관)도 꽂혀 있다. 오주(五洲)는 5대양 6대주의 줄임말이자 저자 이규경의 호다. 나는 제목의 나머지 부분은 뜻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이 조선과 청나라의 지식을 담은 해양수산 고전으로 우여곡절·천신만고 끝에 출간되었다는 사실을 안다. 하여, 꽂아두고 뿌듯해한다.
정약전의 자산어보보다 더 충실한 자산어보가 있으니 바로 이태원이 쓴 ‘현산어보를 찾아서’(전 5권, 청어람미디어)다. 고등학교 생물 교사 이태원은 정약전의 실험 정신을 찾아 7년 동안 흑산도를 다니면서 흑산도민들과 인터뷰하며 전설이 되어버린 정약전의 옛이야기를 살리고 마치 자신이 정약전이나 된 듯이 직접 바다 생물을 살펴보고서 책을 썼다. 귀한 저작이다. 이 책이 나온 게 2002년의 일인데 그 후 23년 동안 이 작가의 후속작이 없다는 것은 미스터리다.
정약전의 자산어보는 지루하다. 그 옛날 어보에서 재미를 찾으면 안 된다. 재미를 찾으려면 거문도 출신으로 쇄빙연구선을 타고 베링해협에도 다녀온 소설가 한창훈의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문학동네)를 봐야 한다. 정약전이 배를 타고 다니면서 물고기를 잡고 해부하고 글을 쓴 게 아니다. 하지만 한창훈은 수백번 배를 타고 직접 잡고 손수 회를 뜨면서 보고 느끼고 맛보며 글을 썼다. 김창일이 사회를 보고 황선도와 한창훈이 바닷물고기를 두고 이야기하는 토크쇼를 상상해봤다. 그리고 이걸 책으로 엮으면 재밌지 않을까?
물고기는 오랜 시간 동안 인류에게 중요한 단백질원이었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그러니 물고기로 인해 역사가 바뀔 수도 있었다. 그 과정을 심층적으로 다룬 대표적인 책으로 마크 쿨란스키의 ‘대구: 세계의 역사를 뒤바꾼 어느 물고기의 이야기’(알에이치코리아)를 꼽는 데 시비를 걸 사람은 없을 것이다. 1997년 처음 출간되었을 때 아마존은 이 책을 ‘평생 읽어야 할 100권의 책’에 선정했는데 나도 동감이다. 읽지는 않더라도 꽂아는 놔야 하는 책이다. 선사시대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삶과 문화, 역사, 환경 문제를 생생하게 다룬다. 대구를 쫓다 보면 독자는 어느새 바이킹이 되기도 하고 뉴잉글랜드의 귀족이 되었다가 대구 전쟁에 참여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미국에 쿨란스키가 있다면 한국에는 해양문명사가 주강현이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지식노마드 주강현은 ‘조기 평전: 황해 문명권의 독특한 어업 문화를 창출한 어느 물고기 이야기’와 ‘명태 평전: 그 많던 명태는 어디로 갔을까’(바다위의정원)를 냈다. 어보 시리즈로 나온 두권은 ‘현산어보를 찾아서’와 ‘대구’의 스타일이 융합된 듯한 책이다. 주강현의 책은 물고기와 과거에만 초점이 한정되어 있지 않고 현재와 미래까지 펼쳐져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그 많던 명태가 사라진 이유를 기후변화에서 찾고 논리적으로 풀어낸다. 그렇다면 주강현의 세번째 어보의 대상은 누구일까? 합리적인 예측은 ‘멸치’다. 우리는 김창일의 조명치전에서 봤다. 조기·명태·멸치는 우리가 먹는 대표적인 물고기 아닌가.
이정모 과학 커뮤니케이터
이정모 제공 |
이정모 과학 커뮤니케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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