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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왼쪽)이 210억달러(약 30조원)에 이르는 현대차그룹의 대미 투자 계획을 밝히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가운데)과 제프 랜드리 루이지애나 주지사(오른쪽 둘째), 장재훈 현대차 부회장이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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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그룹이 210억달러(약 31조원)를 미국에 투자해 ‘관세 압박’ 돌파에 나선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고율의 관세 부과를 자국 투자의 지렛대로 삼고 있는 만큼 선제적 대응에 나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대차는 이번 투자를 통해 최대 수출 시장인 미국 공략도 강화한다. 미국에 제철소를 지어 부품부터 자동차까지 일괄 현지 생산 체제를 구축하기로 했다.
■ 현대차 미국에 31조 신규 투자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24일(현지시각) 백악관 루스벨트룸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주재한 행사에 참석해 “향후 4년간 (미국 내) 210억달러 규모의 추가 신규 투자를 한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2028년까지 자동차 부문에 86억달러, 부품·물류·철강 부문에 61억달러, 미래산업·에너지 부문에 63억달러를 각각 투자한다.
현대차그룹의 발표는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 한국 기업이 처음 내놓는 대미 투자 계획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전략이 관세 엄포를 놓은 뒤 자국 투자 유치를 끌어내는 것인 만큼 현대차가 선제적으로 대응 카드를 내놓은 것으로 분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 회장의 투자 발표를 들은 뒤 “현대는 미국에서 철강을 생산하고 미국에서 자동차를 생산하게 되며, 그 결과 관세를 지불할 필요가 없다”는 반응을 내놨다.
현대차그룹은 트럼프 행정부의 자동차와 철강 관세 가시권에 놓여 있다. 철강 25% 관세는 이달 12일부터 시행되고 있으며, 자동차 관세는 다음달 초에 발표될 예정이다. 현대차는 현지 생산을 늘려 최대한 관세를 피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트럼프 대통령을 추켜세울 투자 계획을 내놓아 한국을 향한 자동차 고율 관세 수위도 조금이라도 낮춰보겠다는 전략이다.
미국이 자동차·철강 관세(25%씩)를 강행할 경우 현대차그룹은 연간 최대 10조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이 때문에 현대차그룹은 연 120만대의 자동차를 미국 현지에서 생산한다는 계획도 밝혔다. 기존에 있던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36만대), 기아 조지아 공장(34만대)에 더해 준공식을 앞둔 조지아주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의 생산능력을 기존 30만대에서 50만대로 확대한다. 철강 관세를 피하기 위해 미국 내 제철소도 건설한다. 현대제철은 루이지애나주에 58억달러를 들여 자동차 강판을 만드는 전기로 제철소를 짓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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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산업 공동화 우려도
현대차그룹의 210억달러 투자 배경엔 관세 대응뿐 아니라 사업 전략도 깔려 있다. 최대 수출 시장이자 최대 국외 투자국인 미국에 더 집중하겠다는 의도다.
현대차그룹은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중국에서 2016년부터 판매량이 꺾인 뒤 북미 지역 의존도가 더욱 커졌다. 현대차·기아는 지난해 전세계에서 703만3천대를 팔았는데 이 가운데 24.3%인 170만8293대를 미국에서 판매했다. 넷 중 한 대가 미국에서 팔렸다. 현대차그룹이 1986년 미국에 처음 자동차를 수출한 이후 지난달까지 누적 판매량은 2930만3995대에 이른다.
그동안 국외에 투자했던 금액도 미국이 가장 크다. 이날 발표한 투자액까지 합치면 1986년 이래 현대차그룹의 대미 투자 규모는 모두 415억달러(약 61조원)에 이른다.
특히 현대차그룹은 이번 투자 계획을 통해 부품부터 자동차까지 모두 미국 현지에서 생산이 가능한 공급망을 형성한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2029년 완공될 현대제철의 루이지애나주 제철소는 미국 내 현대차그룹 공장에 자동차용 강판을 공급한다. 미래 경쟁력으로 꼽히는 전기차의 핵심 부품 이차전지도 현지 조달 물량을 늘린다. 현대차그룹과 국내 이차전지 업체들은 미국에 합작 배터리 공장도 짓고 있다. 정의선 회장은 “현재 50개 주 전역에서 57만개 이상의 미국 내 일자리를 창출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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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현대차그룹이 최신 공장 등 생산시설을 미국에 집중함에 따라 국내 자동차 산업의 부가가치 생산과 고용 등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도 적지 않을 것으로 우려된다. 현대차그룹은 이날 자료를 통해 국내에 24조3천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지만, 앞으로 울산 공장 등에서 만들어 미국으로 수출하는 물량의 감소가 우려된다. 현대차그룹이 미국 현지에서 생산하겠다고 밝힌 120만대 규모는 지난해 미국 판매량(170만8293대)의 70%에 이른다.
자동차산업 전문컨설팅업체 아인스(AINs)의 이항구 연구위원은 “현대차의 대미 투자 확대는 현대차·기아 국내 생산을 앞으로 30만대가량 줄이는 쪽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라며 “부가가치 생산도 그만큼 감소하고, 부품업체를 포함해 1만명가량 인력 감축 요인이 된다”고 말했다.
전슬기 기자 sgjun@hani.co.kr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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