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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7 (목)

이슈 스타와의 인터뷰

‘계시록’ 연상호 “맹목성이 주는 공포 아찔…믿음엔 객관성 필요”[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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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계시록’으로 돌아온 연상호 감독

맹목적 믿음으로 점철된 사회 분위기 저격

“믿음에도 이성적 사고·객관성 놓쳐선 안 돼”

넷플릭스 영화 ‘계시록’으로 찾아온 연상호 감독을 2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콘래드서울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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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사람이 사람을 유인하여 종으로 삼거나 판 것이 발견되면 그 유인한 자를 죽일지니 이같이 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거할지니라.”(신명기(Deuteronomy) 24장 7절)

연상호 감독의 신작 넷플릭스 영화 ‘계시록’에선 여러 신의 ‘계시’들이 사명의 나라 교회 담임목사 ‘성민찬’(류준열 분) 앞에 나타난다. 그중에서도 요양병원 복도 벽면에 쓰여 있던 ‘D 24:7’은 민찬이 자신이 믿는 바를 향해 더욱 거침없이 나아갈 수 있도록 불을 댕긴다.

2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콘래드서울에서 만난 연상호 감독은 신명기 24장7절 계시를 통해 “맹목(盲目)이 주는 공포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영화에서 민찬은 자신의 아이를 유괴한 사람이 최근 동네로 유입된 성범죄 전과자 ‘권양래’일 것으로 짐작하고 비 오는 밤 그의 집 앞을 찾아간다. 마침 커다란 봉고차에 삽과 갖가지 연장을 싣고 있던 수상한 행색의 권양래를 보곤 경찰에 신고하고, 출발한 봉고차를 놓칠까 홀로 뒤쫓는다. 인적이 드문 산속에서 두 대의 차는 멈춘다. 민찬은 봉고차로 달려가 내부를 수색한다. 다행히 민찬의 아이는 유괴당한 것이 아니라 친구랑 놀던 중이었고, 권양래의 봉고에도 사람의 흔적은 없었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 몸싸움이 붙었고, 민찬은 낭떠러지 아래로 양래를 밀어버린다. 추락한 양래는 피를 흘리며 빈사 상태가 된다. 민찬은 존경받는 목사인 자신이 살인범이 될 수 없기에 사체를 잘 안 보이는 곳으로 옮겨놓고 집으로 돌아온다. 자수할지 고민도 했지만, 신의 계시는 계속해서 그에게 ‘가만히 입 다물고 있으라’는 메시지를 전송한다. 심지어 그의 교회를 다니던 여중생 ‘아영’이 실종됐으며 경찰이 범인으로 양래를 뒤쫓자, 민찬의 죄책감은 눈 녹듯 사라지고 만다.

며칠 뒤 교회 정례 봉사활동을 위해 찾은 요양병원에 산속에서 기어 나온 양래가 입원해 있는 모습을 보고 민찬은 소스라친다. 양래가 의식을 찾으면 민찬은 대형 교회 담임목사 자리는 물론, 모든 것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래를 납치해 폐건물로 데려가 죽이고자 한다.

배우 류준열이 사명의 나라 교회 담임목사 ‘성민찬’을 맡아 열연한다.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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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요양병원 벽에 어떤 연유로 써졌는지 모를 ‘D 24:7’는 민찬에게 두 가지 믿음을 준다. 첫째, 악인(惡人) 권양래는 죽어 마땅하다. 둘째, 아영은 이미 희생되었다.

그래서 아영이와 그 부모가 알고 지내던 교회 신도들이 모여 열게 된 저녁 기도회에서 민찬은 자연스럽게 “천국에 있는 아영이를 위하여” 기도한다. 아영이의 부모를 제외한 다른 신도들은 이미 아영이가 죽었다고 전제한 민찬의 기도에 아무런 거부감을 느끼지 못한다. 통성기도의 데시벨은 점점 더 높아져 가고, 아영의 부모와 관객은 아연실색해 질려간다.

연 감독은 “민찬이 계시를 받았다는 확신에 아영이가 죽었다고 믿는다면, 민찬의 교회에 다니는 신도들은 맹목적으로 담임목사를 믿는 것”이라며 “이 모습들에서 맹목적임이 주는 공포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신실한 목사 민찬과 기독교 신도들을 통해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세태를 강조했기에, 작품이 공개되고 나서 연 감독이 개인적으로 기독교에 대해 반감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평들이 따라왔다.

연 감독은 이에 대해 “이야기를 일종의 우화로서 만들기 위해 종교라는 소재를 쓴 것이지, 내가 기독교(개신교) 비판의 목적을 가지고 있진 않았다”며 “다만 제가 20년전 쯤에 다녔던 교회가 극 중 민찬의 교회와 같은 개척교회인데, 거기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밝혔다.

“당시 교회를 이끌던 목사님이 교회에 신도들이 모이지 않고, 번영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받고, 빨리 결과를 내고자 조급해하셨다. 결국 이런 면에 너무 몰입이 되어서 들리는 얘기로는 이단으로까지 빠졌다고 한다. 다만 ‘계시록’은 제가 ‘파레이돌리아 현상’(불특정한 현상이나 이미지 등에서 특정한 의미를 추출하려는 심리)에서 직접적 모티브를 얻은 것이고, 이 증상을 앓는 분 중에 유독 종교인이 많다는 점에서 기독교와 연결하게 됐다.”

연 감독의 말처럼 ‘확증편향’은 비단 교회와 종교계에서만 나타나는 일이 아니다. 그는 “넓은 의미로 욕망하는 것만 보게 되는 현실, 그리고 그것을 점점 더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가 나타나고 있다”고 언급했다.

성범죄 전과자 ‘권양래’(신민재 분)가 민찬의 교회에 나타난다. 이 교회에 다니는 여중생 ‘아영’이 그의 범죄 타겟이 된다.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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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은 사회 분위기를 보여주기만 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태도 또한 넌지시 일러준다.

영화 속에서 ‘문제의 원인이 단 하나에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따져 묻는 대사, 그리고 권양래라는 범죄자를 알고 싶으면 ‘악마화하지 말고 한 인간으로서 분석해 봐야 한다’는 정신과 의사 ‘이낙성’(김도영)의 조언 등을 통해 연 감독의 메시지가 전해진다.

애초에 권양래가 감옥에 들어가게 된 것은 ‘연희(신현빈 분)’의 친동생 납치 감금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 희생자의 언니로서의 연희는 아영이 실종 사건을 뒤쫓으면서 곳곳에 놓인 힌트를 잘 발견하지 못한다. 그것은 복수심과 같은 감정이 그녀의 눈을 가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낙성은 극 ‘T’(MBTI 성향 중 차갑고 이성적인 면모를 지닌 ‘사고형’)다. 제가 T를 찬양하고자 영화를 만든 건 아니지만, 요즘 우리 사회는 너무 심하게 T형 인간을 빌런화시킨다. 어떻게 보면 모든 믿음의 가장 중요한 것은 어느 정도의 객관성 아닌가.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복합성에 의해서 일어난다.”

‘계시록’이 공개되고 맞이한 3월 마지막 주간은 ‘우연히도’ 한국 사회의 정치 사회적 혼란기, 탄핵정국 분수령과 맞물려있다.

연 감독은 “내가 ‘계시록’을 쓰고 만들었지만, 어쩌면 이 한국 사회가 ‘계시록’을 잉태한 것 같다”며 “마찬가지로 그동안 내가 이 사회를 살면서 느껴왔던 것들이 알게 모르게 이 작품으로 나타나게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작품이 이야기하는 T적인 결론이 있지 않나. 사람들은 T를 참 싫어하지만, 그것이 답이지 않을까 한다. 믿음이라는 것은 결론이 아니라 과정이며, 또 믿음에는 객관성이 필요하다. 이렇게까지 명확하게 얘기하는 영화가 어디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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