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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컴에도 GPU가 필수? 엔비디아의 공진화 전략 [김윤수의 퀀텀점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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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IT 기자가 들려주는 양자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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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가 18일(현지 시간) 그래픽처리장치(GPU)와 양자처리장치(QPU·양자칩)를 결합한 새로운 연산 인프라 ‘가속 양자 연구센터(NVAQC)’를 만들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보도자료에 첨부된 NVAQC 이미지를 보면 전통적인 슈퍼컴퓨터 중앙서버 주위에 원자, 양자 회로, 입자-파동 이중성 등 양자역학을 연상시키는 기호들로 표시된 보조서버들이 연결돼 있습니다. QPU 기반의 양자컴퓨터가 상용화하더라도 여전히 GPU 기반의 슈퍼컴퓨터와 함께 쓰일 것으로 보고 한발 더 나아가 고대역폭메모리(HBM)처럼 QPU도 자사가 주도하는 GPU 생태계에 합류시킨다는 엔비디아의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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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이번주 열린 연례 개발자 회의 ‘GTC 2025’에서 사상 첫 양자세션 ‘퀀텀데이(양자의 날)’를 열고 “우리가 직접 로봇을 만들지 않듯 양자컴퓨터도 개발하지 않는다”며 “대신 양자컴퓨터를 가능하게 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 (GPU 기반 개발 플랫폼) ‘쿠다(CUDA)’처럼 양자컴퓨터 생태계도 우리 모두가 함께 조성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기업들이) 양자컴퓨터가 기존 컴퓨팅 산업에 가치를 더해줄 수 있다는 점을 내세웠으면 한다”고도 했습니다. NVAQC를 통해 퀀티넘, 퀀텀머신, 큐에라 등 양자컴퓨터 기업들과도 협력하기로 했죠.

이는 장차 QPU가 GPU를, 즉 양자컴퓨터가 슈퍼컴퓨터를 대체할 것이라는 일각의 기대와는 다른 시각입니다. 황 CEO는 앞서 1월 미국 소비자가전쇼(CES)에서 “유용한 양자컴퓨터 상용화까지 20년은 걸릴 것”이라고 발언해 양자컴퓨터 기업들의 주가를 폭락시킨 바 있습니다. 당시 그가 현재 슈퍼컴퓨터 생태계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경쟁 기술인 양자컴퓨터를 두고 회의적인 평가를 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업계에서 잇따랐을 만큼 두 기술은 서로 경쟁 관계라는 인식이 있습니다. 황 CEO가 진짜로 양자컴퓨터를 견제하는지 그 속내는 알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이번에 보여준 대응 전략은 GPU와의 공진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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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적으로 보면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전략입니다. 슈퍼컴퓨터와 양자컴퓨터가 각각 고유의 강점을 가진 데다 이것들이 상호보완적으로 쓰일 여지가 크기 때문입니다. 앞서 양자컴퓨터가 현대 암호의 근간인 소인수분해를 굉장히 잘 풀 수 있다고 했죠. 가령 인간은 91을 소인수분해하기 위해 2, 3, 5, 7··· 등 소수(素數)들을 차례로 91과 나눠본 후 나눠떨어지는 숫자를 찾습니다. 91이 2, 3, 5로는 안 나눠떨어지고 7로는 몫 13으로 나눠떨어지니 91 = 7 X 13이라는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슈퍼컴퓨터는 이 계산을 아주 빠르게 하는 장치고요.

반면 양자컴퓨터는 양자중첩 원리로 0과 1의 디지털 정보를 동시에 처리하는 큐비트로 병렬 계산이 가능하다고 했죠. 이런 큐비트가 7개, 즉 7큐비트만 있어도 2진법 수 0000000부터 1111111, 즉 숫자 0부터 127까지 128개의 숫자를 동시에 91과 나눠보고 그중 정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물론 91은 작은 수라서 양자컴퓨터의 계산법이 다소 요란해보일 수 있습니다. 대신 앞선 편에서 소개한 129자릿수에 달하는 매우 큰 수 RSA-129를 소인수분해하거나 수만 가지 경우의 수가 가능한 신약 후보물질의 분자구조 조합 중 효능을 극대화하는 조합을 찾는 식의 문제를 풀 때 양자컴퓨터가 진가를 발휘할 수 있죠.

요컨대 비교적 단순하고 속도가 중요한 계산은 슈퍼컴퓨터가 여전히 유리한 반면 여러 경우의 수 중 최적의 선택지를 찾아야 하는 이른바 ‘길찾기류’ 문제는 양자컴퓨터가 유리하다고 평가됩니다. 엔비디아는 두 컴퓨터가 각자 잘하는 작업을 담당해 전체 작업을 효율화하는 식으로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보고 관련 협업 사례들을 블로그를 통해 소개해왔습니다. 일례로 지난해 1월 세인트 주드 어린이 연구병원, 토론토대와 함께 발표한 ‘생성형 양자 아이젠솔버(GQE)’라는 모델이 있습니다. GPT 모델과 양자 알고리즘을 결합해 화학 분야의 분자 에너지 계산을 효율화한다는 설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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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가 이보다도 특히 강조하는 시너지는 양자컴퓨터의 계산 오류를 최소화하는 오류정정 작업입니다. 큐비트는 양자중첩 상태의 입자이고 이는 빛이나 공기 같은 외부 영향을 받으면 상태가 왜곡돼 계산 오류로 이어진다고 했죠. 현실적으로 큐비트를 외부 영향으로부터 100% 차단시킬 수는 없어 어느 정도의 계산 오류가 불가피합니다. 대신 구글 등이 여러 큐비트(물리적 큐비트)에게 같은 계산을 맡긴 후 그 결과를 크로스체크하는 방식으로 정확도를 높이는 ‘논리적 큐비트’ 기술을 발전시키고 있다고도 했죠.

큐비트들의 계산결과를 취합해 이를 하나의 논리적 큐비트로 구현하는 일련의 작업도 결국 알고리즘을 통해 이뤄집니다. 이 같은 알고리즘 처리(디코딩)는 비슷하게 반복되는 작업을 정확하고 빠르게 수행하는 게 관건인 ‘비교적 단순하고 속도가 중요한 계산’, 즉 양자컴퓨터보다는 슈퍼컴퓨터에 유리한 계산이라는 게 엔비디아의 설명입니다. 게다가 슈퍼컴퓨터 두뇌인 GPU는 반복되는 패턴을 학습하는 오늘날 인공지능(AI) 연산에 최적화했죠. 공교롭게도 양자컴퓨터를 작동시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전작업을 슈퍼컴퓨터가 맡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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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는 아예 GPU로 양자 오류정정 작업을 지원하는 새로운 개발도구 ‘엔비디아 DGX 퀀텀 레퍼런스 아키텍처’를 퀀텀머신과 공동 개발해 이번 GTC에서 공개했습니다. 다음달 출시해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독일 프라운호퍼, 대만 아카데미아 시니카 등 주요 연구기관 연구자들에게 제공할 계획입니다. 큐에라와도 이번 GTC에서 관련 기술을 선보였습니다.

엔비디아는 지난해 11월에도 양자컴퓨터 기업 아이온큐와 손잡고 ‘쿠다큐(CUDA-Q)’를 활용해 화학 분야 등의 계산을 빠르게 할 수 있는 GPU·QPU 하이브리드(혼합) 컴퓨팅 기술을 선보였습니다. 쿠다(CUDA)는 엔비디아 GPU에 최적화한 개발도구들을 제공하는 개발 플랫폼이고 이에 QPU를 더한 하이브리드 개발 플랫폼이 쿠다큐입니다. 엔비디아가 쿠다로 자사 중심의 AI 생태계를 공고히하고 있듯 쿠다큐도 일찍이 선보이며 양자 생태계를 준비해온 셈이죠.

GPU와 QPU의 궁합에 주목한 건 엔비디아만은 아닙니다. 최근 인터뷰한 최재혁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양자기술연구소장은 “양자컴퓨터와 슈퍼컴퓨터를 연계하는 하이브리드 컴퓨팅이 현재 많이 시도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일례로 일본 산업기술총합연구소(AIST) 산하 양자·AI 전담조직인 ‘지쿼트(G-QuAT)’는 조만간 양자컴퓨터와 슈퍼컴퓨터 센터를 각각 1동씩 총 2동으로 꾸린 하이브리드 컴퓨팅 시설을 준공할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국내에서는 최근 SK텔레콤이 아이온큐와 지분 맞교환을 포함한 AI·양자 분야 전략적 제휴를 맺었죠.

한편 이번 퀀텀데이에서는 12개 기업 CEO가 황 CEO의 초청을 받아 존재감을 드러냈습니다. 퀀티넘, 큐에라, 아이온큐, 시큐시 말고도 앨리스앤밥, 디웨이브, 파스칼, 리게티 등도 있습니다. 프랑스 스타트업 앨리스앤밥은 앞서 아마존웹서비스(AWS)도 자사 QPU ‘오셀롯’에 도입한 오류정정 신기술 ‘고양이 큐비트’ 개발을 주도하는 업체로 앞선 편에서 소개했죠. 파스칼은 2022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알랭 아스페 연구팀이 세운 스타트업으로 큐에라처럼 냉각장치 없이 큐비트 구현이 가능한 중성원자 양자컴퓨터를 개발합니다. 엔비디아가 비전 실현을 위해 앞으로 어떤 양자컴퓨터 기업들과 협력해나갈지도 관전 포인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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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수 기자 soo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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