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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3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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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스타] ‘선의의 경쟁’ 정수빈 “행복하기 위해 연기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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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의 경쟁'에서 우슬기 역으로 출연한 배우 정수빈. 제이와이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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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정수빈은 바다같이 깊은 눈을 가졌다. 그래서일까, 그간 맡아온 캐릭터들은 사연도 많고 눈물은 더 많았다. ‘선의의 경쟁’의 슬기는 그중에서도 진취적이고 입체적인 캐릭터였다. 현실은 버거웠지만 고난에 잠식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드라마 ‘선의의 경쟁’은 살벌한 입시 경쟁이 벌어지는 대한민국 상위 1% 채화여고에 전학 온 슬기를 둘러싼 미스터리 걸스릴러물이다. 정수빈은 오디션을 거쳐 ‘생존형 전교 1등’ 우슬기 역을 따냈다. 어린 시절 실종아동이 돼 지방 보육원에서 성장했고, 살아남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다. 부모를 찾았다는 소식에 서울에 오지만 아버지의 미스터리한 죽음 이후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인물이다.

'선의의 경쟁'에서 우슬기 역으로 출연한 배우 정수빈. 와이랩 플렉스, STUDIO X+U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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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빈은 슬기를 마냥 어둡고 힘들게 바라보지 않았다. 상처 입은 인물의 마음에도 예쁨이 있을 것이라 믿고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종영 인터뷰를 위해 만난 정수빈은 “두꺼운 벽 안에는 깨끗한 벽지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파란색을 알려주면 파란색을, 노란색을 알려주면 노란색을 칠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다채로운 색깔을 만들어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2020년 ‘라이브온’으로 데뷔해 ‘소년심판’, ‘트롤리’, ‘수사반장 1958’ 등을 거쳐 선의의 경쟁을 만났다. 슬기의 시선을 중심으로 극을 이끌어가야 한다는 책임감이 막중했던 작품이다. 준비 과정에서 정수빈이 택한 방법은 걷기다. 개성 강한 인물들, 그들이 펼치는 치열한 심리전은 생각의 꼬리를 물게 했다. 전작 트롤리는 막힌 공간에서 인물을 이해했다면, 이번엔 탁 트인 공간에서 걷고 또 걸었다. 정수빈은 “슬기는 고민에 빠져 멈춰선 친구가 아니라 고민을 타파하기 위해 해결책을 찾는 인물이었다. 걸으며 생각을 해소하고 방향성을 찾았던 것 같다”고 돌아봤다.

절대 권력 유제이 역의 이혜리를 비롯해 강혜원(주예리 역), 오우리(최경 역)와 아슬아슬한 우정을 쌓았다. 채화여고 학생들은 성적을 위해 집중력을 높이는 약을 먹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음모와 술수를 일삼았다. 도파민 중독이라 일컫는 요즘 세대의 취향에 딱 맞는, 동시에 지극히 현실적인 소재였다.

과열된 경쟁 속에도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건 확실했다. 정수빈은 “슬기도 약에 의존해 공부했지만, 알고 보니 약을 먹지 않아도 1등을 할 수 있었다”며 “정직한 믿음을 가지면 긍정적인 경쟁이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만일 스스로를 믿지 못해도 제이처럼 나를 믿어주는 좋은 사람과 함께라면 선의의 경쟁을 할 수 있는 세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디션을 거쳐 배역을 따내고, 촬영 후에는 작품 간의 경쟁이 펼쳐진다. 배우로서 경쟁의 장 안에 서 있는 정수빈은 “경쟁은 상대가 있어야 가능하다. 경쟁이 배움과 이해의 과정이라면 나쁘지만은 않다”며 “이를 통해 보다 나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경쟁의 순기능을 짚었다.

'선의의 경쟁'에서 우슬기 역으로 출연한 배우 정수빈. 제이와이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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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을 먹고 나면 물속에 잠긴 듯한 감정을 느낀다. 이러한 내면을 표현하기 위해 수중 촬영이 병행됐다. 물속에 놓인 책상에 앉아 공부하면 집중력이 향상되는 등 작품의 독특한 연출과 배우들의 연기는 호평을 얻었다.

수영을 할 줄 모르는 그에겐 덜컥 겁이 나는 대본이었다. 하지만 촬영을 하며 나도 모르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정수빈은 “스태프의 도움에 (물속에서) 편안하게 머무를 수 있었다. 알고 보니 내가 물을 좋아하더라”며 웃어 보였다. 디테일한 시각적 표현들도 대본을 보고 상상하며 연기했다. 물속 깊은 곳에 잠기면 고요함과 평온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저 연기가 아니라 슬기가 느끼는 감각을 직접 경험하는 느낌이 들어 더욱 흥미로운 촬영이었다고 했다.

배우는 현장에서 연기를 하지만, 각종 특수효과와 편집을 거쳐 결과물이 완성된다. 정수빈은 “아직은 스스로 부족함을 찾으며 보게 된다. 편집된 장면들을 보며 배울 점이 많았다”고 말했다. 특히 기술 스태프의 소중함을 많이 느끼게 된 작품이었다.

제이의 눈에 든 이유도 전교 1등 타이틀이 있었기 때문이다. 불우한 성장 환경으로 극심한 학교 폭력의 피해자가 됐고,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성적뿐이었다. 뚜렷한 슬기의 서사를 살리기 위해 ‘슬기스러운’ 스타일링을 준비했다. 보육원에서는 기증받은 옷을 돌라입어야 했다. 서울에 와서도 새어머니 눈치를 보며 학교생활을 했다. 교복을 구하는 것도 스스로의 몫이었다. 전학 오기 전, 옥상에서 괴롭힘을 당할 때 신던 신발을 계속 신었다. 층을 많이 낸 머리스타일로 슬기의 자유분방함을 표현하려 했다. 정수빈은 “세상과 맞서 싸울 수 있는 와일드함이 잘 담긴 것 같다. 드러내고 꾸미긴 힘드니, 메이크업도 자연스러움을 추구했다”고 말했다.

'선의의 경쟁'에서 우슬기 역으로 출연한 배우 정수빈. 와이랩 플렉스, STUDIO X+U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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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의 경쟁’ 주연진에게는 인물마다 부여된 색깔이 있었다. 슬기는 노랑, 제이와 예리, 경은 각각 파랑, 핑크, 초록색을 맡았다. 드라마를 보다보면 각자의 색상이 드러나는 아이템을 찾는 재미도 쏠쏠했다. 여기에 더해 수중 촬영 덕에 색에 대해서도 공부해봤다. 교복을 입을 때, 사복을 입을 때 물속에서는 각각 다른 색으로 보여서 미리 고민하고 옷을 입어야 했기 때문이다. 정수빈은 “물에 들어가면 옷이 다른 색처럼 보여서 색에 대한 공부를 많이 했다”면서 “바로 노란색이 되기보다는 점점 노랗게 바뀔 수 있도록 방향성을 고민해봤다”고 답했다.

슬기와 제이의 관계성은 반전의 반전이었다. 슬기에게 접근한 제이에게도, 제이의 호의를 받아들인 슬기에게도 속사정이 있었다. 그럼에도 사랑받아 본 적 없는 슬기에게 제이의 존재는 특별했다. 정수빈은 슬기의 마음을 도미노에 비유했다. “제이는 계속해서 마음의 문을 두드렸다. 그때마다 도미노처럼 착착 넘어간 슬기의 마음이 녹아내렸다고 생각한다”며 “제이의 믿음과 따스함이 너무 감사해서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한 번 더 믿으려 했다. 누구도 믿어주지 않은 슬기를 믿어준 게 제이였다”라고 해석했다.

제이는 아버지를 향한 복수심을 죽음으로 갚으려 했다. 결말을 모르고 촬영에 들어간 정수빈에게도 제이의 마지막 선택은 충격 그 자체였다. 대본을 읽는 것만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이었다고 돌아봤다. 정수빈은 “어느 계절 속을 걷고 있는지 몰랐다는 말이 잊히지 않는다. 슬기는 그렇게 따듯한 위로를 받았는데, 또 나만 생각하고 등을 돌렸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안타까워 했다.

어린 슬기부터 고등학생의 슬기까지. 부모님을 놓친 그 바다에서 슬기는 제이의 손을 잡고 걸어나갔다. 이 장면의 의미를 묻자 정수빈은 “부모님을 잃었던 장소에서 똑같이 제이를 잃게 됐다”고 해석했다. 제이로 인해 수능을 못봤다고 생각한 슬기는 교실을 박차고 나온다. “마지막으로 제이를 볼 수 있는 시간이라는 걸 슬기는 몰랐을 거다. 제이가 그만큼 벼랑 끝에 있었는지 미처 몰랐던 슬기에겐 바다가 제이의 부재를 상기시키는 장소”라며 “동시에 늘 제이의 상실을 걱정하고 있는 슬기가 초인종 소리를 들으며 희망을 가지게 되는 전개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제이가 살아있을 거라 굳게 믿고 수능도 잘 봤으리라 믿었다. “(제이가) 살아있다는 걸 확인했으니, 슬기는 더 긍정적으로 살아갔을 것 같다. (제이를 만나) 같이 모든 계절을 걸으며 살아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두 사람의 안녕을 바랐다.

보육원에서 자란 슬기는 용돈 벌이를 위해 불법 아르바이트를 한다. 갓세븐 영재(남병진 역)가 슬기의 보육원 선배로 분해 슬기 주변을 맴돈다. 선과 악 사이 그 어딘가에서 슬기를 조여오는 인물이다. 정수빈은 “병진이 나를 위협하는 장면이 있는데, 연기에 집중 할 수 있도록 배려를 많이 해주셨다. 매 장면마다 정말 많은 준비를 해오셨더라”며 “촬영을 위해 운동도 열심히 하셨다. 어두운 장르적 요소가 많은데 덕분에 밝게 촬영할 수 있었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가장 큰 버팀목이 되어준 건 선배 혜리였다. 책임감이 부담으로 돌아올 즈음 혜리의 초대를 받아 집에서 연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언니가 다른 배우분에게 받은 고마움이 있는데, 그걸 내게 그대로 해주더라. ‘다 도와줄테니 있는 그대로 연기하라’는 응원의 말에 편하게 연기할 수 있었다”고 했다.

혜리는 자신의 유튜브채널 ‘혤스클럽’에도 정수빈을 초대해 14일 영상이 공개됐다. 비하인드 스토리를 묻자 정수빈은 “(출연은) 상상도 못 했던 채널”이라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촬영했다. 마침 ‘수사반장’에 함께 출연한 (이)제훈 선배님 영상도 봤는데, 나도 같은 생각을 했다. 대본도 없이 진행을 너무 잘하시더라. 또 한 번 반했다”고 애정을 드러냈다.

'선의의 경쟁'에서 우슬기 역으로 출연한 배우 정수빈. 제이와이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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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의 경쟁’은 U+tv, U+모바일tv 및 해외 플랫폼을 통해 공개됐다. 지난 10일부터는 티빙 등 국내 OTT에서 공개되며 흥행 가속이 붙었다. 동시에 영화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의 공개로 겹경사를 맞았다. 4년 전 촬영한 배우 정수빈의 데뷔작이자 한국 최초로 제74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수정곰상 제너레이션 K플러스 작품상을 받은 기대작이다. 정수빈은 예술단에서 단 한 번도 톱을 놓친 적 없는 센터 나리로 분해 사춘기 여고생의 얼굴을 보여준다.

지난해 겨울 영화제에 직접 참석해 수상의 기쁨을 맛봤다. 그는 “왠지 상을 받을 것 같은 좋은 기분이 들었다”면서 “월드컵 4강에 간 것처럼 소리를 질렀다.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행복한 경험이었다”고 돌아봤다. 선의의 경쟁의 성공과 영화 개봉이 동시에 이뤄지며 더 큰 원동력을 갖게 됐다. 다시 새 시작점에 섰다. 그는 “나는 행복하기 위해 연기를 한다. 이 행복을 어떻게 대중분들께 돌려드릴까 동료들과 함께 고민을 나누며 ‘애교 넘치는 세상을 만들어 보자’는 각오를 갖게 됐다”며 “감사함을 알기에 더 열심히, 성실하게 연기하겠다”고 다짐했다.

정가영 기자 jgy9322@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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