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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사일언] 짜장면도 ‘K푸드’

조선일보 윤진선 ‘어쩌다 강남역 분식집’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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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사일언] 짜장면도 ‘K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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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입학식·졸업식, 생일 같은 행사가 생기면 짜장면을 먹었다. 이사 날도 짐 정리를 마치면 어김없이 짜장면을 먹었다. 우리뿐만 아니라 많은 집이 그랬다. 누가 정해준 것도 아니다. 외식이 여의치 않았던 시절 주머니 사정에 구애받지 않고 먹을 수 있던 ‘특식’이 한국인의 솔푸드로 자리 잡은 것이다.

서울 강남역 근처 분식집에서 일할 때였다. 캐리어를 끌고 손님 두 명이 가게 문을 열었다. 서로 나누는 대화를 들어보니 중국인이었다. 둘이 한참 이야기하더니 카운터에 서 있는 나에게 어눌한 한국어로 말한다.

“여기 짜장면 있어요?” “네?” “여기 짜장면 팔아요?”

당시 나는 베테랑(?) 분식집 직원이었다. 6년 정도 대기업에 다니다 아이를 가져 이른바 ‘경력 단절’된 뒤 10년 만에 분식집에서 일한 지 1년쯤 됐을 때였다. 이런 질문은 처음이었다. 너무 놀라 커다란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머리가 멍해졌다.

“짜장면은 중국집에서 팔아요. 분식집에는 없어요.” 이번에는 중국인 손님이 놀란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에, 중국집이요? 중국 음식 파는 곳이요?” “네!”

나의 대답에 손님들이 오히려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한국 여행 가면 분식집 가서 짜장면 찾으면 된다는 정보를 누가 줬을까’ 궁금할 따름이었다. 안타깝게 그들은 발걸음을 돌렸지만, 근처에 중국집이 많으니까 아마도 짜장면을 맛봤을 것이다.


추측하건대 그들은 아마도 “중국 음식점에 가서 짜장면을 먹을 수 있다”는 내 말에 놀란 것 같다. 그들은 ‘짜장면=한국 음식’이라 생각했을 것이고, 메뉴판에 라면·김밥·떡볶이 이런 것을 붙여 놓은 우리 가게 간판을 보고 들어온 것이었을 테니까. 짜장면의 원조인 나라 중국에서 짜장면을 K푸드로 생각하고 분식집을 찾은 것이다. 짜장면은 원래 중국 ‘작장면’이 원조였는데. 김치도 자기들이 원조라고 따지는 중국에서 짜장면을 한국 음식으로 생각한다니 오히려 기특하다고 해야 할까?

짜장면이 어느 나라 음식인지 중요하지 않다. 맛만 좋으면 되니까. 앞으론 분식집에서 짜장면을 팔아도 괜찮을 것 같다.

3월 일사일언은 윤진선씨와 김아림 세종문화회관 공연제작 2팀장, 이승하 시인, 에노모토 야스타카 ‘나만의 일본 미식 여행 일본어’ 저자, 박시영 2025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 당선자가 번갈아 집필합니다.

[윤진선 ‘어쩌다 강남역 분식집’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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