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 의정갈등 1년, 봉합은 언제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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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10년간 아프면 안 돼"…돌아오지 않는 의사들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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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증원 발표 등을 접한 전공의들이 병원 현장을 떠난 지 1년이 다 된 가운데 이들 10명 중 6명 가까이는 동네 병의원에 취업해 근무 중인 것으로 조사됐다. 18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이 보건복지부에 받은 자료에 따르면 사직했거나 임용을 포기한 레지던트 9222명 가운데 5176명(56.1%)이 지난달 기준으로 의료기관에 다시 취업했다. 사진은 이날 서울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는 모습. /사진=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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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우리나라에서 다치거나 아프면 안 되는 '이유'가 생겼다. 중증·응급 진료를 담당할 의사의 '씨'가 말라가고 있기 때문인데, 세계 의료 최강국 대한민국에서 2035년까지 최소 10년간은 의사 대규모 공백 사태를 마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미래 전문의·전공의가 될 현재의 전공의·의대생 대다수가 1년 전 자리를 떠난 후 아직도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어서다. 과연 이 사태는 언제쯤 매듭지어 질까.
지난해 2월20일 의대정원 증원책에 반발해 전공의들이 수련병원을 떠나간 지 꼬박 1년이 돼가는 이달 17일 기준, 전국 수련병원 211곳에 남은 전공의는 불과 8.7%(1만3531명 중 1175명)다. 이들이 돌아오지 않는 한, 전공의의 빈자리가 채워지기까지는 단순히 1년이 아닌, 10년은 족히 걸린다. 최고참 전공의 1명을 배출하려면 의대 6년, 전공의(인턴·레지던트) 4~5년을 거쳐야 해서다.
수련병원을 떠난 전공의의 절반 이상은 전문의의 길을 포기했다. 18일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14일 기준 수련병원에서 사직했거나 임용을 포기한 레지던트 9222명 중 5176명(56.1%)이 의료기관에 '일반의'로 재취업해서다.
일반의로 돌아선 사직 전공의(5176명)의 58.4%(3023명)은 중증·응급환자를 받는 수련병원이 아닌, 경증환자를 주로 받는 '의원'에서 일하고 있다. 그마저도 필수의료는 외면 받았다. 필수의료과에 재취업한 사직 전공의는 542명으로 의원급에 취직한 사직 전공의(3023명)의 17.9%에 그쳤다. 의원급 중 내과 382명(12.6%), 산부인과 80명(2.6%), 소아청소년과 45명(1.5%), 외과 35명(1.2%)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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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급종합병원은 사직 전공의에게도 문을 열어놨지만 '파리'만 날린다. 올해 상반기 전공의 지원자 가운데 필수의료 지원율은 처참하다. '환자를 대면하지 않는' 예방의학과가 지난해 꼴찌(16.7%)였다가 올해 93.3%로 1위로 올라선 것이다. 반면 △산부인과(5.9%) △마취통증의학과(6.2%) △내과(8%) 등 '의료사고 발생 위험이 큰' 필수의료의 전공의 확보율은 10%에도 미치지 못했다. 의료사고 시 의사가 막대한 배상책임을 져야 한다는 판결이 잇따르자, 이런 모습을 지켜본 후배 의사들이 뒷걸음친 것이란 해석이 지배적이다.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협회(의대협)에 따르면 의사 국가시험 응시 예정자 중 95.52%가 의사 국가시험을 거부하면서 제89회 의사 국시 최종 합격자는 지난해의 8%인 269명에 그쳤다. 그마저도 합격자의 19.3%(52명)은 외국 의대 출신으로, 예년 수준(1%가량)의 19배에 달했다. 휴학 의대생 대다수는 올해도 돌아오지 않을 태세여서 의사면허를 새롭게 취득하는 신규 의사는 내년에도 바닥을 칠 전망이다.
신규 의사는 급감했지만, 당장 올해 의대에 입학하는 25학번은 포화상태다. 지난해 휴학생들이 올해 1학기에 복귀하면 7500여명이, 돌아오지 않더라도 기존(3058명)보다 1509명 증가한 4567명이 똑같은 교실에서 부대끼며 공부해야 할 판이다.
25학번의 혼잡한 교실은 차치하더라도 당장 내년도 의대정원이 확정되지 않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의대정원은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4월 중 입시 요강을 확정하기 전까지 수정할 수 있지만, 혼란을 최소화하려면 이달 말까지는 2000명 증원 전인 3058명으로 돌아갈지, 3058~5038명 사이에서 정할지 결론을 내려야 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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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고승민 기자 = 대한의사협회 김택우 회장과 박단 부회장이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우원식 국회 의장을 예방, 우 의장의 인사말을 듣고 있다. 2025.02.17. kkssmm99@newsis.com /사진=고승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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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들은 전공의와 의대생이 돌아오게 하려면 이들이 납득할 만한 근거에 따라 필요 의사 수를 정하고, 그에 맞춰 26학번 의대 정원을 결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나마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가 정부에 제시한 7대 요구안 중 하나인 '의사 수 추계 기구 설치'가 법제화를 위한 시동을 걸었다. 지난 14일 국회에서 열린 '의료인력 수급 추계기구 법제화를 위한 공청회'에선 의사단체·환자단체·소비자단체·대학교수 등 각 직역이 우리에게 필요한 의대정원 규모를 어떻게 추계할 지를 두고 의견을 모았다.
하지만 이날 공청회에선 의사단체와 비(非)의사단체 간 입장 차만 확인하는 데 그쳤다. 또 추계위를 구성할 의사의 비율, 권한 등을 놓고 견해가 엇갈리면서 추계위를 통한 의대정원 결정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을 전망이다.
그래도 의사들은 지난해와 달리, 대화의 장으로 나설 태세다. 김택우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 박단 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은 17일 국회에서 우원식 국회의장과 박주민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을 만나 "의대정원에 대해서는 선발 규모 조정 등 (의정갈등과 관련된) 사태 해결이 시급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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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개혁 1년째 표류' 비판에도…정부 "흔들린 적 없어, 끝까지 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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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의료개혁 개요-필수의료 패키지(4대과제). /그래픽=이지혜 디자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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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계획한 2024년은 '의료개혁의 원년'이었다. 2035년이 되면 1만5000명의 의사가 부족해지는데, 이에 대응하려면 현재 의과대학 입학정원을 '2000명' 늘려 기존 3058명에서 5058명으로 대폭 증원해야 한단 게 정부의 계산이었다. 초기만 해도 정부는 "의사와 협상을 통해 의대 정원을 결정하는 사례는 어디에도 없다"며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사직 전공의들의 복귀가 요원한데다 비상계엄 당시 포고령 내 '전공의 처단' 문구로 의료계 반발 수위가 높아지면서, 내년 의대 증원 규모는 '원점 재논의'까지 언급된 상황이다.
◇"의대 정원 2000명 더" 정부 발표 후 전공의 집단사직…1년째 미복귀
정부가 지난해 2월 발표한 '의대정원 2000명 증원' 계획에 의사들은 즉각 반발했다. 같은 달 19~20일 서울대·연세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아산·서울성모병원의 '빅5 병원'을 비롯한 전국 주요 병원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에 들어가는 한편 의대생들도 단체로 휴학계를 내면서 의료공백 사태가 본격화됐다. 정부는 사직 전공의들을 상대로 업무개시명령과 면허정지 처분을 내리는 등 강경 대응했지만, 이후에도 의정 간 합의점을 끌어내지 못하면서 상황은 장기화 국면에 빠졌다.
해를 넘긴 지난 1월10일 정부는 ①전공의들이 사직 전 수련병원과 전문과목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하는 수련특례 및 입영 연기 ②2026년도 의대 증원 원점 재논의 등 복귀유인책을 내놓으며 뒤로 물러섰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의료계가 대화에 참여해 논의해나간다면 2026년도 의대 정원 확대 규모도 '제로베이스'에서 유연하게 협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정부가 왜 자꾸 흔들리며 후퇴하느냐는 비판은 감수하겠다"면서도 "전공의 복귀를 지원하기 위한 정책을 계속해왔기 때문에 그런 측면에서 정부 정책의 일관성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당초 정부는 여야의정협의체를 통한 의정 소통 강화와 의료개혁 2차 실행방안 발표 등 해를 넘기기 전 성과를 내겠다고 거듭 강조해왔다. 그러나 여야의정협의체 내 의사단체 탈퇴로 불과 3주 만에 공식 대화가 중단, 현재까지 재가동 움직임은 없는 상태다. 이후 비상계엄 당시 '전공의 처단' 포고령 여파로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의개특위)에서도 병원단체 3곳이 이탈했다. 형식적으로나마 운영됐던 의정 간 대화 창구가 모두 중단된 것이다.
◇정부 "의료개혁 흔들린 적 없다"…'의정 대화창구' '2차 실행안 발표' 등 과제는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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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사진=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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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 자체를 두고도 의정 간 대치는 1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의개특위 구성 초부터 유일한 법정 의사단체인 대한의사협회(의협) 측 참여를 요청해왔지만 의협은 새 집행부가 들어선 지금도 여전히 회의적이다. 정부는 '대화의 장이 열려있으나 의협이 화답하지 않는다'란 입장인 반면, 의협은 '정부가 정책 실패를 인정하지 않으면 대화가 어렵다'는 태도를 유지 중이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머니투데이와 통화에서 "정부는 2026년도 정원 관련 2000명(증원)을 고집하지 않고 유연한 자세로 의료계와 논의하겠단 입장"이라며 "비급여·실손보험 개혁안 등과 관련해서도 언제든 구체적인 대화를 나눌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사직 전공의 중 한 명인 박단 의협 부회장(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은 기자와 통화에서 "정부가 (의료개혁) 정책 실패를 인정하는 게 우선이고, 의대생 7500명(지난해 입학 후 휴학생 3000명+올해 신입생 4500명) 대상의 교육 대책도 내놓아야 한다"며 "전공의 요구안을 수용하겠단 입장도 아니면서 다른 한쪽에선 진료지원인력 업무 조정 등 의정 갈등을 악화하는 정책을 강행하고 있다. 2023년에도 의정협의체 격인 의료현안협의체가 있었지만 의대 정원 등 구체적 논의는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정부는 '의료개혁 완수'를 거듭 강조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등이 담긴 1차 실행방안 발표에 이어 △포괄 2차 지역병원 육성·의원급 구조전환 △실손보험 개혁안 등이 담긴 2차 실행방안 발표가 예정(지난해 말)보다 지연되고는 있지만, 차질은 없단 게 정부 주장이다. 박 차관은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 국면을 거치며 의개특위 내 관련 논의가 일부 중단됐던 건 맞지만 의료개혁 자체의 방향성은 흔들린 적 없다"며 "실손보험 개혁안에 대해선 금융위원회 측에 국민 입장에서 보강해 줄 것을 요청, 조율 중이며 포괄 2차 지역병원 등 내용도 현장 의견을 통해 보완하고 있다. 완성도 있는 안을 상반기 내 적정 시점에 발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홍효진 기자 hyost@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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