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정부는 '밀어붙이기'식 논쟁법을 즐겨 사용했다. 먼저 논리가 부족하더라도 주장을 강하게 밀어붙인다. 주제가 정치적 논쟁으로 오염되면, 전국민을 상대로 정치적 줄세우기에 나선다. 싸움이 격해지면 논쟁은 문제의 본질과 멀어진다. 상속세 갑론을박은 이같은 윤석열 정부식 논쟁법의 전형으로 볼 수 있다.
# 기획재정부가 내놓은 2024년 세법개정안을 대충만 봐도 상속세 개정은 '유산 30억원 이상의 최고세율 인하'가 목적인 원포인트 개정에 가까웠다. 굳이 더 추가하면 '기업을 물러주면 최대 1200억원'을 공제받는다는 점이다. 국민 대부분이 관심을 갖는 공제 한도는 곁가지다. 더스쿠프가 상속세 논쟁의 기원을 다시 복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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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세 개편 논의가 꼬이기 시작한 건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 때문이다. 논란의 발언 이후 대통령실 정책실장 등 윤석열 정부 주요 인사들이 그것을 바로잡기는커녕 오히려 옹호하면서 상속세 문제는 정치의 영역으로 이동했다.
기획재정부는 갑자기 방향을 선회해 최고세율 인하 진영에 줄을 섰다. 제대로 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럼 윤 대통령의 발언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경제 유튜버 전석재 대표(슈카월드)과 윤 대통령의 질의응답이 이뤄진 2024년 1월 10일 민생토론회로 가보자.
슈카: "기업들이 대주주를 위한 결정을 내리면서 소액주주의 손실을 감수하도록 하는 결정을 내리곤 했다. 제도적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배경인 거버넌스(기업 지배구조) 문제를 해결해달라."
윤 대통령: "소액주주는 회사의 주식이 제대로 평가를 받아서 주가가 올라야 자산을 형성할 수 있는데, 대주주 입장에서 주가가 너무 올라가면 상속세를 어마어마하게 물어야 한다. 할증세까지 있어서 재벌기업, 대기업이 아니더라도 상장한 어지간한 기업들도 주가가 오르면 가업 승계가 불가능해진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해법이 상속세 최고세율 인하라면, 최대주주의 상속세를 내려줬을 때 어떤 경로를 거쳐서 증시 활황으로 이어지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누구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무도 알 수 없는 기괴한 논리기 때문이다. 잘못 나온 말이라면 바로잡았어야 하는데, 다들 잘못된 말이라도 받들려고만 했다.
■ 이슈① 최고세율 인하 집착=기획재정부가 오랜 기간 준비한 대로 상속세를 유산취득세로 전환하겠다는 기존 입장에서 선회해 최고세율 인하에만 매달린 것도 이때부터다. 결국 기재부가 마련한 정부 세법개정안 중에서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만 지난해 말 국회에서 부결됐다.
상속세 개편의 명분은 국민들의 세 부담을 덜어주자는 것이었다. 1990년대 물가와 경제력을 반영한 상속세 공제 기준이 지금과 맞지 않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었다. 상속재산 전체에 먼저 과세하고, 이를 자녀들이 나눠서 납부하는 지금의 방식보다 상속인이 각각 물려받은 재산을 기준으로 과세하는 유산취득세가 여러 면에서 낫다. 무엇보다 국민 세 부담을 줄여준다면, 그 대상은 공제 기준의 확대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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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 기획재정부, 사진 |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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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② 우수한 한국의 상속세제=이런 상황에서 기재부가 가업상속공제 한도를 최대 1200억원으로 확대하려는 것도 오히려 상속세의 취지를 훼손하는 일이다. 우리나라 대법원은 2022년 양도소득세 관련 판결에서 "상속세의 법적 존재 이유는 부의 영원한 세습과 집중을 완화해 국민의 경제적 균등을 도모하는 것"이라고 1997년 판결 내용을 재확인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2018년 4월 'OECD 국가들의 순자산 과세의 역할과 설계'라는 보고서에서 "상속·증여·양도소득세 3법이 잘 정비된 국가라면 부유세가 특별히 필요하지 않다"며 이 3법의 재분배 역할에 초점을 맞췄다.
LSE 보고서는 한국이 2019~2020년 모든 상속 재산의 4%를 세금으로 징수하면서 상속 재산이 많을수록 실효세율이 높아지는 점이 영국과 달리 혁신적으로 우수하다고 봤다. 이 기간 한국에서 상속 재산이 600만~3000만 파운드면 실효세율이 33%지만, 3000만 파운드를 초과하면 실효세율이 44%로 올라갔다. 노르웨이처럼 상속세를 모두 면제해주되 상속 재산에서 발생한 모든 이익에 고율의 양도소득세를 부과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 이슈③ 한국판 주술경제=최대주주 상속세를 깎아주면, 주가가 오르므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할 수 있다는 윤 대통령의 논리는 낙수효과와 맞닿아 있다. 낙수효과는 대기업들에 세금을 깎아주면 그만큼 투자를 더 하고, 그 결과 국가 경제가 성장한다는 주장이지만, 어떤 경제학자도 낙수효과를 진지하게 연구하거나 증명하지 못했다. 근거 없는 정치적 슬로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은 낙수효과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대기업의 최대주주 세금을 깎아주면 증시가 살아난다고 주장했다. 이는 1980년대 미국에서 있었던 주술경제(Voodoo Economics)를 연상시킨다.
아버지 조지 부시 대통령의 대변인을 지낸 피터 틸리가 만든 이 말은 "세율을 내려도 세수는 늘어나고, 예산은 균형을 잡을 수 있다"는 레이거노믹스를 '주술에 가깝다'면서 비판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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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LSE는 지난해 “영국 집권 노동당이 한국의 혁신적인 상속세제를 필수적으로 연구해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공개했다. [사진 |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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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틸리의 충고대로 조지 부시는 공화당 대선 경선에서 경쟁자인 로널드 레이건의 공급측경제학(supply-side economics)을 주술경제라고 비판했다. [※참고: 세율를 인하해 근로자의 노동 공급을 늘리고 기업의 투자 확대를 유도해 경제 전체의 총공급을 늘리려는 경제정책을 '공급측 경제학이라고 한다.]
윤석열 정부의 주술경제는 여기서도 한걸음 더 나아갔다. 2023년 상위 10대 기업의 세금 감면액은 3년 동안 3.8배 증가한 10조원4000억원이었다(나라살림연구소). 그 결과는 피터 틸리가 비판한 것처럼 형편없다.
우리나라의 2023년 국세 수입은 2022년보다 76조9000억원 줄어든 497조원에 불과했다. 부의 재분배 역할을 하는 양도소득세가 전년보다 45.5% 줄었고, 역시 재분배 역할을 하는 종합부동산세가 32.4% 감소했다. 2023년 상속 및 증여세만 전년보다 0.3% 늘었는데, 결국 유일하게 세수가 늘어난 이 부분만 감세하겠다는 게 윤 정부의 주장이다.
앞서 언급한 대법원 판결문에 빗대 보면 윤석열 정부는 '부의 집중을 완화하거나 국민의 경제적 균등을 도모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상속세 논쟁에 앞서 잘못된 주장들부터 바로잡아야하는 이유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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