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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7 (목)

동성 부부 첫 ‘혼인평등 헌법소원’…호주제 폐지처럼 평등의 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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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혼인평등 헌법소원 기자회견이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려 참석자들이 현행 법의 동성결혼 불인정이 위헌이라고 외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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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살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됐고 운이 좋게도 24년이라는 시간을 서로 사랑하고 돌보며 함께 살아오고 있습니다. (…) 이미 가족을 포함해서 우리를 아는 모든 사람은 우리를 부부로 인정하고 있으며 법의 영역을 제외하고는 모든 영역에서 부부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천정남(54)씨가 한 말의 일부다. 정남씨는 동성 배우자 류경상(가명·56)씨와의 결혼을 법적으로 인정받고자 ‘혼인평등 소송’에 참여한 당사자다. 이 자리에서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과 혼인평등연대가 함께 꾸린 동성혼 법제화 캠페인 조직 ‘모두의 결혼’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는 기자회견을 열고 혼인평등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한다고 밝혔다. 한국에서 동성혼 법제화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구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정남씨를 비롯한 이들이 직접 헌법소원심판 제기에 나서는 이유는 천정남·류경상(가명) 부부, 김은재(가명)·최수현(가명) 부부가 서울북부지방법원에 제기한 위헌법률심판제청이 지난달 13일 기각됐기 때문이다. 2022년 3월부터 동성 부부도 구청에 혼인신고 ‘접수’까지는 가능하지만, ‘현행법상 수리할 수 없는 동성 간의 혼인’이라는 이유로 최종 처리되지 않는다. 이에 천정남·류경상(가명) 부부, 김은재(가명)·최수현(가명) 부부는 지난해 10월 서울북부지법에 구청의 혼인신고 불수리처분 불복 신청을 접수하는 동시에, 이성 부부 혼인만 인정하는 현행 민법 해석의 위헌성을 따져달라는 위헌법률심판제청도 함께 제기했다.



서울북부지법은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모두의 결혼’ 쪽은 “서울북부지법이 청구인들의 삶의 실질이나 결혼의 현재적 의미를 고려하지 않고 현행 민법이 동성 부부의 헌법상 평등권과 혼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았다고 판단한 점이 유감스럽다”며 “재판부가 (혼인신고 불수리처분) 불복신청 뒤 3개월 남짓한 시점에 기일 진행도 없이 사건을 각하함으로 인해 자신의 삶을 걸고 절박하게 관계의 인정을 구한 당사자들이 법 앞에 말할 기회조차 박탈당했다는 사실 역시도 매우 유감스럽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날 연대발언에 나선 윤복남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회장도 “서울북부지법은 ‘헌법과 법률이 인정해온 혼인의 개념을 해체하면서까지 동성 간 법률혼을 인정할 당위성이 없다. 따라서 기본권 침해와 자의적 차별이 아니다’라며 기각 이유를 밝혔는데, 인권의 최후의 보루로 작용해야 하는 사법부가 평면적·기계적 판단으로 성소수자 차별에 일조했다는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헌법소원 청구인을 대표해 이 자리에 나선 천정남씨는 “법적으로 배우자나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서로의 보호자나 가족임을 증명해야 하는 자리에서 번번히 좌절하고 있다. 이대로 간다면 앞으로 다가오게 될 죽음의 순간에서도 우리는 서로의 장례조차 치를 수 없다”며 “엄연히 존재하지만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고 법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성소수자 부부들도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해주시기를 간곡히 바란다”고 말했다.



한겨레

혼인평등 헌법소원 기자회견을 마친 조숙현 혼인평등소송 대리인단장(왼쪽)과 헌법소원 청구 당사자인 천정남씨가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민원실에 헌법소원심판 청구서를 제출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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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평등소송 대리인단장을 맡은 조숙현 변호사는 “동성혼 법제화에 찬성하거나 동성부부의 동등한 권리를 지지한다는 응답이 40~47%에 이를 정도로 동성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크게 달라졌다”며 “동성혼 불인정은 인권의 문제뿐 아니라 한국의 국제적 위상, 경제적 경쟁력 등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사회·경제적 이슈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 장박가람 캠페인본부장도 최근 동성혼을 법제화한 태국, 동성혼 법제화에 힘을 싣는 법원 결정이 나온 네팔, 일본의 사례 등을 소개하며 “동성 부부의 혼인평등권을 보장하는 것은 한국 사회의 인권과 민주주의 발전에 있어 중대한 시험대”라고 말했다.



이날 김민문정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는 연대발언에서 혼인평등 소송이 과거 호주제 폐지 운동처럼 가족 관련 법을 한층 평등하게 하려는 실천임을 강조했다. 김 상임대표는 “(호주제가 존재하던 때) 갑자기 남편을 잃은 여성 사업가가 호주가 된 3살짜리 아들의 동의 문제로 여권 발급과 해외 출장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고, 갓난아이를 데리고 재혼한 가족이 새아버지 성으로 변경하려고 사망신고 뒤 다시 출생신고를 하는 등 무수한 피해를 양산했다. 여성운동은 성차별적이고 인권침해적인 법과 제도를 바꾸기 위해 호주제 폐지 운동을 전개했다”며 “누구와 사랑을 나누고 가족을 꾸려 자신의 삶을 영위해나갈지 결정하는 것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 시민 개인들의 몫이고 그를 보장하고 지원할 책임은 국가에 있다. 단지 성별이 같다는 이유로 그 권리가 법과 제도에 의해 침해될 수 없으며 이는 여성운동이 호주제 폐지 운동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그리고 마침내 얻어낸 헌법적 가치와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이번 헌법소원 심판 청구는 지난해 10월 천정남·류경상(가명) 부부, 김은재(가명)·최수현(가명) 부부를 포함한 동성 부부 11쌍이 서울북부지법 등 전국 6개 법원에 혼인신고불수리 불복 소송과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제기하는 집단 ‘혼인평등 소송’에 나선다고 밝힌 것과 관련한 후속 행동이다. 서울북부지법을 제외한 다른 법원 판단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모두의 결혼 쪽은 “우리는 현재 (서울북부지법을 뺀 나머지) 5개 법원에서 진행 중인 9쌍의 동성 부부 사건에 대해 이들의 삶의 존엄에 합당한 진지하고 실질적인 심리와 정의로운 판단을 요구한다”고 했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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