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관세폭탄·방위비 청구서' 압박에 日 투자 화답
다음주 상호관세 관련 기자회견 예고…한국도 사정권
韓 소통 부재…북한 비핵화·다자협의 재확인은 유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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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일(현지시각)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AP=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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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7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에서 1조달러(약 1456조원) 대미투자를 포함해 미국산 LNG(액화천연가스) 수입 확대, 상호 관세 설정, 방위비 2배 증액, 일본제철의 인수가 불허된 US스틸에 대한 투자 등 선물보따리를 안겼다. 미일동맹의 황금시대를 구축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며 트럼프 행정부에 전방위적인 러브콜을 보냈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안보 억제력 제공 등 기존 미일 동맹을 재확인하며 사실상 립서비스로 대응하는 데 그쳤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3주차를 맞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 이어 두 번째로 정상회담을 한 일본과 달리 가뜩이나 비상계엄과 탄핵 사태에 두 달 넘게 발이 묶여 대미 외교 공백이 커진 한국 입장에서는 선택지가 더 줄어들 수밖에 없게 됐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번 미일 정상회담은 트럼프 대통령이 2기 집권 이후 두 번째로 만나는 해외 정상이라는 점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양자 외교에서 우방국을 어떻게 다룰지를 가늠할 시험대로 거론됐다. 특히 일본은 북한 비핵화와 미국의 중국 견제 정책, 미군 주둔 관련 방위비 협상 등 동북아 현안을 공유하고 있어 한국 정부에 일종의 '모의고사'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실제로 이날 회담에서는 일본의 방위비 증액 등 동북아 안보 문제에서 일본의 역할을 확대하고 북한 핵 문제에 공동 협력하는 방안 등 한국 정부에도 민감한 논의가 대거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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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위비 논의 '산 넘어 산'…"이시바 나쁜 선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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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이와 정상회담 후 진행한 공동 기자회견에서 만족스러운 듯한 웃음을 짓고 있다. /로이터=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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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2027년까지 방위비를 트럼프 1기 때와 비교해 2배로 늘리기로 하면서 향후 한미 협상 테이블에서도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논의가 '핫이슈'로 떠오를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과의 합의 등을 바탕으로 지난해 조 바이든 정부에서 타결된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정을 뒤집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2026∼2030년 한국이 낼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정하는 12차 방위비분담특별협정이 지난해 11월 발효됐지만 국회 비준을 거치는 한국과 달리 행정협정에 불과한 미국에선 대통령 의지로 협정을 뒤집을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대선 기간부터 한국을 '머니머신'(현금인출기)로 지칭하면서 한국이 주한미군 방위비로 연간 100억달러(약 14조5000억원)를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20일 취임 당일 해외 주둔 장병과 첫 소통을 하면서 평택 주한미군을 선택한 것을 두고도 상징적 의미가 크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시바 총리가 이날 회견에서 "방위비 지출 증가는 미국이 그렇게 하라고 한 게 아니라 일본의 자체적인 결정"이라며 저자세를 보인 것 역시 향후 한미간 방위비 협상에서 '나쁜 선례'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 1기 때부터 최근까지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등 동맹국을 상대로 방위비 인상을 계속 압박해 온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일본의 GDP(국내총생산) 대비 방위 관련 예산은 2024회계연도 기준으로 1.6%다. 이시바 총리는 방위비 예산을 2027년 GDP 대비 2% 수준으로 올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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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투자·수입 확대… 트럼프 뜻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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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진행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함께 찍은 사진에 사인을 한 뒤 선물하고 있다. /AFPBBNews=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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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바 총리는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적자 해소 압박에 대한 선제 조치로 1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와 미국산 LNG 수입 확대, 상호 관세 설정 등 유화책도 쏟아냈다. 2023년 기준 7833억달러 규모(1165조원)의 대미 투자액을 25%가량 늘리겠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이와 관련, "미국이 일본과의 교역에서 1000억달러(약 146조원)가 넘는 무역적자를 기록하고 있다"며 "이런 문제를 신속하게 해결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일본에 관세를 부과하느냐'는 질문에 "대부분 상호 관세가 될 것"이라며 오는 10일 또는 11일 관련 회의를 하고 기자회견 등을 통해 다수 국가에 대한 상호 관세 부과 계획을 발표하게 될 것이라고 답했다.
이시바 총리가 '미국이 일본에 관세를 부과할 경우 보복하겠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가정적인 질문에는 답할 수 없다는 게 우리 정부의 공식 입장"이라고 말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웃으며 "매우 좋은 답변"이라며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고 호응하는 장면도 포착됐다.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2024년 미국의 무역적자는 9184억달러로 전년보다 17%(1335억달러) 늘면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교역 국가별로 중국과의 무역에서 적자 폭이 2954억달러로 가장 컸고 일본과의 무역적자는 685억달러로 8번째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실제보다 많은 1000억달러 이상을 언급하며 양국 간 무역 불균형을 강조한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기간부터 강조했던 무역적자 해소와 관련해 일본이 선제 조치에 나서면서 한국도 막다른 길에 내몰리게 됐다. 미국이 한국과 무역에서 기록한 적자는 2024년 660억달러로 일본에 이어 9번째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상호 관세는 상대국이 부과하는 관세율 수준에 맞춰 그 나라 상품에 동일하거나 유사한 수준의 관세를 매기는 조치다.
이날 회담에서는 일본 철강기업 일본제철의 미국 철강업체 US스틸 인수 문제를 두고도 트럼프 대통령의 뜻이 대체로 관철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제철이 US스틸을 소유하는 대신 US스틸에 대규모 투자를 하기로 했다며 자신이 다음 주 일본제철 측을 만나 협상을 중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일본제철이 인수를 시도했지만 철강노조와 중서부 노동자 표심을 의식한 미 정치권의 반대로 막힌 US스틸 문제에서 일본이 사실상 트럼프 대통령의 해법을 고스란히 수용한 모양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일 기업의 알래스카주 송유관 합작 투자 계획 등 미국산 LNG 수출 확대를 대대적인 성과로 내세운 데 대해서도 이시바 총리는 LNG뿐 아니라 바이오에탄올과 암모니아 등 다른 자원도 미국에서 수입할 의향이 있다고 호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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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세 외교 '트럼프 코드 맞추기'…"한국 선택지 더 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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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8년 6월12일 싱가포르 센토사 섬 내 카펠라 호텔에서 합의문에 서명한 후 웃고 있다. /AP=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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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언론에서는 "이시바 총리가 이날 정상회담 내내 트럼프 대통령의 가려운 부위를 긁어줬다"고 평가했다. 이시바 총리는 회담 합의사항 외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7월 암살 시도에도 굴하지 않는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고 총에 맞은 뒤 일어나 하늘 높이 주먹을 치켜든 것을 기억한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명을 위해 당신을 구원하셨다고 느꼈을 거라는 걸 깨달았다" 등 트럼프 대통령에게 호의적인 말을 쏟아냈다.
사실상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으로 대미 수입을 늘리기로 한 데 대해서도 오히려 바이든 전 행정부가 LNG 해외 수출을 하지 않은 것을 문제 삼으며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첫날부터 즉각 수출을 허용해준 것은 일본에 정말 좋은 소식이고 일본은 미국과의 무역적자 개선에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20일 취임 첫날 북한을 "핵능력 보유국(nuclear power)"이라고 언급하면서 비핵화 협상 대신 제재 완화를 대가로 핵군축에 나서는 '스몰딜' 카드를 집어들 것이란 관측이 나왔던 것과 달리 이날 회담에서 일단 '완전한 비핵화' 기조가 다시 확인된 것은 그나마 한국 입장에서 유의미한 지점으로 꼽힌다.
트럼프 행정부 고위 당국자는 이와 관련, 미일 정상회담 사전 브리핑에서 "앞서 나가진 않을 것"이라며 "그 문제(북한 비핵화)에서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면서 일본과 한국 등 파트너들과 계속 보조를 맞출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 문제에서 한국이나 일본 등 동북아 역내 동맹국과 조율을 생략하는 등의 '과속'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스라엘·일본과 정상회담 후 오는 11일 요르단 압둘라 2세 국왕, 오는 13일 인도 나렌드라 모디 총리와 정상회담을 이어간다. 정부는 최 권한대행과 트럼프 대통령의 통화를 우선순위에 두고 소통 채널을 최대한 가동하고 있지만 확답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 외교장관 회담 조율도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외교부는 다음 주 초 조태열 장관 방미를 염두에 두고 회담 준비를 마쳤지만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 일정 문제로 여의치 않자 14∼16일 열리는 뮌헨안보회의에서 만남을 조율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 소식통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 대선 이후 이미 윤석열 대통령과 통화한 상황에서 권한대행의 대행과의 소통에 우선 순위를 두고 있지 않은 상황"이라며 "대미 투자와 무역정책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 기업들도 난감해하는 기류"라고 전했다.
심재현 기자 urme@mt.co.kr 정혜인 기자 chimt@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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