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왕고래 시작과 끝 모두 정치적 판단에 의한 것
'경제성 없다'는 결론 이후에도 정쟁 지속
석유탐사는 자원 안보 측면에서 필요…정치적 개입이 자원개발 중요성도 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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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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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유·천연가스 140억 배럴 매장 가능성이 제기됐던 대왕고래 프로젝트 발표 시작과 끝 모두 정무적이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발단은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 후 첫 국정브리핑에서 시작됐다. 지난해 6월 3일 예고에 없던 브리핑을 급하게 진행하면서 "140억 배럴 정도의 막대한 양이 매장돼 있을 가능성"을 밝혔다. 이 자리에 배석한 산업통상자원부장관 역시 삼성전자 시총의 5배를 언급하며 분위기를 띄웠다.
대통령이 직접 발표한 것을 두고 여러 해석이 나왔다. 대통령이 국정현안에 대해 직접 브리핑에 나섰다는 것 자체가 흔한 일이 아닌 만큼, 매우 신뢰할 만한 내용이라는 시그널이기도 했다. '자원빈국'의 설움을 오랜 기간 겪어왔던 터라 기대감도 컸다. 기대는 주가에도 반영 돼 며칠 간 석유, 가스 관련 기업들의 주가는 연일 상한가를 기록했다.
하지만 뜬금없이 이뤄진 발표를 놓고 '국면 전환용'이라는 지적도 쏟아졌다. 4월 총선 패배 이후 떨어진 국정 지지율을 만회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대통령의 발표 방식을 두고도 말이 많았다. 정부 발표 당시 20%의 확률이라고 밝힌 것처럼 실패 확률이 더 높은데 파보기도 전에 헛된 희망을 갖게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실제 과거 전례들을 보면 지난 2005년 동해 석유·가스층 발견 당시에는 석유공사 차원의 보도자료가 전부였다. 발표 시점도 시추가 이뤄진 뒤였다. 이에 앞서 1998년 동해 가스전에서 양질의 가스층이 발견됐을 때 김대중 전 대통령은 나서지 않았고 이후 한 참 뒤인 2002년 동해 가스전의 생산시설 기공식이 열릴 때 참석해 힘을 실어주는 정도였다.
익명의 한 학계 관계자는 "10단계의 과정이 있다면 이제 1단계만 거친 상황인데 불확실성을 그대로 껴안은 상황에서 발표를 하는 건 다른 어떤 나라나 기업에서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만큼 무르익지 않은 설 익은 발표였다는 걸 꼬집은 것이다.
6일 산업부의 발표도 뭔가 석연치는 않다.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산업부는 최종 결과가 8월에 나온다는 점을 계속 강조했다. 1차 시추 결과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만큼 신중을 기하는 모습이었다. 지난 4일 1차 시추 작업이 마무리 됐고 이제 검증과 분석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1차 시추작업이 끝나자마자 '경제성이 없다'고 단호하게 선을 긋는 태도가 오히려 의아하다. 6개 유망구조에 대해 해외투자 유치를 통해 계속 시추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이지만 공개적으로 대왕고래 유망구조가 경제성이 없다고 밝힌 건 오히려 투자기업과의 협상을 불리하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왕고래 유망구조의 경제성이 없고, 이후 대왕고래 유망구조에 대한 추가 시추는 없다는 발표를 하며 1차 발표(2024년 6월 3일 윤석열 대통령 발표) 당시 '정무적 개입'을 언급하며 사과한 것도 이례적이다. 만약 12.3 내란 사태가 없었고, 윤석열 대통령이 직무수행을 계속 하고 있었다면 '이런 발표가 이렇게 빨리 나올 수 있었을까'라는 의문도 갖게 된다.
정책이 한없이 가벼울 수 있다는 인상을 국민에 심어줬다는 점도 걱정스럽다. 정부는 의도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정권에 따라 혹은 정치적 분위기에 따라 얼마든지 뒤집어 질 수 있다는 걸 경험적으로 확인 시켜준 건 아닐까.
자원업계 관계자들은 지금의 상황을 크게 우려 한다. 이들은 대통령의 성급한 발표에 대해 비판은 하면서도 20%의 가능성이라면 "시추는 계속 해야 한다"는 일관된 입장이다. 실제로 한국석유공사는 대통령 발표와 무관하게 동해심해가스전 개발 사업을 계속 진행해왔다. 오히려 대통령 발표로 주목도가 높아지고 야당의 공세가 이어지면서 예산이 전액 깎이는 고충을 겪고 있다.
정권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그만큼 에너지 안보나 자원 확보라는 대의를 생각하면 경제성과 확률만 가지고 판단할 수 없는 사안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비록 대왕고래의 경제성이 없다는 판단이 나왔더라도 자원개발, 석유탐사 중요성이 평가절하 돼서는 안될 것이다.
8개월간 정치권의 몰매와 찬사를 동시에 받아 온 대왕고래를 이제는 보내줘야 한다. 정무적 판단에 의해 불려나왔던 대왕고래는 다시 정무적 판단에 의해 떠나 보내야 하는 상황이 됐지만, 이번 일을 통해 자원개발에는 정치가 개입되면 안된다는 메시지는 제대로 심어준 계기가 됐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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