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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원작 뮤지컬 ‘웃는 남자’ ‘베르테르’ 묵직한 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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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원작 뮤지컬 ‘웃는 남자’ ‘베르테르’ 묵직한 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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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웃는 남자’. 이엠케이(EMK) 뮤지컬컴퍼니 제공

뮤지컬 ‘웃는 남자’. 이엠케이(EMK) 뮤지컬컴퍼니 제공


고전은 시대를 초월한 생명력을 갖는다. ‘클래식’의 사전적 의미에는 ‘전범’이라는 뜻도 있다. 수백년 전 작품이지만 현시대를 꿰뚫는 통찰력을 보여주기 때문에 사람들은 계속해서 고전을 소환한다. 지금 한국 뮤지컬계에선 대문호의 고전을 원작으로 한 창작 뮤지컬이 호평 속에 공연 중이다. 빅토르 위고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웃는 남자’와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각색한 ‘베르테르’다.



지난 9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개막한 ‘웃는 남자’(3월9일까지)의 원작은 빅토르 위고가 자신의 작품 가운데 가장 걸작으로 자평한 소설로 알려져 있다. 뮤지컬은 17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빈부 격차에 따른 사회 양극화를 신랄하게 꼬집은 원작의 정신을 충분히 살렸다.



주인공 그윈플렌은, 아이들을 납치해 신체를 끔찍하게 훼손한 뒤 노리갯감으로 만든 실존 범죄집단 콤프라치코스에 의해 납치돼 늘 웃고 있는 흉측한 얼굴을 갖고 있다. ‘배트맨’ 시리즈의 악당 조커가 그윈플렌 캐릭터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그윈플렌 역에 박은태·이석훈·규현·도영이 캐스팅됐는데, 특히 아이돌 그룹 엔시티(NCT) 도영의 합류로 글로벌 팬까지 공연장으로 몰려들고 있다.



뮤지컬 ‘웃는 남자’. 이엠케이(EMK) 뮤지컬컴퍼니 제공

뮤지컬 ‘웃는 남자’. 이엠케이(EMK) 뮤지컬컴퍼니 제공


뮤지컬은 그윈플렌이 우연히 귀족이 되면서 겪는 갈등과 사랑을 그린다. “부자들의 낙원은 가난한 자들의 지옥으로 세워진 것이다” “가난한 자의 이야기는 부자들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가난한 자들은 부자들의 노리개일 뿐” 같은 대사가 여러차례 등장하면서 주제의식을 대변한다. 대본과 연출을 맡은 로버트 요한슨은 “비행기 안에서 프랑스 영화 ‘웃는 남자’를 보면서 훌륭한 뮤지컬이 될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며 “오늘날처럼 물질적 욕망과 권력에 대한 탐욕이 강하게 존재하는 세상에서 적합한 메시지를 전달할 것으로 믿는다”고 전했다.



묵직한 주제도 인상적이지만 눈이 휘둥그레지는 무대 미술로도 이미 정평이 나있다. 그윈플렌이 난파선에서 조난 당하는 도입부 무대부터 스펙터클한 연출이 이어진다. 천둥 번개가 치는 가운데 파도에 배가 출렁이는 장면이 ‘뮤지컬 무대가 맞나’란 생각이 들 정도로 사실적이다. 그윈플렌이 의회에서 귀족들의 위선을 일갈하는 클라이맥스 장면에서 인간의 착시를 활용해 입체감을 살린 의사당 세트 디자인은 오랜 잔상을 남긴다. 5년간 175억원의 제작비를 들여 개발한 흔적이 역력하다. 2018년 초연 뒤 이번이 4연째로, 객석 점유율 92%라는 흥행 기록을 써오고 있다. 2019년 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일본에 수출하기도 했다.



뮤지컬 ‘베르테르’. 씨제이이엔엠(CJ ENM) 제공

뮤지컬 ‘베르테르’. 씨제이이엔엠(CJ ENM) 제공


17일 서울 구로구 디큐브 링크아트센터에서 시작한 ‘베르테르’(3월16일까지)는 올해 25주년을 맞은 대표적인 한국 창작 뮤지컬이다. 괴테의 원작처럼 눈물을 쏙 빼는 비극적 서사다. ‘웃는 남자’가 스펙터클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작품이라면 ‘베르테르’는 화려한 무대나 노래, 춤보다 배우들의 연기에 집중한다. 무대 디자인도 연극처럼 상징적이다. 클래식을 전공한 정민선 작곡가의 넘버들은 친근한 멜로디가 인상적이다. 배우들의 열연과 편안한 노래들이 25년 동안 공연을 이어올 수 있었던 비결이다. 베르테르 역에 엄기준∙양요섭∙김민석, 롯데 역에 전미도∙이지혜∙류인아가 캐스팅됐다. 엄기준은 이번이 7번째 베르테르 배역이고, 전미도는 10년 만의 롯데 배역 복귀작이다.



뮤지컬 ‘베르테르’. 씨제이이엔엠(CJ ENM) 제공

뮤지컬 ‘베르테르’. 씨제이이엔엠(CJ ENM) 제공


원작처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고뇌하는 베르테르와 롯데의 연기가 일품이다. 원작 결말의 베르테르의 비극적 선택은 당시 유럽에서 ‘베르테르 효과’라는 모방 현상까지 발생시킬 정도로 파급력이 컸다. 뮤지컬에서도 순수하지만 때론 막무가내로 사랑을 향해 돌진하는 청년 베르테르의 연기가 마음을 울린다. 극본을 쓴 고선웅 작가는 “21세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베르테르는 납득이 안 되는 친구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에게 엄격했고, 도덕과 욕망 사이에서 갈등한다”며 “젊은 베르테르가 불행한 선택을 하게 된, 떨쳐내지지 않는 번민에 관한 이야기”라고 밝혔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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