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3차 변론기일에 출석해 차기환 변호사와 대화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일부에서 ‘그럼 이 내란 세력을 사면할 거냐’ 이런 이야기들을 벌써부터 하던데, 명백한 위법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히 필요하지요. 그런 것까지 어떻게. 그건 부정의 아니겠습니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23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정치 보복은 있어서는 안된다”면서도 내란세력 사면에 대해서는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정치 보복에 선을 그으면서도 윤석열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관련자들이 유죄 판결을 받을 경우 차기 정부가 사면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이후 국회에 발의된 사면법 개정안은 총 12건이다. 이들 법안 대부분은 형법상 내란죄 및 외환죄 등을 범한 경우 사면을 금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내란 우두머리(수괴) 혐의 피의자인 윤 대통령이 유죄 판결을 받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발의한 법안들이다.
‘수감→사면’ 반복한 역대 대통령들
사면권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으로 헌법과 사면법에 근거한다. 일반사면과 달리 국회의 동의가 필요하지 않은 특별사면은 역대 정부에서 ‘국민 통합’ 등을 명분으로 행사돼 왔다. 진보·보수 진영을 가리지 않고 역대 대통령들은 상대 진영의 주요 인사에 대한 특별사면을 단행하며 대통령 측근, 재벌 등 경제인도 함께 사면하는 패턴을 보였다. 여론과 동떨어지는 사면이 이어지면서 사면권이 오·남용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대표적인 예가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전두환씨와 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이다. 반란수괴, 내란수괴, 내란목적살인 등 혐의로 기소된 전씨는 1997년 4월 대법원에서 무기징역과 추징금 2205억원을 선고받았다. 노씨는 징역 17년에 추징금 2628억원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이들은 판결 8개월 만인 같은 해 12월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특별사면하면서 풀려났다. 명분은 “국민 대통합”이었다. 김 전 대통령은 당시 김대중 대통령 당선인과의 합의에 따라 이들을 사면·복권했다.
사과 없는 사면은 국민 통합과는 거리가 멀다는 비판이 나온다. 1979년 12·12 군사 쿠데타로 집권하고 이듬해 일어난 5·18 민주화운동을 무력 진압하고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민간인 학살을 주도한 전씨는 사면 후에도 5·18 관련성을 부인하고 희생자와 유가족들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그는 2021년 11월23일 사망하기까지 추징금 956억원을 미납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국정농단으로 징역 22년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던 박근혜 전 대통령을 대선을 앞둔 지난 2021년 특별사면했다. 박 전 대통령은 형기를 17년3개월 남기고 사면·복권됐다. 대선 후보 때부터 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 필요성을 언급한 윤 대통령은 2022년 12월 신년 특별사면으로 이 전 대통령을 사면·복권했다. ‘다스 비자금’ 사건으로 징역 17년을 확정받은 이 전 대통령은 약 15년 남은 형기를 면제받았다.
전직 대통령 전두환(오른쪽)·노태우씨가 1996년 8월26일 당시 서울지방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12·12 및 5·18 사건에 대한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해 피고인석에 나란히 서 있다. 자료사진 |
‘내란죄’는 사면 예외?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윤 대통령이 형사재판 최종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을 경우에도 사면 가능성은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야권에서 내란죄를 사면 대상에서 제외하는 법안을 발의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내란죄를 사면 대상에서 예외로 둘 수 있는지를 두고는 의견이 분분하다. 12·3 비상계엄과 같은 사태의 재발을 방지하는 ‘공익상 필요’가 인정돼 법 개정에 무리가 없다는 분석이 있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과거 대통령들의 사면권 행사가 측근이나 재벌 등에게 면죄부를 주는 식으로 오·남용돼 왔다는 국민의 공감대가 구성된 만큼 (사면권을) 제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임 교수는 특정인을 겨냥한 처분적 법률이라는 지적이 제기될 수 있는 데 대해 “위헌·위법한 계엄 선포로 인한 내란범죄가 재발하지 않도록 이번 내란의 범죄자들을 사면 대상에서 차별하는 것이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본다면 합헌일 수 있다”라고 했다.
반면 사면권은 대통령 고유의 권한으로 존중돼야 하며, 야당 안대로 개정되더라도 사면의 ‘국민 통합’ 기능을 무시할 수 없다는 현실론도 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사면권은 헌법에 따른 권한이기 때문에 손대면 또 다른 갈등을 낳을 수 있다. 국가 경영의 차원에서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막상 이재명 대표가 대통령이 되면 사회 통합을 위해 (사면 여부를) 고민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그는 “(사면으로) 국민을 통합했다면 (전두환씨가) 반성하고 재산도 환수하고, (12·3 비상계엄으로) 군대가 동원되는 일도 없어야 했는데 그렇지 않다”라며 사면권은 신중히 행사돼야 한다고 했다.
민주당은 사면법 개정안의 당론 채택 여부를 고심 중이다. 윤 대통령에 대한 형사재판 진행 상황을 주시하며 법 개정에 힘을 실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민주당 법사위 소속의 한 의원은 통화에서 “설 인사차 시장을 돌고 있는데 시민들이 (내란범들을) ‘절대 사면해 주면 안 된다’고 많이 이야기한다”라며 법 개정 의지를 내비쳤다. 민주당 법률위 관계자도 “윤 대통령에게 (사면법 개정안이) 적용되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극악한 내란범죄를 저지르고도 향후 정권이 바뀌어 다시 무분별하게 사면·복권·감형해서 버젓이 대한민국을 활보하고 다니는 상황이 다른 권력자들에게 어떤 시그널(신호)을 주겠는가”라고 지적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3일 국회에서 신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
사면권 견제 장치, 폭넓게 논의될까
12·3 비상계엄 사태가 촉발한 사면법 개정 논의가 사면권 오·남용 견제 논의로 이어질지도 관심사다. 특별사면·복권의 대상이나 요건에 관한 규정은 현재 없다.
대통령의 특별사면권에 대한 견제 장치는 2007년 사면법 개정에 따라 법무부에 설치한 사면심사위원회가 유일하다. 사면법은 법무부 장관이 특별사면, 감형 및 복권을 상신할 때 위원회 심사를 거치도록 한다. 심사위는 위원장인 법무부 장관을 포함해 9명의 위원(4명 이상 비공무원)으로 구성된다. 하지만 심사위의 결정은 구속력이 없어 사실상 대통령의 의중이 강하게 작용하는 구조다. 사면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이 확산해도 심사위 회의록은 5년이 지나야 공개돼 일반시민들로선 어떤 논의가 있었는지 알 길이 없다. 심사 내용의 공개 범위도 위원회가 자체 의결하게 돼 있다.
12·3 비상계엄 사태 전 22대 국회에서 발의된 사면법 개정안은 2건으로, 국회가 특별사면 과정에 개입할 여지를 열어두고 사면 대상에서 특정 인물이나 범죄를 제한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박주민 민주당 의원 안은 특별사면 14일 전에 국회에 보고하도록 하고, 사면심사위를 대통령 소속으로 하며 위원 일부를 국회와 대법원장이 선출 또는 지명하도록 했다. 특사 대상에서 대통령과 친족관계에 있거나 대통령이 임명 또는 지명한 정무직 공무원이었던 사람을 제외하도록 했다.
최민희 민주당 의원 안은 탄핵으로 파면된 자, 헌정질서 파괴 범죄를 저지른 자, 대통령의 배우자 등에 대해 특별사면을 할 경우 일반사면과 마찬가지로 국회 동의를 받도록 했다. 일반사면은 1996년 이후 실시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특별사면은 ‘형을 선고받은 자’를 대상으로 하지만, 일반사면은 ‘죄를 범한 자’로 규정한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지난 2015년 발간한 <특별사면권의 남용 문제와 개선 방안> 보고서에서 사면권 제한·견제 장치로 일정 형기 미경과자는 특별사면 대상에서 제외하는 안, 특별사면이 재판 결과를 변경하는 효력을 갖는 만큼 대법원장 및 범죄 피해자 등 사건 관계인의 의견 청취를 의무화하는 안 등을 제시했다. 국회에 보고하는 절차 등 통제 절차를 마련하고, 사면심사위의 비공무원 위원에 법조계 종사자뿐 아니라 사회 각 분야의 의견을 대표할 수 있는 자를 포함해야 한다는 제언도 내놨다. 회의록을 즉시 공개해 회의의 투명성과 객관성을 담보하는 안도 언급됐다.
박하얀 기자 whit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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