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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9 (수)

이슈 증시와 세계경제

한국 증시가 가서는 안 될 ‘용팔이’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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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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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팔이’라는 표현이 있다. 용산전자상가 내 악질 전자 기기 판매업자의 멸칭으로, 온라인에서는 정보 비대칭성을 이용해 선량한 구매자에게 폭리를 취하는 업자를 지칭하는 표현으로 흔히 쓰인다. 용산전자상가 일대의 조그마한 구멍가게 주인도 재벌 부럽지 않게 돈을 벌 수 있었던 20세기 후반의 이야기다. 일부 악덕 중고차 판매업자나 특정 수산시장 등을 지칭할 때도 용팔이라는 표현을 약간 변형해 왕왕 쓰기도 했다.

온라인 플랫폼이 활성화되기 전에는 용산 일대에 전자 기기 판매 업체가 전국에서 가장 많이 들어서 있었다. 컴퓨터 부품이나 오디오 장비, 신형 게임기, 휴대전화 등을 구매하고자 하는 소비자는 용산으로 몰려들 수밖에 없었다. 인터넷이 보편화되기 전, 소비자는 발품을 파는 것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이를 이용해 일부 악덕 상인은 가격 담합이나 현금 결제 강요 등을 통한 탈세, 심지어는 협박과 폭행으로 강매까지 저지른 사건이 종종 있었다. 2007년 KBS 뉴스9의 잠입 취재를 통해 밝혀진 “손님, 맞을래요?” 사건이 유명한 일화다. 당시 손님으로 위장한 기자가 가격만 묻고 나가려고 하자 악덕 업주가 “손님, 맞을래요?”라고 위협적인 발언을 한 것이다. 이것이 카메라에 담겨 고스란히 전국에 방송된 것은 중년 이상의 국민이라면 많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악명 높은 일부 용팔이 수법은 인터넷의 보편화, 가격 비교 서비스 등장 그리고 직구 활성화에 힘입어 점차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어떤 업체가 정직하게 장사를 하는지 알 수 있게 되었고, 가격 비교 사이트를 통해 소비자가 시장가를 쉽게 인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담합을 하려 해도 직구라는 대체재가 생겼기에 상식을 넘는 수준까지 하기가 불가능해졌다. 동시에 정부 당국도 시장 정화에 노력을 기울여 탈세나 강매를 적극적으로 단속했다. 또한 지난 몇 년간 용산 일대에 재개발 바람이 불며 전자 상가는 하나둘씩 사라져갔고, 용팔이는 이제 역사 속 이야기가 되었다.

과거 다수의 선량한 전자 제품 구매자를 괴롭혔던 용팔이 수법의 등장과 소멸은 정보의 비대칭성이 존재하는 독과점적 시장이 어떻게 곪아갈 수 있는지 그리고 투명한 정보 유통과 독점 해소로 얼마나 빨리 시장 자체가 사라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교과서적인사례다. 단기적으로 보면 우월한 정보를 가진 독과점 업체가 시장을 왜곡해 폭리를 취하고자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인간적 욕망의 발로다. 하지만 그럼에도 많은 업체가 정직하게 사업을 하는 것은 폭리를 취하는 행위가 새로운 경쟁자 등장을 촉진하며 결과적으로 장기적 이익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근간인 투명한 정보와 공정한 경쟁은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한 핵심 요건이다. 이를 위해서는 업자의 지속적인 자정 노력과 함께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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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 주식시장의 개미 투자자라면 과거 용팔이에게 전자 제품을 사면서 경험했던 것과 유사한 불편한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기업의 성과는 좋은데 주가가 오르기는커녕 계속 떨어지기만 한다거나, 미래 성장성을 보고 큰맘 먹고 투자한 기업이 핵심 사업부를 분할 상장해 정작 주주는 손해를 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기업공개(IPO) 공모가에 거품이 끼어있는 것도 상식이다. 따라서 장기적인 투자는 현명하지 않고 기업공개 초기 통상 발생하는 변동성 국면에서 얼마라도 수익을 내는 것이 대부분 한국 주식시장 참여자의 시각이다.

기업에 주식은 자본금이다. 기업공개를 통해 주식을 발행하는 이유는 자본조달을 쉽게 하기 위함이다. 기업이 성장할수록 필요한 자본은 엄청나게 늘어나는데, 은행에서 차입하거나 채권을 발행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어서다. 대출이나 채권과 달리 주식 발행은 돈을 갚을 필요가 없는 자본조달 방식이다. 그 반대급부로 회사 경영 성과에 대한 수익과 리스크, 즉 내가 투자한 비율만큼 회사의 주인으로서 이익과 손실을 공유하는 것이 주주다. 그리고 이것이 자본주의의 근간이며 핵심 작동 원리이기도 하다.

주식시장은 그 특성상 정보 비대칭성이 강하게 나타난다. 회사 내부자는 사업에 직결된 핵심 정보를 누구보다 먼저 알 수밖에 없는 구조이며, 전문 투자자 혹은 ‘큰손’은 일반 개인 투자자보다 정보 접근성이 용이하다. 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 정보 비대칭을 해소해야 하므로, 대부분 자본시장은 이를 위해 강한 규제와 법적 조치를 적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내부자거래는 금지되어 있으며, 기업의 투명한 공시를 강제한다.

이러한 규제가 잘 작동하는 주식시장을 선진화된 시장이라 한다. 미국 주식시장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선진화된 주식시장에서는 기업의 성과가 주가 상승이나 배당 등의 주주 환원을 통해 주주에게 오롯이 공유된다. 이를 통해 투자자의 신뢰는 점차 강화되며, 해당 주식시장에는 필연적으로 추가적인 자본이 유입된다. 이는 기업의 가치 상승, 즉 밸류업(value up·가치 제고)을 자연스레 유도한다. 결과적으로 기업의 자본조달은 더욱 쉬워지고 경영은 개선되며, 궁극적으로 해당 국가의 경제는 쉽게 성장한다.

조선비즈

김우창 한국과학 기술원(KAIST)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교수 - 서울대 산업공학, 미 프린스턴대 경영과학 및 금융공학 박사




안타깝지만 우리나라 주식시장은 대부분 국민이 인지하고 있는 것처럼,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기업의 경영 성과가 주주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단적인 사례가 시가총액(이하 시총)과 주가지수의 괴리다. 2002년부터 2024년까지 한국 주식시장의 시총은 약 7.8배 성장했다. 같은 기간, 미국의 주식시장은 9.3배 상승했으니 엄청난 차이는 아니다. 문제는 미국의 주가지수는 시총과 거의 동일한 상승률을 기록한 것에 비해, 한국의 주가지수는 시총 절반에도 못 미치는 상승만을 보였다. 극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한국 기업의 가치 상승 중 절반은 주주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주머니로 들어간 거다.

이런 상황의 해소 없이는 한국 주식시장이 투자자의 신뢰를 얻을 여지는 없다. 기업의 경영 성과야 불확실성의 영역이라 쳐도, 기업의 성공적인 경영 성과가 주주에게 돌아가지 않고 손실만이 전가되는 시장이라면 투자하는 사람이 이상한 거다. 신뢰를 잃었더라도 대체재가 없다면 그럭저럭 시장이 굴러갈 여지가 있지만, 과거와 달리 개인 투자자도 ETF(Exchange Traded Fund·상장지수펀드) 등 혁신적인 금융 상품을 통해 해외에 직접 투자하는 것이 용이해졌다. 최근 들어 급격하게 늘어난 개인 투자자의 해외투자 비율의 증가는 필연이다.

국내 주식시장의 정상화는 경제·사회적으로 아주 큰 함의를 갖는다. 건전한 자본시장은 국내 기업의 자본조달을 위한 근간이며, 기업 역량의 강화는 일자리 증가 등 경제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또한 부동산으로 한정된 국민의 잉여 자산 가치 저장 수단이 주식시장으로 확대되면 장기적으로 우리 경제에 여러모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 명확하다.

최근 들어 자본시장법 개정이나 상법 개정과 관련한 논란이 본격화하고 있다. 한국 주식시장이 단기간의 이익에 눈이 멀어 결국은 사라져 버린 용팔이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 가야 할 길은 명백해 보인다.

이코노미조선=김우창 한국과학 기술원(KAIST)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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