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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별세한 영화 감독 데이비드 린치./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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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류 컬트를 대중문화의 정점에 올려놓았던 미국 영화 감독 데이비드 린치(79)가 16일 별세했다. 린치 감독의 유족은 이날 페이스북에 “한 인간이자 예술가였던 데이비드 린치가 세상을 떠났음을 알려드린다”며 “그가 없는 세상엔 큰 구멍이 생겼으나, 데이비드가 말했듯, 구멍이 아니라 도넛에 주목해 달라”고 썼다. 린치는 2020년 진단받은 폐기종이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애연가로 유명한 린치는 과거 인터뷰에서 “8세 때부터 담배를 폈다”고 밝혔다. 폐 질환이 악화되자 금연을 권하며 “애연가들은 뿌린 대로 거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1946년 미국 몬태나에서 태어난 린치는 기괴하고 도발적인 상상력으로 밀어붙인 영화 ‘이레이저 헤드’(1977)로 데뷔했다. 뉴욕 상영 당시 첫날 관객 25명, 둘째 날은 24명이었다. 사람인지 괴물인지 알 수 없는 생명체를 낳은 젊은 부부의 이야기는 평단의 무자비한 악평에 시달렸다. 그러나 악평이 오히려 “엄청난 괴작”이라는 입소문을 퍼뜨리며 린치에게 ‘컬트 영화의 대부’라는 명성을 안겼다.
소수의 열광적 지지를 받던 린치는 두 번째 장편인 ‘엘리펀트 맨’(1980)이 아카데미 감독상과 각색상 후보에 오르면서 곧바로 주류 감독으로 부상했다. 이어 미스터리 TV 시리즈인 ‘트윈 픽스’(1990)가 크게 성공해 입지를 다졌다. ‘트윈 픽스’는 1990년대 초반 국내 TV에서도 방영돼 인기를 끌었다.
영화 ‘블루 벨벳’(1986)처럼 혼돈과 긴장, 불안을 자극하는 린치의 작품 세계는 미국 중산층의 집단 무의식과 짓눌린 악몽을 일깨운다는 평을 받았다. 특히 안온하고 평안한 세계로 이끄는 스티븐 스필버그와 대조된다는 점에서 “스필버그의 달콤한 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구원책을 제시한다”는 평가도 있다. 일부에선 지나치게 난해한 그의 영화를 두고 “애초에 확고한 줄거리가 없는 각본을 미술 장치와 기교로 섞어 내놓는다”고 비판했다.
칸의 사랑은 받았으나 아카데미에선 외면당했다. 신인이었던 니컬러스 케이지가 주연한 ‘광란의 사랑’(1990)으로 칸 황금종려상을, ‘멀홀랜드 드라이브’(2001)로 칸 감독상을 받았다. 아카데미는 4차례 후보에 올랐으나 수상하지 못하다 2020년에야 평생 공로상을 받았다. 마지막 장편 영화는 ‘인랜드 엠파이어’(2006)였다.
4번 결혼하고 4번 이혼했으며, 4명의 자녀를 뒀다. 4번째 아내인 에밀리와는 투병 중이던 2년 전 이혼했다. ‘블루 벨벳'으로 만나 5년 넘게 연인이었던 이사벨라 로셀리니는 이날 린치의 부고가 전해지자 “그를 너무나 사랑했다”고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린치는 로셀리니가 조연으로 출연한 ‘광란의 사랑’이 칸에서 수상한 이듬해 그녀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이별 이유 중 하나로 “(함께 사는 집의) 요리 냄새가 싫어서”를 들었다. 로셀리니는 후에 “내가 그를 사랑하듯 그도 나를 사랑한 줄 알았는데, 나의 오해였다”고 회고했다.
[신정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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