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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보다 트렌드에 집중한 전시…연 100만 관객 비결이죠”

매일경제 송경은 기자(kyungeu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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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보다 트렌드에 집중한 전시…연 100만 관객 비결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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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욱 미디어앤아트 대표 인터뷰
전시 플랫폼 ‘그라운드시소’
사진·웹툰·미디어아트 등
새로운 체험형 전시 선보여
인기 전시 IP 수출 쾌거도
지난해 싱가포르점 문 열어
“日·美 순차적 진출 계획”


지성욱 미디어앤아트 대표가 서울 서초구 양재동의 사무실에서 매일경제와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이충우 기자

지성욱 미디어앤아트 대표가 서울 서초구 양재동의 사무실에서 매일경제와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이충우 기자


“우리는 어떤 전시를 기획할 때 작가를 염두에 두고 시작하지 않아요. 트렌드가 뭐냐를 먼저 분석하고, 지금 대중이 보고자 하는 전시를 만들죠.”

연간 100만명 내외의 관객을 동원하는 전시 기획사 미디어앤아트의 지성욱 대표는 미술 전시 플랫폼 ‘그라운드 시소’의 인기 비결이 남다른 기획 방식에 있다고 했다. 그는 “보통 전시 업체들은 전시를 기획할 때 유명 작가를 섭외하거나 큰 기관의 소장품을 가져오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전시는 결국 누가 열어도 비슷한 전시가 될 수밖에 없다”며 “우리는 내부에 데이터 마이닝 부서를 두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트렌드 분석을 한다. 이를 바탕으로 외부에 의존할 필요 없이 우리만의 색깔을 보여줄 수 있는 전시 콘텐츠를 자체적으로 기획·제작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설립 10주년을 맞은 미디어앤아트는 한국의 전시 콘텐츠 저변을 넓힌 톱 티어 기획사로 평가된다. 2014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상업 미디어아트 전시 ‘반 고흐: 10년의 기록전’을 선보인 이래 기존 전시의 틀을 깬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였다. 일례로 미디어아트를 넘어 다양한 매체와 장르를 융합한 체험형 전시 ‘앨리스: 인투 더 래빗 홀(이상한 나라의 앨리스)’(2017)는 한국과 중국, 대만, 홍콩 등 아시아 10개 도시를 순회할 정도로 큰 흥행을 거뒀다. 또 국내 최초로 인기 웹툰의 세계관을 전시로 만든 ‘유미의 세포들’(2020)은 20·30 여성들 사이 큰 화제를 모았다.

미디어앤아트의 전용 전시공간이자 플랫폼 역할을 하는 ‘그라운드 시소’는 현재 국내외 4개점을 운영 중이다. 서울 시내 3개 지점(서촌·센트럴·명동)이 있고 지난해 첫 해외 진출로 싱가포르점을 개관했다. 매년 약 8개의 새로운 전시를 연다. 지난해 성수점이 5년 만기를 채워 문을 닫았고, 올해 1분기 서울 구의역 인근에 새롭게 이스트점을 개관하면 그라운드 시소는 총 5개점이 된다. 전시 도록과 굿즈 등 부가 사업도 순항해 2023년 기준 연매출액 103억원을 달성했다. 이익률은 25%에 달한다.

미디어앤아트는 이 같은 꾸준한 성장세로 브랜드 가치를 인정 받아 미술 분야 전시 기획사 가운데서는 이례적으로 지난해 7월 110억원 규모의 시리즈 A 투자를 유치하는 데도 성공했다. 지 대표는 “미디어앤아트는 꾸준히 미술 전시 콘텐츠 IP를 해외에 수출하고 있는 유일한 전시 기획사”라며 “태국,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에서도 러브콜이 오고 있다. 올해를 본격적인 해외 진출의 원년으로 삼고 향후 일본과 미국에도 지점을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미디어앤아트의 핵심 경쟁력은 트렌드에 민감한 전시 기획력이다. 작가나 작품을 섭외하기 전 전시 내용을 먼저 기획한다. 트렌드 데이터를 바탕으로 키워드를 뽑아 전시 시놉시스를 짜고, 이를 토대로 소설가 등과 협업해 누구나 이해하기 쉽도록 전시의 스토리텔링을 완성한다. 전시 내용과 결이 맞다면 작가가 유명하지 않아도 섭외 대상이다. 코로나19 팬데믹 국면에 42만명을 동원한 ‘요시고 사진전’(2021)도 그렇게 탄생한 전시다. 2019년 서울시립미술관이 개최한 데이비드 호크니 원화 전시가 32만명을 동원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괄목할 만한 성과다.


지 대표는 “팬데믹 기간 사람들이 원하는 게 뭘까 분석했을 때 가장 큰 게 ‘해외 여행에 대한 갈망’이었다. 요시고 사진전은 관객들에게 해외 여행을 갔다 온 듯한 느낌을 주는 걸 찾아보자고 해서 만든 전시”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당시 처음에 컨택한 작가는 요시고가 아니라 미국 작가였다. 결국 조건이 안 맞아 요시고와 협업하게 됐는데 결과가 좋았던 걸 보면 트렌드를 잘 읽어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세계 곳곳의 아름다운 여행지 풍경을 보여준 요시고 사진전은 올 여름 좀 더 인물에 집중한 이야기로 시즌 2 전시를 개최할 예정이다. 영화감독 웨스 앤더슨의 사진전 ‘우연히 웨스 앤더슨’(2021) 역시 관객 호응으로 지난해 10월 시즌 2 전시를 개막했다.

지난달 19일 그라운드 시소 명동에서 개막한 몰입형 미디어아트 전시 ‘구스타프 클림트: 타임리스 뷰티’도 미디어앤아트가 자체 제작한 음악과 화면, 스토리텔링이 핵심 콘텐츠를 이룬다. 클림트의 오랜 후원자이자 친구였던 에르빈 뵐레의 회고록을 토대로 클림트의 대표작 80여점을 소개하면서 클림트의 예술 여정과 인간적 면모를 영화처럼 펼쳐 호평을 받고 있다. 지 대표는 “앞으로는 그라운드 시소를 통해 검증된 우리만의 콘텐츠 스토리텔링, 제작 능력을 바탕으로 화장품, 식품 등 다양한 상품을 소개하고 유통하는, 새로운 범용 브랜드를 선보여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라며 “꼭 전시 형태가 아니어도 좋다. 예술로 사람들의 일상에 영감을 불어넣을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 대표는 건국대 환경공학과를 졸업하고 1996년 삼성엔지니어링 설계 부서에 입사한 엔지니어 출신이다. IMF 직후 인포뱅크, 이노비스를 거쳐 2002년 다날의 미디어사업본부장으로 옮기면서 처음 콘텐츠 업계에 뛰어들었다. 이후 KT에서 IPTV 등 그룹 콘텐츠 전략을 맡았고, 연예기획사 아이오케이컴퍼니 대표를 지낸 뒤 2014년 미디어앤아트를 설립했다. 그는 “대기업 가치사슬의 영향을 받는 영화, 드라마 등과 달리 콘텐츠의 기획부터 제작, 유통까지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게 미술 전시라고 생각해 도전하게 됐다”고 밝혔다. 미디어앤아트가 꿈꾸는 장기적인 목표에 대해서는 “언젠가는 그라운드 시소의 모든 인프라를 한 곳에 모은 복합문화센터를 열어 전관을 할애하는 대규모 전시를 펼쳐 보이고 싶다”고 말했다.

지성욱 미디어앤아트 대표가 역대 전시 포스터들이 전시된 사무실 공간에서 환하게 웃어 보이고 있다. 이충우 기자

지성욱 미디어앤아트 대표가 역대 전시 포스터들이 전시된 사무실 공간에서 환하게 웃어 보이고 있다. 이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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