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태국과의 미쓰비시컵 결승 1차전에서 응원전을 펼치는 베트남 팬들. 한국인 김상식 감독이 이끈 베트남이 최종 승리해 6년 만에 통산 세 번째 우승했다. [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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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을 능가하는 속편은 없다고 하잖아요. 제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박항서 감독님께서 남긴 업적이 워낙 크기 때문에 따라갈 생각조차 못 합니다. 속편의 주인공을 맡은 격이지만, 그저 베트남 축구의 발전만 바라보기로 했습니다. 이번 (미쓰비시컵) 우승도 제가 가야 할 길을 묵묵히 걸은 결과라 생각합니다.”
7일 국내 취재진과 화상 인터뷰에 나선 김상식(49)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은 밝은 표정으로 “신짜오(Xin Chao·베트남 인사)”를 외쳤다. 지난 6일 ‘동남아 월드컵’으로 불리는 2024 미쓰비시일렉트릭컵(이하 미쓰비시컵)에서 베트남을 우승으로 이끈 그는 선수단과 함께 곧바로 베트남으로 향했다. 베트남에 도착한 그는 영웅 대접을 받았다. 조별리그부터 결승전까지 무패(7승 1무) 우승한 데다, 최대 라이벌 태국을 홈 앤드 어웨이로 펼쳐진 결승전에서 모두 승리(2-1, 3-2)해 반향은 더욱 컸다. 베트남이 미쓰비시컵에서 우승한 건 박항서 전 감독이 팀을 이끌던 2018년 이후 6년 만이자 통산 세 번째다.
자신을 “동남아시아 1등 감독”이라고 소개한 김 감독은 “우승으로 끝났지만, 진행 과정은 거의 한 편의 드라마였다. 매 순간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의 연속이라 당황했지만, 침착하고 슬기롭게 헤쳐 가려 애썼다”고 그간의 과정을 돌이켰다. 이어 “짧은 대회 기간 네 차례나 장소를 옮겨가며 8경기를 치르는 강행군 속에서 팀원의 컨디션 조절이 핵심 과제였다”며 “체력과 부상은 물론, 날씨와 음식까지 신경 썼다. 베트남 선수들이 팀 정신을 앞세우며 따라와 준 덕분에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상식 감독(오른쪽)에게서 트로피를 받아 든 팜민찐 총리(가운데). [사진 베트남축구협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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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우승 직후 과거 전북 현대 감독 시절 성적 부진으로 마음고생 한 기억을 떠올렸다는 김 감독은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걸 이번 우승을 통해 보여드린 것 같다”며 “당시엔 힘들었지만, 이젠 전북 팬들의 ‘나가라’는 야유와 함성이 가끔 그립기도 하다”고 여유를 보였다. 우승 직후의 댄스 세리머니에 관해 김 감독은 “무게감 있는 감독, 호랑이 선생님 면모를 보여주고 싶었는데”라고 아쉬운 척하더니 “선수들이 부탁해 한 번 보여준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리고는 “춤은 전 세계 1등 감독일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두 전임자(박항서·필립 트루시에)와의 차별화 포인트를 묻는 말에 김 감독은 “박항서 감독님의 성공과 트루시에 감독님의 실패 원인이 무엇인지, 그 중간을 어떻게 찾아내 변화를 줄지 진지하게 고민했다”고 밝혔다. 또 “트루시에 감독님도 많이 노력하셨지만, 세대교체 과정이 지나치게 빠르지 않았나 생각한다”며 “선수들이 경험이 부족하면 큰 대회에서 기량을 100% 발휘하기 어렵다”고 나름의 분석을 전했다.
선수 시절 수비형 미드필더로 뛴 김 감독은 상대 공격수를 꽁꽁 묶어 경기장 안에선 ‘독사’로 불렸다. 하지만 경기장 밖에서는 유쾌한 성격으로 분위기를 띄워 과거 개그 프로그램 캐릭터를 딴 ‘식사마’라는 별명을 얻었다. 지도자가 된 후에도 꽤 오래 ‘식사마’로 통했다. 그는 베트남에 와서 ‘사우 상(Sau Sang)’이라는 별명을 추가했다. 우리말로 ‘식 삼촌’쯤 된다. ‘사우’가 베트남어로 ‘6’인데, 김 감독 이름 끝 글자 ‘식’이 영어 ‘6(Six)’와 발음이 비슷한 데서 유래했다. ‘상’은 상대를 존칭하는 말이다. 박항서 감독을 ‘파파(아빠)’로 부르며 존경했던 베트남 팬들이 김 감독은 ‘삼촌’처럼 친근하게 여기는 모습이다
베트남 지휘봉을 잡은 지 8개월 만에 성과를 낸 김 감독은 성공의 핵심 키워드로 ‘변화’를 꼽았다. 그는 “선수들 위주로 눈높이를 낮추고 자발적인 변화를 유도했다”며 “성공도 실패도 함께 한다는 인식을 심은 게 팀 분위기와 경기력의 변화로 나타났다”고 평가했다.
김 감독 에이전시 관계자는 “박항서 전 감독 초기만 해도 대표선수들 이동 수단이 오토바이 일색이었는데, 최근에는 고급 승용차로 바뀌었다”고 달라진 선수들 위상을 설명했다. 이어 “K리그의 리딩 클럽인 전북에서 국가대표급 선수들을 무난히 이끈 김 감독이다 보니 베트남 선수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선수들 사이에서도 크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 김상식 감독은
◦ 출생: 1976년 12월 17일, 전남 해남
◦ 체격: 1m 84㎝ 72㎏
◦ 출신교: 구포초-덕천중-경남공고-대구대
◦ 선수 이력: 일화 천마-광주 상무-전북 현대
◦ 선수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수비수
◦ A매치 기록: 59경기 2골
◦ 감독 이력: 전북 현대-베트남 축구대표팀
◦ 별명: 독사(지독할 만큼 철저한 맨투맨 수비), 식사마(쾌활하고 장난기 넘치는 성격)
송지훈 기자 song.ji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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