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사들은 지난해부터 확률형 아이템 규제를 따르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이번 개정안이 시행되면 피해 보상 소송이 줄을 이을 것으로 우려된다.”
확률형 아이템이 수입의 70%를 차지하는 국내 게임업계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게임사가 확률형 아이템 정보를 거짓으로 표시해 이용자에게 손해를 끼치면 3배까지 보상한다는 내용의 ‘게임 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게임산업진흥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지난달 31일 통과했기 때문이다. 이번 개정안이 시행되면 게임사가 확률정보 기재 오류에 고의성이 없다는 점을 입증해야 해, 향후 보상금을 요구하는 소송에 휘말릴 가능성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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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의성 입증되면 3배 배상… 게임사가 결백 증명해야
현재 게임사는 게임물 자체와 관련 광고·선전물마다 확률형 아이템의 종류와 종류별 공급 확률정보 등을 표시해야 한다. 그러나 확률 미표시 및 거짓 표시에 따른 게임 이용자들의 손해에 대해 보상받을 수 있는 근거조항이 없고, 배상을 받으려 해도 입증 책임이 소비자에게 있어 권리구제가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달 3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게임산업진흥법 개정안은 기존 규제를 강화한다. 개정안에는 ▲게임사가 확률형 아이템의 공급 확률정보를 표시하지 않거나 거짓으로 표시해 이용자에게 손해를 입히면 배상 책임을 지도록 하고 ▲게임사의 고의에 의한 이용자 손해를 3배까지 징벌적으로 배상하는 한편 ▲게임사의 고의·과실이 없다는 사실은 게임사가 증명하도록 입증 책임을 전환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 같은 내용은 법률 공포 6개월 후 시행된다.
이용자들은 개정안 통과를 반기고 있다. 이철우 한국게임이용자협회장(변호사)은 조선비즈와의 통화에서 “실무적으로 게임사와 이용자 간의 정보 비대칭 상황에서 이용자가 재판에 필요한 자료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았다”라며 “입증 책임 전환 내용이 골자인 만큼 이용자 권익 보호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라고 전했다. 이어 “이번 개정안은 게임 산업의 기반인 이용자 신뢰 형성에도 이바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은 “일부 게임사의 기망 행위와 불투명한 정보 공개로 게임 이용자가 피해를 보는 일이 더 이상 발생해서는 안 된다”며 “많은 게임 이용자가 바라던 게임산업법이 이제라도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다행”이라고 말했다.
2021년 2월 25일 국회 앞에 메이플스토리 사용자들이 보낸 트럭이 세워져 있다./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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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확률형 아이템 게임사 수익 70%… ‘캄캄이 운영’ 근절되나
확률형 아이템이란, 게임에서 일정한 확률에 따라 아이템을 획득하는 방식의 유료 콘텐츠다. 이용자는 어떤 아이템이 나올지 모르는 상태에서 확률형 아이템을 사고, 이를 사용하면 특정 확률로 실제 아이템이 당첨된다. ‘로또’와 같은 형태로 이용자들의 흥미를 돋우지만, 과도한 사행성 논란과 게임사들의 ‘캄캄이’ 운영으로 신뢰를 잃었다.
게임사들은 이번 개정안 통과가 곤혹스러운 상황이다. 확률형 아이템은 게임사들의 핵심 사업 모델로 꼽힌다. 2023년 게임백서에 따르면, PC 게임 매출의 76%, 모바일 게임 매출의 75%가 확률형 아이템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만큼 사업을 축소하기가 힘들다. 특히 게임사들은 입증 책임이 사측으로 전환돼 당황스럽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3월 게임산업법 일부 개정안 시행 이후 확률형 아이템 정보를 표시하고 있지만, 이용자들이 소송에 나선다면 고의성이 없다는 점을 회사가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현재 공정위의 조사를 받는 건들에 대해 업체들은 확률을 수기로 작성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사람의 실수’라고 주장한다. 업체들로서는 이러한 입장을 설명하는 수밖에 없는데, 조정 과정에서 혼란이 예상된다”라고 밝혔다. 이어 “아무래도 이용자들이 피해 보상을 요구할 수 있는 폭이 넓어져 업체들이 신경 쓸 부분이 많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개정안에는 법원이 손해액을 입증하기 어려운 경우, 변론 취지와 증거조사 결과에 따라 손해액을 인정할 수 있다는 조항도 포함됐다. 위반 행위로 인해 이용자가 입은 피해 규모와 게임사가 취한 이익, 위반 기간과 횟수, 피해 구제 노력 정도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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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행 이전 건은 소급 적용 어려울 듯… “입증하라는 압력 넣을 수 있어”
크래프톤, 위메이드, 그라비티, 웹젠, 컴투스 등 5개사는 확률형 아이템을 불투명하게 운용한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 조사를 받고 있다. 넥슨은 ‘메이플스토리’ 이용자가 제기한 확률형 아이템 손해배상 소송에서 최종 패소했고,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에 메이플스토리 이용자 711명이 제기한 민사소송이 제기돼 진행 중이다.
다만 이번 개정안은 시행 이후 발생하는 건부터 적용돼, 현재 진행 중인 조사나 소송에 소급 적용되지는 않을 전망이다. 법조계에서는 진행 중인 손해배상 청구에 대해 개정안이 적용된 보상을 받기는 어렵지만, 고의성 입증에 대해 게임사에 압력을 넣을 수 있다고 본다.
홍정표 법무법인 거북이 변호사는 “게임사를 대상으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까지 가게 된다고 가정했을 때, 회사가 입증하지 않으면 재판부에서 고의 과실을 인정해 이용자 편을 들어줄 확률이 높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용자들은 현재 진행되는 소송에 대해서도 이번 개정안을 고려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윤예원 기자(yewona@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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