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16 (월)

이슈 전두환과 노태우

[단독] 전두환이 들이밀자 최규하가 서명한 ‘5·17 내란계획서’ 나왔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1979년 11월 6일 김재규의 박정희 시해사건 전모를 발표하는 전두환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장. 한겨레 자료사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12·3 내란’으로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한 가운데, 12·3 내란 ‘닮은꼴’로 거론되는 전두환 신군부의 1980년 ‘5·17 내란 계획서’가 최초로 발견됐다. 전두환 신군부가 시국 수습을 명목으로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국회를 해산하기 전 대통령 결재를 받은 보고서로, 전두환 당시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장은 이를 근거로 정치인과 재야인사, 학생 수천명을 영장 없이 검거했다.



12일 한겨레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를 통해 1980년 5월에 작성된 ‘국가기반 문란사범 조사 계획 보고’라는 이름의 9쪽짜리 문서를 확인했다. 보고서엔 김대중·김영삼 등 ‘주요정치인 추종세력’과 ‘데모 소요분자’, ‘권력형 부정부패자’를 계엄사 합동수사본부(합수부)가 어떻게 역할을 나눠 검거할지에 대한 계획이 담겨 있다. 보고서 앞에는 대통령 최규하, 계엄사령관 겸 육군참모총장 이희성, 국방부 장관 주영복의 사인이 있으며, 대통령 사인 옆에는 ‘5·17’이라는 날짜가 적혀 있다.



한겨레

정치인·재야인사·학생을 계엄사령부 어떻게 역할을 나눠 검거할지에 대한 계획이 담긴 ‘국가기반 문란사범 조사계획 보고’ 문서. 최규하 대통령, 이희성 계엄사령관 겸 육군참모총장, 주영복 국방부 장관의 사인이 보인다. 국가기록원 행정기록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겨레

정치인·재야인사·학생을 어떻게 역할을 나눠 검거할지에 대한 계획이 담긴 ‘국가기반 문란사범 조사계획 보고’ 문서. ‘북괴의 대남적화야욕으로부터 국가를 보위한다’는 목표는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하고”로 시작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12·3 내란’ 담화문과 논리구조가 판박이다. 국가기록원 행정기록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1997년 검찰의 전두환·노태우 내란 혐의 수사 당시 전두환 본부장이 최규하 당시 대통령의 사인을 받았다는 증언은 있었지만, 해당 보고서가 세상에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당시 보안사(현 방첩사) 대공처장이었던 이학봉씨는 검찰 조사에서 “1980년 5월17일 09시경 전두환 장군이 혼자 최규하 대통령 집무실에 들어가 '권력형 부정축재자 수사계획' 및 '국기 문란자 수사계획'을 보고해 결재를 받았다. 그날 10시경 보안사로 돌아오는 승용차 안에서 전 장군이 저에게 결재서류를 넘겨주면서 '오늘 저녁 10시를 전후해 전원 검거하라'고 지시했다”고 진술한 바 있다.



최규하 당시 대통령의 결재를 받은 신군부는 5월18일 0시를 기해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계엄군은 국회를 점령했으며, 김대중·김영삼·김종필 등 정치인과 재야인사, 학생 등 수천명을 체포·구금했다. 또 계엄에 저항했던 광주는 피로 물들었다.



한겨레

정치인·재야인사·학생을 어떻게 역할을 나눠 검거할지에 대한 계획이 담긴 ‘국가기반 문란사범 조사계획 보고’ 문서. ‘김대중 추종세력’은 중앙정보부, ‘김영삼 추종세력’은 치안본부, ‘김종필 추종세력’은 합수부가 검거한다고 돼 있다. 국가기록원 행정기록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겨레

정치인·재야인사·학생을 어떻게 역할을 나눠 검거할지에 대한 계획이 담긴 ‘국가기반 문란사범 조사계획 보고’ 문서. 1만여명의 수사인력이 동원돼 정치인·재야인사·학생을 3000명 가까이 검거한다는 계획이 담겨있다. 국가기록원 행정기록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신군부의 조사보고서는 여러 면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똑 닮았다. 신군부는 조사의 목적으로 “북괴의 대남 적화 야욕으로부터 국가를 보위하고, 나아가서 정의구현과 질서유지, 풍요롭고 자유로운 복지사회 건설”을 하기 위해 이를 막는 “‘국기를 문란하는 위해분자’, ‘누적된 권력형 부정부패’, ‘사회 불안을 조성하는 강력사범’ 등을 과감히 적출 제거”하고자 한다고 적었다. 이는 윤 대통령이 3일 비상계엄을 선포하며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한다”는 계엄 담화문의 논리 구조와 판박이다.



정치인 체포 계획은 ‘12·3 내란사태’ 당시 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의 우원식·이재명·한동훈 등 주요 정치인 체포 지시를 연상시킨다. 보고서는 ‘김대중 추종세력 및 재야 문제 인물’ 체포는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 ‘김영삼 추종세력’과 ‘김종필 추종세력’ 체포는 각각 치안본부와 합수부 수사단으로 나눴다. 이 밖에도 데모 소요분자는 시경, 권력형 부정부패자는 합수부 수사단, 사회불안요인자(강력사범)는 일반 경찰 및 헌병이 맡게 했다.



또한 수사기구 편성 및 조정 및 지휘계통, 수사중점 착안사항, 처리지침, 회의 소집 등 행정사항에 이어 보고서 맨 끝에는 ‘지역별 수사력’을 표로 정리해놨다. 합수요원은 9846, 보호실 234/2980, 조사실 469, 차량 611로 돼 있다. 보호실 관련 숫자 ‘234/2980’중에서 234는 시설 수 또는 관리 인력, 2980은 수용인원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정치인·재야인사·학생 2980명을 검거할 계획을 세운 것이다. 해당 명단은 보고서 안에 ‘별첨’으로 표시돼 있는데, 이번에 함께 발견되지는 않았다. 당시 합수부가 실제로 검거한 정치인·재야인사·학생은 2699명이다.



한겨레

1980년 5월17일 비상계엄확대조치로 서울 세종로 서울신문사 앞에 장갑차를 앞세우고 진주한 계엄군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상훈 진실화해위 상임위원은 “12·3 내란과 5·17 내란의 차이점은 실행이 됐냐 아니냐일 뿐이다. 만일 내란이 성공되었다면 힘없는 국민들에게 어떤 폭력이 자행됐을지 알 수 없다”고 밝혔다. 이 상임위원은 “진실화해위는 5·18 계엄 이후 충남지역 대학생 연행사건, 한신대 사건, 삼청교육 사건 등 내란이 성공할 경우 발생한 광범위한 인권침해를 조사하고 있기 때문에, 위법한 비상계엄을 선포한 ‘내란 수괴’가 임명한 박선영 위윈장을 더더욱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최영선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전 전문위원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자료”라며 “최규하 대통령이 국회의원을 잡아들이겠다는 보고서에 결재했다는 건데, 그 역시 내란을 인정한 방조범이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한겨레는 함께 민주주의를 지키겠습니다 [한겨레후원]

▶▶실시간 뉴스, ‘한겨레 텔레그램 뉴스봇’과 함께!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